창 그리고 방패

2020.03.27 23:21

최정순 조회 수:16

창 그리고 방패           

안골노인복지관 수필반 최 정 순

 

 

 

  며칠 전에, 우리 동네에 '코로나19' 10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받는 순간 뜨거운 물에 오징어 오그라들듯이 온몸이 오싹했다. 확진자가 다녀간 장소와 시간대가 메시지에 줄줄이 올라왔다. 아파트 앞에 있는 목욕탕, 헬스클럽, 슈퍼 등을 거쳤다며 이날 시간대가 겹친 사람은 자진 신고하라는 문자가 떴다. 내가 자주 다니는 곳이라 겁이 나서 영수증에 찍힌 날짜와 시간대를 살펴보았으나 엇갈려 한시름 놓았다.

 

  비교적 다른 지역에 비해 전주는 청정지역이라고 하더니만 끝내 그 불똥이 튀어 내 이웃까지 와버린 것이다. 괜스레 목이 간지럽고 머리가 띵하고 기침이 나오는 것 같았다. 사실 10번째 확진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발음이 입에 안 붙어 골로라도 라고 했을 정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면 마스크를 삶아서 다시 쓰고 아중천변을 하루에 한 시간 정도 걸었다. 모르면 약이고,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실감났다.

 

  느닷없이 다급해졌다. 호흡기를 통해서 전염되는 전염병이라 보건용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코로나19가 창이라면, 창을 막아낼 방패를 사려고 추위도 무릅쓰고 농협이나 우체국, 약국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지 않느냐며 속으로 비아냥댔다. 생각해 보니 내 상식이 부끄러웠다. 마스크에도 kf80, kf94, kf99 등 숫자가 성능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마스크라는 것도 알았다.

 

  마스크 행정이 우왕좌왕하더니만, 드디어 39일 월요일부터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되었다. 주민등록번호 끝수가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요일이다. 예를 들어 끝수가 16은 월요일, 27은 화요일 38은 수요일, 이런 식으로 어서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창을 막아낼 방패를 구매하는 날이 왔다. 840분쯤 양치질만 하고는 귀까지 덮는 전투 모자를 쓰고 징검다리를 건너 약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다섯 번째였다. 1시간 이상을 기다렸는데도 약국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날씨는 춥고 허리, 다리는 아프고 짜증이 나겠지만, 약국 안을 기웃거리는 등 불평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누구를 탓하랴. 그때까지 마스크가 도착하지 않아 결국은 번호표를 주면서 오후 5시경에 다시 오라고 했다. 어떤 여자는 자기 날짜도 아닌데 1시간 이상 떨다가 갔다. 첫날이니 이런 고통쯤이야, 이렇게 바람을 맞고 다시 가서 3,000원에 2장을 사가지고 왔다. 드디어 코로나19를 방어할 KF94 보건용 마스크가 처음으로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올해 초부터 크고 작은 행사가 참 많았다. 조카 결혼, 동생 칠순, 막냇동생 환갑, 지인들의 출판기념회 등 거기다 321일에는 시누남편 별세 소식까지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러나 다른 행사들은 취소하거나 날짜를 미룰 수 있지만, 장례일 만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마스크를 쓰고 자가용으로 대전에 다녀온 남편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멀찍이 떨어졌는데도 벌써 내 귀에는 마스크가 걸려 있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이었다. 옛날 같으면 궂은 곳에 다녀왔다고 소금을 뿌리든지 아니면 짚불을 놓아 불 위를 넘어야만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말이 있다.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에게 한 말이며, 해방 이후 좌익 우익으로 분열되고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이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기 위해 썼던 말이기도 하다. 이제는 반대로 뭉치면 죽고 2m 이상 간격을 두고 흩어져야 산다니, '사회적 거리 두기'를 조장하여 포악한 사회 풍조를 조성하려는 코로라19를 물리쳐야 할 일이다.  

 

  벌써 세 번째 마스크를 사는 날이었다. 훨씬 수월해졌다. 질서가 잡혔다고나 할까? 마스크를 사 들고 아중천 징검다리를 사뿐사뿐 건너서 천변으로 올라갔다. 하늘엔 흰 구름 한 점 떠가고, 천변 노란 개나리가 뿅 뿅 주둥이를 모으고 노래하는 병아리처럼 봄나들이를 즐기다 가라며 발목을 붙잡았다. 덩달아 벚꽃도 맞장구를 쳤다. 졸졸 흐르는 냇물에서는 오리들이 주둥이를 땅에 처박고 물갈퀴를 위로 올리고 먹이를 찾는 모습에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농수로에서 조개를 잡느라 오리처럼 나도 저런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왈츠에 맞춰 유유자적하는 오리들의 모습이 정말 평화롭게 보였다. 이곳이 도나우강이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인가.

 

  포근한 봄날을 만끽하려고 강아지를 앞세우고 나온 상춘객들의 오가는 말속에서 저래도 되는 건가? 오늘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참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러는 내가 촌스러운 것이지, 아무리 반려동물시대라지만 강아지 이름을 부르며 자기가 엄마란다. 모녀 관계인지 모자 관계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건 아닌 성싶다. 한 마리는 외로운지 두 마리를 끌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나를 비롯하여 사람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썼고, 강아지는 메리야스를 걸치고 거기다 구두까지 신고서 짜그락 소리를 내며 촐랑거리는 모습이라니, 웃기지 않는가.

 

   작년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개가 사람을 물어서 입마개를 씌워야 한다고 한참 떠들어댔던 일이 생각났다. 그러더니만 조용해졌다. 여태껏 입마개를 씌운 개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그때 나를 앞질러가는 엄마와 강아지의 대화가 들리는 듯했다.

 강아지가 말했다.

 

   “엄마, 내 입마개를 왜 엄마가 썼어?

   “누구를 물어뜯었어?

   “엄마, 내 옷은 털인데 지금이 봄이잖아, 내 메리야스 좀 벗겨 줘.

 

 하며 애걸하는 것 같았다. 덥고 가려운지 깽깽거리며 주둥이를 땅에 비비고 발로 흙을 파헤치는 꼴이 나에게 자유를 달라며 반항하는 짓은 아닌지, 개들은 땀구멍이 혀에 있어 조금만 더워도 혀를 빼물고 할딱거린다.  

 

  지지난밤 봄비가 내려 쑥들이 쑥쑥 올라왔다. 한 주먹만 뜯어도 오늘 저녁에 맛있는 쑥국을 먹을 수 있을 텐데 이젠 먹을 수가 없다. 지난여름 제초제와 농약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마구 버려 다이옥신이 넘친단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개는 개처럼 길러야 하는데, 자연을 거스른 탓으로 개에게 씌워야 할 입마개를 내가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2020.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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