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민이가 말을 해요

2020.03.29 14:15

김창임 조회 수:1

 오지민이가 말을 해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고운 햇살이 꽃을 어루만지는 봄이 왔다. 정읍천변에 눈부시게 피어있는 벚꽃을 보고 싶어 남편과 함께 손을 잡고 거닐었다. 대부분의 나무가 활짝 피어서 흩날리는 꽃비를 맞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어떤 나무는 어제저녁에 나처럼 새벽 세 시에 잠들었는지 일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엉덩이를 ‘탁’ 치면서

 “남들처럼 꽃 좀 피워 주세요. 그리고 되도록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버릇을 길러야 건강에 좋아요. 내년에는 일찍 일어 날수 있지요?

 벚나무에게 귓속말로 약속했다.

 지금부터 20여 전 일이다. 내가 대흥 초등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첫해에는 5학년을 맡아 열심히 가르쳤다. 그 이듬해에는 저학년이 맡고 싶어서 2학년을 희망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영복 교감께서 1학년을 맡아야 한단다. 왜냐하면, 새로 오신 강정순 교사가 몸이 아파서 2학년을 신청했다고 한다. 나는 할 수 없이 그분을 배려하여 1학년을 맡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1학년을 한 번도 해본 경험이 없다. 1학년을 맡게 되면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있고, 늘 그분들과 마주치게 되면 부담이 되었다. 그 당시 다른 교사들은 오히려 치맛바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이세용 교장 선생님은 나를 부르시더니

 “다른 여교사들은 1학년을 하고 싶어 야단인데 왜 1학년을 싫어하나요?

 “저는 학부모들이 오시는 것이 부담되고 1학년은 가장 중요한 시기여서 그렇습니다.

 처음으로 맡아본 1학년이어서 경험이 많은 이정재 교사에게 일일이 여쭈어 봤다. 자기 혼자서도 학교를 잘 오는지, 차 조심은 잘하는지, 돈은 잘 간직하는지, 물어보니 요새 1학년은 유치원에 다녔기 때문에 다 잘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다행히 재적수가 30명도 안 되어서 별로 떠들지도 않았다. 그리고 순진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그 귀여움은 내 자식 이상으로 사랑스러웠다. 학년 초부터 한글 익히기가 우선인데 대부분의 아동이 거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받침이 어려운 낱말만 익히면 되겠다 싶었다. 하루에 한 번씩 받아쓰기와 일기 쓰기를 지도하면 좋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출근하여 일기 쓰기 지도를 하고 있었다. 어떤 아동이 내 앞으로 오더니

  "선생님, 우리 반 오지민이는 지금까지 말을 한 번도 안 했어요.

 "그래? 지민아!"

 그 소녀는 어쩐 일인가 싶어 서서히 무표정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오늘 누구랑 같이 학교에 왔니?

 예상대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얼굴을 보니 생김새가 예쁘고 착하게 보였다. 다시 손을 잡고

 “우리 예쁜 지민이가 말 좀 해봐. 오늘 아침 무슨 반찬이 제일 맛있었니?"

 역시 묵묵부답이었다. 그런데 일기는 그런대로 잘 썼다. 받아쓰기도 거의 만점이었다. 그 당시 100점 맞는 아동에게 공책 한 권을 주기로 했다. 지민이는 100점이기에 자주 학용품을 받았다. 말은 않지만, 표정이 흐뭇해 보였다. 아버지는 오종학 씨고 어머니는 학력이 고졸이었다. 할머니도 가끔 손녀를 보러 오셨다.

 "할머니, 지민이가 집에서도 말을 하지 않나요?"

 “글쎄, 그 문제가 있으니 선생님께 잘 부탁합니다.”

 남동생이 병설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매일 내게 제일 중요한 일은 지민이와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소풍날이면 할머니께서 손녀의 담임이라며 치킨을 사 오시기도 했다. 나는 먹지 않지만, 할머니의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렇게 해서 1학기가 지나갔다.

 10월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광주로 12출장을 간다기에 이때다 싶었다. 미리 지민 엄마와 의논한 뒤 우리 집에 가자고 했다. 다행히도 잘 따라왔다. 몸이 피곤해도 참고 계란 후라이와 생선튀김을 해서 김과 김치 등으로 밥을 먹도록 했다. 나는 원래 저녁에는 식사를 하지 않지만, 그 아이에게는 따로 잘 챙겨주어야 했다. 식사 후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같이 TV도 보고 그 아이가 말은 안 해도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러면서 교사와 아동이 조금씩 친해지게 되었다. 말을 않지만 나는 표정만 보고도 알았다. 집짐승의 마음도 알 수도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학교 재적수가 작아서 지민이가 말을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직원이 거의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보건교사인 송 교사가 우리 지민 이를 자주 만나서 대화도 하려고 노력을 했다. 모든 직원이 합심하고 있었으니 결과가 나쁠 리 없었다.

 어느 날 쉬는 시간이 되어서 밖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그네를 타는 아동, 고무줄놀이 하는 아동, 시이소를 타는 아동, 축구를 하는 아동, 모래놀이를 하는 아동, 그야말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 근심 걱정 없는 철없는 나이다.

 

 우리는 한참 재미나게 노는 아동을 보고 있는데

 “선생님, 오늘 지민이가 말을 했어요!

 “그래? 뭐라고?

 ”시소 타기가 재미가 있다.”고 했어요

 “참 기쁜 일이구나! 잘했다 잘했어. 우리 지민이가 그러면 그렇지!

 그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불가능은 없다고 말하더니 지민이가 말을 했단다. 벙어리도 아닌데 하마터면 벙어리로 살 뻔했다. 얼마나 흐뭇한지 그녀를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체격이 작아서 보듬어주기도 쉬웠다. 그날 그 소식은 우리 학교의 놀라운 뉴스였다.

 

 어느 날 화장품을 사러 평소에 단골로 갔던 고려당 앞에 있는 가게로 갔다. 그 화장품 가게 주인이 바로 오지민의 엄마였다. 무척 반가웠다. 지민이의 안부를 물으니 선생님들의 노력으로 말을 잘 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말을 한다고 했다.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지민아, 나는 너를 몹시 사랑하고 있었어!"  

                                                       (202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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