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의 위용, 천사다리를 넘어

2020.03.30 23:59

신팔복 조회 수:3

신안의 위용, 천사다리를 넘어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신팔복

 

 

 

  315일은 내 결혼 46주년이 된다. 큰며느리가 후원해 주며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19’로 손자손녀를 데려와 돌보느라 쉴 새 없이 갑갑한 참이었다. 아내와 둘이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염려 없는 청정지역을 찾아 전남 신안군으로 차를 몰았다. 목포에서 연륙교인 압해대교를 건넜다. 여기서부터가 섬들의 고장, 신안군이었다. 천사대교는 바다 위에 깔아 놓은 아스팔트길처럼 아스라하게 보였다. 신안군에 있는 갯바위섬을 제외한 1004개의 섬을 상징하여 이름 붙인 다리였다. 한참을 달려도 다리 기둥의 문이 머리 위로 연속 스쳐 갔다. 다리의 굴곡 때문인지 차가 가라앉는 느낌을 받아 조마조마했다. 왕복 2차선과 갓길이 있는 천사대교는 착공 9년 만에 공사를 끝내고 작년에 개통했다. 안전운행으로 해상연결 구간(7.2km)만 건너는데도 8분 정도가 걸렸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차창으로 몰려들고 좌우로 보이는 너른 잿빛 바다 위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유유히 떠 있었다.

 

  암태도의 오도선착장은 천사대교를 관망하는데 최고의 장소였다. 압해도의 송공리와 암태면 신석리를 잇는 천사대교는 그 위용이 어마어마했다. 현수교와 사장교를 연결한 복합교량으로 세계적 자랑거리였다. 국내에서 4번째로 긴 해상다리(10.8km)로 주탑의 높이가 195m나 되었다. 웅장하면서도 아득하여 딴 세상을 보는 것 같았다. 섬을 잇는 동맥이 되어 오늘도 차량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연도교(連島橋)로 이어진 섬들은 이제는 더이상 고립된 섬이 아니었다. 그만큼 지평이 넓어졌다. 좋은 세상이 되었다. 섬사람들의 옛날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해상 다리의 건설은 자체의 건축미만 자랑하는 게 아니었다. 미적 예술성, 기하학적 건축기술, 축적된 과학문명 등 국가의 저력이 담겨있었다. 터널공사, 항만시설, 해상다리 축조는 우리나라의 막강한 건축기술을 세계에 뽐내는 것이어서 보고만 있어도 자긍심이 느껴졌다.

 

  암태면 2번 국도를 따라 조금 가다가 기동삼거리에서 북쪽으로 달렸다. 여느 시골 마을과 유사한 논과 밭이 펼쳐졌다. 양파와 마늘이 훈풍에 잘 자라 주산지답게 즐비했다. 은암대교를 건너 자은도로 갔다. 자은면사무소를 지났고 해변이 가까운 ‘노을 길’을 달리며 드넓은 바다를 내려다보니 가슴도 확 트였다. 햇볕도 따사로운 고교선착장은 염전과 소금박물관으로 유명한 증도와 지척이었다. 20분도 안 걸릴 정도의 거리인데 풍랑이 심해 당분간 배의 운항이 금지되어 있었다. 볼거리를 찾아 둔장해변으로 갔다. 너른 백사장에 은빛 물결이 찰랑대는데 갯바위와 할미도를 잇는 1004m의 ‘무한의 다리‘를 수많은 사람이 걷고 있었다. 나처럼 바람을 쐬러 나온 사람들로 보였다. 거센 바람에 모자를 조심하며 사진도 찍었다.

 

  얼마 높지 않은 할미도 정상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보니, 섬과 바다는 태초부터 참 잘 어울리는 짝꿍이었구나 싶었. 불쑥 바다 저쪽 가보지 못한 섬들에 대한 동경이 솟구쳤다. 거센 바람에 밀려오는 파도가 벼랑에 부딪혀 깨지고 밀려나기를 반복했다. 바람은 배를 막지만, 바람개비는 잘도 돌렸다. 언덕너머 해변에 세워진 풍력발전기가 돌고 있었다. 15기의 프로펠러는 형과 아우처럼 잘 어울려 보였다. 그린에너지 사업인 만큼 앞으로 더욱더 발전되었으면 좋겠다.

 

  암태도의 남쪽 중앙대교를 넘어 팔금도로 갔다. 작은 섬이지만 효열비, 삼층석탑 등의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또다시 섬을 잇는 신안 제1교를 넘어 안좌도에 도착했다. 하루의 긴 해가 서쪽 하늘에 걸렸다. 네 개의 섬이 연결된 줄 알았는데 또 하나의 작은 섬, 자라도가 있어 찾아갔다. 안좌면 자라출장소가 있었다. 주민은 300여 명이라고 했다. 출향인들이 모여 세운 자라도 비문에 “어디에 살든 불굴의 정신으로 꿈을 이루어 고향을 빛냅시다.”라는 글귀는 나 같은 이방인에게도 애향심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안좌도 소곡리 퍼플교(purple)를 찾아갔다. 박지도와 반월도를 잇는 목재다리와 마을이 온통 자줏빛으로 칠해져 있어 이색적 풍경이었다. 풍랑으로 통제하고 있어 건너보지 못하고 아쉽게 돌아섰다. 남서해의 낙조에 물들어가는 천사대교를 다시 넘어왔다. 5개의 섬 주민은 농업과 어업으로 살고 있다. 소출은 적어도 쌀, 보리, 감자, , 마늘 등을 생산하고, 연근해에서 민어, 숭어, 낙지 등을 잡으며, 김 양식과 천일제염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섬 주민의 염원은 천사대교를 낳았고 생활의 거리를 좁혀 놓았다. 앞으로 더 많은 관광객이 이 섬을 찾아오게 될 것 같다. 요즘, 생활의 답답함을 털고 모처럼 즐거운 여행이 되어 즐거웠다.

                                                                         (2020.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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