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풍

2020.03.31 13:31

한성덕 조회 수:9

열풍

                                                      한성덕

 

 

 

  열풍(熱風)이란, 용광로나 연소실, 또는 열 교환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공기를 말한다. 또 다른 열풍(烈風)이 있다. 이는, 굵은 나무가 흔들릴 정도의 맹렬한 바람을 가리킨다. 속도로 치자면 초속 15~29m의 강한 바람이다. 거세게 일어나는 세상풍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 막을 내린 ‘미스터트롯’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연예 프로그램이다. 이거야말로 대단한 열풍(烈風)이었다. 종편 방송사상 예능프로그램 중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한다. 오죽하면, ‘코로나19로 기가 빠진 대한민국의 기를 세웠다.’거나, ‘위기 속에서도 미스터트롯을 보는 재미로 세상을 살았다.’는 말이 나올까? 누구를 들이댈 것도 없이 나를 보면서 ‘그럴 만도 하겠다’는 생각으로 수긍을 했다.

  나는 원래 트로트를 비롯한 대중가요를 몹시 싫어했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대중가요는 염세적인 노래로 염세가(厭世家)들이 부르는 노래인 줄로만 알았다. 그 노래를 부르는 자들의 표정이며 가사와 곡이 그랬다. 물론, 시대적인 아픔을 겪은 민족인 줄 왜 모르겠는가?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내게서 만큼은 아니었다.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분들께 대단히 실례인 줄 알면서도 속내를 드러냈다. 독자들의 너른 마음으로 이해를 바란다. 이렇게 밝히는 것은, 그토록 싫어하던 대중가요였는데 ‘미스터트롯’을 통해서 좋아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싶어서다. 열풍(烈風)에 휩싸일 정도는 아니었어도, 내 속의 열풍(熱風)만큼은 충분히 감지했다. 21세기형의 새로운 트로트 포맷(format)을 느꼈다고나 할까?

  몇몇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50여 명의 인력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것을 준비하는데 1년 가까이 걸렸다. 설계에 3개월, 면접에 3개월, 방송 출연하는데 3개월이었다. 지원자 15천여 명 중에서 101명이 선발되었으니, 150:1쯤 되는 경쟁이었다. 물론, 선발 기준이야 가창력이지만, 눈물겨운 사연과 더불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야기가 있어야했다. 12일 시작할 때의 시청률은 12.524%였는데, 점점 상승해 8회부터는 30%를 넘었다. 그리고 312일 마지막회는 무려 35.711%였다. 201137, KBS-2TV12일’이 세운 기록인 39.3%를 잇는 대기록이었다. 영화 천만 명의 관객을 ‘꿈의 관객’이라면, 방송의 30%를 ‘꿈의 시청률’이라고 한다. 종편방송으로서는 진기(珍奇)한 기록이다. 각각의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노래를 잘하는지 나도 모르게 빨려들었다. 노래와 춤, 다양한 표정과 고음처리, 독창적인 표현력과 넘치는 활력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출연자들이 매번 갈아입는 의상에 호기심이 많았고, 그때그때마다 무대가 바뀌는 것에 탄복했다.

  목회자로서의 전공은 ‘신학’이요, 당연한 필수다. 나 역시 총신대학교에서 7년의 신학과정을 마치고 목사가 되었다. 그러나 구상(構想)한 것을 쓰고붙이고, 만드는 재주가 있는 터라, 그 분야에 늘 목마름이 있었다. 결국은 ‘산업디자인’과를 새롭게 전공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의상과 무대에 관심을 가졌다는 얘기다. 생각해 보면, 의상과 무대를 눈여겨보다가 가요를 좋아한 건지, 대중가요를 좋아한 나머지 의상이나 무대에 관심이 있었는지는 아리송하다.  

 

  열풍(烈風), 얼마든지 좋다. 허나 비상식적인 열풍은 싫다. 아니, 절대로 안 된다. 지극히 건전하고 에너지가 퐁퐁 솟아나는 열풍이라야 한다. 트로트 같은 열풍이라면 대환영이다. 그 같은 열풍이 또 어디서 불어오나? 정말로 멋지고 품위 있는 열풍이, 우리나라 곳곳에서 활활 솟아올라 세계를 휘감았으면 참 좋겠다. 그거야말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이는 위대한 일이다.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야겠다. 갸륵한 소년의 착한 심정으로 말이다.  

                                             (2020. 3. 30. )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87 코로나19 정보 두루미 2020.04.05 5
1386 코로나19와 헤밍웨이 두루미 2020.04.04 12
1385 풀꽃 천자 최상섭 2020.04.04 2
1384 위기를 기회로 최기춘 2020.04.04 1
1383 있을 때 잘 할 걸 한일신 2020.04.03 2
1382 무언의 약속 박제철 2020.04.03 6
1381 그래도 잊어야지 한성덕 2020.04.02 2
1380 나와 음악 백남인 2020.04.01 12
1379 바람직한 노후 생활 두루미 2020.04.01 12
1378 정조대왕의 시심 유응교 2020.03.31 5
1377 청노루귀 백승훈 2020.03.31 13
» 열풍 한성덕 2020.03.31 9
1375 코로나19보다 더 두려운 경제위기 양희선 2020.03.31 9
1374 신안의 위용, 천사다리를 넘어 신팔복 2020.03.30 3
1373 버림을 준비하며 송병운 2020.03.30 17
1372 백 명의 친구보다 한 명의 적이 없어야 한다 두루미 2020.03.29 8
1371 사람들은 마음먹는 만큼 행복하다 두루미 2020.03.29 6
1370 '카뮈'에게 배우는 지혜 전용창 2020.03.29 12
1369 오지민이가 말을 해요 김창임 2020.03.29 1
1368 그때 그 시절 한일신 2020.03.2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