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약속

2020.04.03 03:04

박제철 조회 수:6

무언(無言)의 약속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금요반 박제철

 

 

 

 

  약속이라고 하면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있는 줄 알았다. 우주 자연의 약속도 있고, 사람과의 약속도 있으며, 내 자신과의 약속도 있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알게 되었다. 약속은 나의 신용이며 꼭 지켜야 한다는 것도 살아오면서 알게 된 지혜(智慧).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와 전쟁을 하면서는 지켜야할 약속 하나도 지키지 못한다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주를 정복하려 하고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人工知能)을 만들어 신()의 영역인 사람의 지능까지도 이겨버린 것이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인 바이러스 하나도 이기지 못하고 국가 간의 약속이나 질서도 다 팽개치고 각 나라마다 제 살 길 찾느라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가 2020년도 국가경제를  2%이상 성장시키겠다는 국민과의 약속도, 친구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겠다는 약속도, 가족끼리 만나서 식사하고 여행도 간다던 약속도 모두가 깨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자연의 봄은 어김없이 약속을 지키며 찾아 왔다. 봄을 알리는 신호라며 복수초 꽃 사진을 받은지가 엊그제인데 벌써 내 주위엔 꽃 천지다. 콘크리트 바닥의 틈새를 비집고 끈질긴 생명력으로 노란꽃을 피워내는 민들레부터 산수유, 매화, 개나리, 목련이 만발하고 벚꽃도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대자연의 약속이 없다면 우리 인간이 이 우주에서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구는 태양을 돌면서 밤과 낮의 약속을 지키고 있으며, 춘하추동의 약속도 지키고 있다. 이런 대자연의약속은 어쩌면 태고적부터의 약속인지도 모른다. 코로나는 대자연의 약속에 사람살리라는 불청객이 끼어들어 질서를 파괴하므로 생기는 재앙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국 제일이라는 진해의 벚꽃축제를 비롯한 수많은 지역의 아름다운 꽃축제가 사람들을 불러내는 계절이다. 봄이면 각 지방마다 자기네고장 축제 알리기에 바빴는데 올해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기네 고장에 오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으니 무언가 잘못된 성싶다. 창원시장은 전국에 있는 여행사에게 서신을 보내 진해벚꽃축제가 취소되었으니 오지 말아 달라고 했단다. 그럼에도 관광객이 모여들자 최고의 벚꽃을 자랑하는 명소엔 철책으로 울타리를 치고 사람을 못 들어가게 하고 있다. 진해를 비롯한 각 지방마다 사람과 자연을 떼어놓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꽃맞이 약속을 코로나가 깨트리고 있다.

 

 사람과 사람간의 거리두기로 떨어져야하고, 마스크로 입을 막아야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이 다가오면 회피하는 것이 요즘 풍속도다. 오후가 되면 아파트광장은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변한다. 세발자전거를 타고나온 어린아이들이 있는가하면, 축구놀이를 하는 초등생 어린이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뛰어논다. 3살 먹은 어린아이들부터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어른인 나도 마스크 쓰기가 답답하여 코밑으로 걸치다가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보고 얼른 코를 덥기도 한다. 하물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답답함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기로 한 엄마와의 약속 때문에 힘들지만 마스크를 벗지 못하고 있지 않을까싶다.

 

  그런가하면 한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므로 코로나로부터 청정지역이라는 제주도가 발칵 뒤집힌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유학에서 귀국한 어느 유학생이 14일간 자가격리 하라는 방역당국의 권고를 무시하고 지난 20일부터 45일로 어머니를 비롯한 지인들 3명과 같이 제주도 여행을 했단다. 이 여학생은 여행 첫날부터 오한과 발열증세가 있었음에도 여행을 감행했으며 결국 어머니와 같이 코로나 양성으로 판명되었다. 이에 제주지사는 손해배상은 물론 형사상 책임까지도 묻겠다니, 약속을 지키지 않으므로 본인은 물론 제주도에서 얼마나 많은 코로나 환자가 나올지 모른다.

 

 약속은 지키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약속은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한 덕목(德目)일지도 모른다.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용이기 때문이다. 신용을 쌓는데는 25년의 세월이 걸리지만 신용을 무너뜨리는데는 단 5분이면 족하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교통신호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하나뿐인 생명을 잃기도 하고, 음주 운전을 하지 말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큰 사고를 내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낸 사람도 여럿 보았다.

 

 벚꽃이 피면 가기로 했던 자연과의 약속도, 친구아들 결혼식에 가겠다던 사람과의 약속도. 가족까지의 약속까지도 지키지 못하는 봄이다. 지킬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자신과의 약속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어떤 약속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아침에 눈을 떴다가 잘 때까지 자신과 무언(無言)의 약속을 하며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의 할 일을 챙겨보고 저녁에는 그 약속에 소홀함이 없었는가 반성해 보곤 한다. 세수하고 아침밥 먹는 것도 수십 년 동안 해온 무언의 약속이다. 코로나와 전쟁중인 요즈음 정부와의 약속을 지키기에 누구나 피곤하고 힘들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뒤돌아보고 점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202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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