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사람

2020.04.05 16:33

한성덕 조회 수:10

감동을 주는 사람

                                                        한성덕

 

 

 

 

  나에게는 다양한 취미가 있다. 그러나 드라마 취향만큼은 별로다. 그래도 감동적인 연속극은 주저하지 않는다. ‘코로나 19’ 때문에 발이 꽁꽁 묶였다. 오라는 곳도 없지만 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수필쓰기에 좋은 나날로 여기고, 책상머리에 들어붙어 있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제풀에 꺾여서 씩씩거리고, 긴 한숨을 내쉬며 엉두덜거린다거나, 오만가지 인상을 쓰고 있다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삶의 무게가 떨어지고 살맛이 사그라질 판이다. 그런데 수필친구와 짝자꿍 하고 지내니, 엉덩이춤이라도 추면서 실쭉샐쭉하고 싶다. 수필의 고마움이 저절로 느껴진다.

  큰딸이, 야구드라마 ‘스토브 리그’를 추천했다. 난 언제나 축구, 배구, 탁구, 다음이 야구여서 제목부터 낯설었다. 드라마 입구에서 제목을 설명했다. ‘스토브 리그(stove league)’란, 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시즌을 시작하기 전까지 각 구단들이 준비하는 일을 말한다. 이를테면 선수선발, 계약갱신, 트레이드가 그것이다. ‘스토브’란, 난롯가(stove)에 둘러앉은 팬들이 지난 시즌에 대한 평가와 뒷이야기 등으로 입씨름을 벌이는데서 비롯되었다.  

  ‘스토브 리그’는, 16부작으로 지난 2월에 막을 내렸다. 다 끝난 드라마를 연속적으로 보는 매력에 푹 빠져서 닷새 만에 끝냈다. 선수들의 경기장면이 아니라, 프런트(front)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였다구단내부를 들여다보는 듯한 재미, 대형사건이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 해체수순을 밟나 싶었는데 똘똘 뭉쳐서 살아나는 장면, 그리고 야구를 전혀 모르는 백승수(남궁민 역) 단장의 활약상이 멋져 보였다. 그의 돌파력과 리더십, 인내심과 굽히지 않는 단호함, 일종의 전쟁물 같은 극을 휴먼드라마로 엮어 낸 탄탄한 연기력이 돋보였다. 나도 원칙을 중시하지만 망가질 때가 더러 있다. 그러나 백 단장은 전혀 달랐다. ‘시대에 따라 각광받는 리더십의 유형은 바뀌지만, 원칙을 따르는 리더십이 성공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의 강한 마음, 설득력, 끈끈한 응집력으로 어그러진 조직을 바꾸려는데 외형이 약해보였다. 허나, 뭔가 한 방이 터질 것 같으면서도 꺼내들지 않는 매력에 단단히 끌렸다.

  어느 경우든지 꼴찌는 존재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꼴찌였으며,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꼴찌였던 팀이, 기죽지 않고 판타지를 꿈꾸는 게 진주라면, 실패에 익숙한 자들에게 에너지를 퍼 나르는 감독의 열정은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이런 드라마에 홀려서 웃고, 울며, 분노를 쏟아냈다. 그 중 회장아들의 빈둥대며 건들건들하는 행위, 시도 때도 없는 갑질에 상무로 일하는 사촌형의 화가 폭발했다. 팔씨름에서 이기자 손등을 테이블에 몇 번이고 내리쳤다. 그래도 분이 가시지 않자, 얼굴에 강펀치를 사정없이 날렸다. 만신창이가 된 아들을 보면서, 이 시대의 갑질들을 두들겨 패는 것처럼 느껴져 속이 후련했다.

 

  드라마의 감동은 단장 형제가 몰고 왔다. 아우는 고등학교 때 잘 나가던 야구선수였다. 앞만 보고 달리라는 형을 믿고 뛰다가 엎어졌다. 그때부터 휠체어에 앉게 되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쓰러졌으며, 형은 야구가 무조건 싫었다. 죄책감에 시달려 함께 사는 동생마저 야구중계를 못 보게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가족의 부양을 책임지고 야구단 단장이 된다. 공교롭게도 동생 백영수(윤선우 역), 형이 단장인 야구단 기록관에 응시한다. 세 명의 심사관 중 단장은 당연한데, 동생을 보는 순간 형을 속였다는 생각에 숨이 막히고 자신의 원칙이 무너졌는지 영점 처리하고 만다. 집에서 형을 만난 동생은 화가 치밀었다.

“못 걸어 다니는 건 난데, 왜 형이 죄책감에서 허우적거려, 난 거기서 빠져나왔는데, 왜 형이 거기서 못 빠져 나오는 거냐고?

영수는 충격적인 말을 던진다.

 “형은 야구단 단장이면서, 동생은 야구중계도 못 보게 해? 그게 얼마나 위선적인지 알기나 해?

자신도 모르게 동생을 압박했다는 사실에 눈물을 쏟는다. 나는 남동생들만 넷이어서 동생이 귀한 줄 모르고 컸다. 그것과 맞물리면서 돈독한 형제사랑이 눈물을 흥건하게 했다. 동생의 말에 형은 펑펑 운다. 후회와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걸 보면서 나도 하염없이 울었다.

  시청률 22,1%, 이름값보다 실력으로 입증한 드라마, 그 배경에는 좋은 이야기와 흡입력 있는 연기, 그리고 연출의 힘이 존재했다. 백 단장의 입에서, “믿지만 확인은 해야죠.”하는 말이나, “한번 굽히면 편해지는 걸 알지만, 한번 굽히면 평생을 굽혀야 합니다.”는 말이 명언처럼 남는다. 특히,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가 서로 도울 거니까요.”하는 말은, 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처럼 들렸다. 노력하면, 모두가 도와서 우승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바로 이때를 겨냥한 말 같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는 게 얼마나 좋은가? 아내와 자녀들을 비롯해서,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내가 감동을 주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돌아보게 했다.

                                        (2020. 4.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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