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안 되던 아이

2020.05.09 17:02

박기순 조회 수:14

20190817                                            이해 안 되던 아이

 

                                                                                              노기제

   이젠 풀어 놓아도 이해 받을 수 있겠다. 동급생끼리라면 이해 해 주길 바라지도 않았던 사건이다. 60년 전, 부중 2학년에 진급해서 김행목 선생님이 담임이신 5반이다. 우리 동기에 친 동생을 두신 오빠 같은 총각 담임선생님이다.

새 학년, 새 학급, 새 친구들과 섞여 이루어 진 첫 시간이라 기억 된다. 1 학년에 입학했을 첫 시간엔 반장을 뽑지 않았다. 입학성적으로 반장, 부반장이 임명되었고 2학기에 무기명 투표로 선거를 치렀다.

   초등학교 때도 반장 선거는 반드시 무기명으로, 쪽지에 내 손으로 반장 시키고픈 아이의 이름을 써서 제출하는 투표 방식이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발표력이 왕성하지 못한 것은 확연한 상황이다. 내가 누구를 반장 감으로 생각하는지 확신도 없다. 감히 손들고 아무개요 라고 의사 표시를 할 수 있는 아이는 극소수다.

   동의한다는 의견조차 발표 하지 못하던 수줍은 아이들 앞에서 파격적인 방법을 제안하신 담임선생님의 속내를 난 단박에 알아챘다. 순간, 아차 잘못 생각하셨다는 판단이 섰지만 감히 반대할 엄두를 못 냈다. 담임선생님의 체면을 생각했던 때문이다. 내가 읽은 선생님의 마음은 입학성적이 일등으로 1 학년 4 반 반장했던 아이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아이가 반장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신 거다.

   여학생 반, 4, 5, 6 세 반에서 33%씩 섞여 새로운 세 반으로 구성 되었으니 겨우 자기하고 같은 반 했던 애들 외에는 친분이 없다. 그중 용감한 아이가 있으면 추천과 거수로 투표하는 방식이 먹혀들겠지만, 내 판단엔 무리수가 높은 결정이다.

   누구 반장 할 사람을 추천하세요. 정적이 흐른다. 다시 선생님의 음성이 들린다. 또 조용하다. 나처럼 발표력이 강한 아이가 나서 주어야 한다. 답답할 만큼 시간이 흐른다. 드디어 누가 일어나서 박숙자요. 추천한 아이는 박을우다. 그것으로 끝이다.

어느 누구도 선 듯 일어나 다른 아이를 추천하지 않는다. 단독후보로 만장일치다. 그렇게 해서 2학년 일 학기 반장은 결정이 됐다. 석연치 않은 결과에 반박을 했던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좋은 입학성적으로 일 학년 4 반 반장을 일 년 했던 아이였다. 내가 반장이 못 되어 이견을 제시 한 것은 결코 아니다. 또래 아이들이야 생각이 부족해서 지가 반장이 못 돼서 불평이라 말한다. 그들에게 반박하지 않는다. 어린애들의 지능으로 그렇게 생각이 든다는 걸 나는 이해한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선생님의 부족한 판단력을 지적하고 싶었던 것. 그로 인해 교사 초년병이던 김행목 선생님은 편치 못한 고역을 치루셨으리라 짐작했다. 그것으로 조용하게 일 학기가 흘렀다. 반장 된 아이는 어느 촌에서 반장으로 경험이 풍부한 수재였으니 잘 이끌어갔다. 더구나 한 학년 위 선배가 동향인이라 지난 시험문제 프린트물이며 각종 혜택을 다 받아서 성적도 일등을 놓지지 않았다. 부러웠다.

   성적이나 반장됨을 부러워했으면 나도 공부 좀 했을텐데 고향에서 함께 했던 선배가 곁에 있어 온갖 도움을 준다는 사실만이 나를 허하게 만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지 않는가. 자주 우리 반으로 반장아이를 찾아오는 선배가 반갑지 않은 존재로 각인되고 있었다.

   동갑내기 반 아이들과의 관계는 특별한 감정이 없다. 괜스레 모두들 어려 보여서 나와는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생각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돕는다. 그 애들이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친구 할 수 있는 또래가 아니다.

   2 학기가 되었다. 혼이 난 경험이 있던 담임선생님은 빈 종이를 돌리고 무기명 투표로 반장을 뽑았다. 아직까지 김행목 선생님께 해명을 하지 못했는데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 14 살 계집애의 어른 뺨치던 이론을 지금인들 믿으실까 모르겠다.

믿거나 말거나, 예나 지금이나 장 자리에 관심 없이 편하게 살고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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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월 부고동창회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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