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창의 무덤 앞에서

2020.05.25 02:44

최상섭 조회 수:30

이매창의 무덤 앞에서

 시인‧수필가 최 상 섭

 

 

 

  진즉부터 식사를 한 번 하자고 하면서 서로의 일정 때문에 미루어왔던 부안의 K 문인과의 만남을, 같이 근무하는 김 문인이 주선하여 셋이서 모처럼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작년에 시집 그리고 지난주에 발송한 수필집을 받은 K 문인이 마련한 답례형식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K 문인은 여전히 고상하고 점잖은 모습이었고 교양미가 넘쳤다. 그리고 약간의 흰머리에 화장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은 마치 농익은 과일처럼 중후한 모습 그대로였다. 문인끼리의 만남은 참으로 풍성한 대화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우리에게 “산문(山門)에 기대어”로 잘 알려진 송수권 시인의 매창공원 시비 문제로 화제가 집중되었다. 부안의 유명 문인들과 관계자들이 내일 모여서 송수권 시인의 “이매창 무덤 앞에서”란 시비를 철거할 것인가 그대로 존치할 것인가를 논의한다는 것이었다.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먼저 이 시를 소개한다.

 

                   이매창李梅窓의 무덤 앞에서

                                              송수권 시

                                              김병기 서

             

              이 세상 뜻 있는 남자라면 변산에 와서

              하룻밤 유숙하고 갈 만하다

              허름한 민박집도 많지만

              그러나 정작 들려야 할 민박집은 한 군데

              지금도 가얏고 소리 끊이질 않고

              큰 머리 옥비녀 꽂았는데

              머리 풀기를 기다리는 여인

              서해 뻘밭을 끓이는 아아 후끈 이는 갯내음

              변산해수욕장을 조금만 비껴 오르면

              바다 우렁이 속 같은 고동껍질 속에

              한숨 같은 그녀의 등불이 걸려 있다

 

 

 

              온몸의 근질근질한 피는 서해노을속에 뿌리고

              서너 물밭 간드러진 물살에

              창창하게 피는 낚시줄

              이 세상 남자라면 변산에 와서

              하룻밤 그녀의 집에 들려 불 끄고 잘 만하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하던 님,

              뻘 속에 코를 처 박고 싶은 여름 날

              아아

              이 후끝이는 갯내음

 

  나와 김 문인은 식사가 끝나자 K 문인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매창공원으로 달려갔다. 그간에 몇 번 와 봤지만 스크랩해두지 못한 시비들을 촬영했다. 그리고 오래전 써 두었던 매창에 관한 글에다 사진을 첨가해 둘 생각이다. 특별히 송수권 시인의 시비 앞에서 다시 한 번 음미하며 문제 발단의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이 시의 의미를 살펴보면 뛰어난 명기 이매창의 무덤을 보고 그가 살아 있다면 하룻밤의 정사를 원하는 남자의 객고 같은 작은 의식이 서리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란한 수사어를 써서 매창의 고매한 인격이 자연스럽게 배어나고 있다. 그리고 매창은 부안이 자랑하는 조선시대 기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허균과의 교분이며 또 매창공원에는 허균이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라고 쓴 시비가 흘러가는 세월 아래서 인간사 덧없음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시를 낭송하는 자리에 있을 때 내 차례가 오면 이 시 “이화우 흩뿌릴제”를 낭송하곤 했다. 이렇게 이매창은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여류 문인으로 각인되었고 죽어서 빛나는 기녀 시인임을 말해서 무엇하랴? 그리고 부안군에서 부안읍 서외리 공동묘지에 있던 초라한 매창의 묘를 옮기어 매창공원을 조성한 것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전라남도 고흥이 고향이고 후세대 서정시인이며 순천대학에서 강단에 섰던 송수권 시인의 시비는 아마 매창공원이 만들어질 때 자연스럽게 조성되었으리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10개가 넘는 오석에 새긴 시비가 저마다 독특하고 정감이 넘치는 문학성이 있다. 그런데 송수권 시인의 시비만 철거를 논의함은 내 생각으로는 조금은 편협한 사고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이 든다. 왜냐면 누구도 이 시를 감상하면서 송 시인이 매창을 폄하해서 쓴 시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대로 존치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되었다.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여류문장가로 유명한 부안 명기 이매창을 추모하여 조성한 매창공원에서 흘러가는 구름 한 점도 잡아둘 수 없는 세월의 마차 바퀴인 것을,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훗날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시비를 그대로 존치하기로 결론을 모았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이로 인해 이 시가 더욱 화제를 모으리라 기대한다.                      

                                                   (2020. 5. 7.)                                    

 

*교각살우(矯角殺牛) :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가 수단이나 정도가 지나쳐 일을 그르침.

 

 

 

 

 

 

 

이매창의 무덤 앞에서

 시인‧수필가 최 상 섭

 

 

 

  진즉부터 식사를 한 번 하자고 하면서 서로의 일정 때문에 미루어왔던 부안의 K 문인과의 만남을, 같이 근무하는 김 문인이 주선하여 셋이서 모처럼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작년에 시집 그리고 지난주에 발송한 수필집을 받은 K 문인이 마련한 답례형식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K 문인은 여전히 고상하고 점잖은 모습이었고 교양미가 넘쳤다. 그리고 약간의 흰머리에 화장하지 않은 수수한 모습은 마치 농익은 과일처럼 중후한 모습 그대로였다. 문인끼리의 만남은 참으로 풍성한 대화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우리에게 “산문(山門)에 기대어”로 잘 알려진 송수권 시인의 매창공원 시비 문제로 화제가 집중되었다. 부안의 유명 문인들과 관계자들이 내일 모여서 송수권 시인의 “이매창 무덤 앞에서”란 시비를 철거할 것인가 그대로 존치할 것인가를 논의한다는 것이었다. 이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먼저 이 시를 소개한다.

 

                   이매창李梅窓의 무덤 앞에서

                                              송수권 시

                                              김병기 서

             

              이 세상 뜻 있는 남자라면 변산에 와서

              하룻밤 유숙하고 갈 만하다

              허름한 민박집도 많지만

              그러나 정작 들려야 할 민박집은 한 군데

              지금도 가얏고 소리 끊이질 않고

              큰 머리 옥비녀 꽂았는데

              머리 풀기를 기다리는 여인

              서해 뻘밭을 끓이는 아아 후끈 이는 갯내음

              변산해수욕장을 조금만 비껴 오르면

              바다 우렁이 속 같은 고동껍질 속에

              한숨 같은 그녀의 등불이 걸려 있다

 

 

 

              온몸의 근질근질한 피는 서해노을속에 뿌리고

              서너 물밭 간드러진 물살에

              창창하게 피는 낚시줄

              이 세상 남자라면 변산에 와서

              하룻밤 그녀의 집에 들려 불 끄고 잘 만하다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하던 님,

              뻘 속에 코를 처 박고 싶은 여름 날

              아아

              이 후끝이는 갯내음

 

  나와 김 문인은 식사가 끝나자 K 문인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매창공원으로 달려갔다. 그간에 몇 번 와 봤지만 스크랩해두지 못한 시비들을 촬영했다. 그리고 오래전 써 두었던 매창에 관한 글에다 사진을 첨가해 둘 생각이다. 특별히 송수권 시인의 시비 앞에서 다시 한 번 음미하며 문제 발단의 원인을 생각해 보았다.

 이 시의 의미를 살펴보면 뛰어난 명기 이매창의 무덤을 보고 그가 살아 있다면 하룻밤의 정사를 원하는 남자의 객고 같은 작은 의식이 서리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현란한 수사어를 써서 매창의 고매한 인격이 자연스럽게 배어나고 있다. 그리고 매창은 부안이 자랑하는 조선시대 기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허균과의 교분이며 또 매창공원에는 허균이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라고 쓴 시비가 흘러가는 세월 아래서 인간사 덧없음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시를 낭송하는 자리에 있을 때 내 차례가 오면 이 시 “이화우 흩뿌릴제”를 낭송하곤 했다. 이렇게 이매창은 자연스럽게 조선시대 여류 문인으로 각인되었고 죽어서 빛나는 기녀 시인임을 말해서 무엇하랴? 그리고 부안군에서 부안읍 서외리 공동묘지에 있던 초라한 매창의 묘를 옮기어 매창공원을 조성한 것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전라남도 고흥이 고향이고 후세대 서정시인이며 순천대학에서 강단에 섰던 송수권 시인의 시비는 아마 매창공원이 만들어질 때 자연스럽게 조성되었으리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10개가 넘는 오석에 새긴 시비가 저마다 독특하고 정감이 넘치는 문학성이 있다. 그런데 송수권 시인의 시비만 철거를 논의함은 내 생각으로는 조금은 편협한 사고가 아닐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이 든다. 왜냐면 누구도 이 시를 감상하면서 송 시인이 매창을 폄하해서 쓴 시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대로 존치하는 게 좋으리라 생각되었다.           

 

 

 

 황진이,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여류문장가로 유명한 부안 명기 이매창을 추모하여 조성한 매창공원에서 흘러가는 구름 한 점도 잡아둘 수 없는 세월의 마차 바퀴인 것을,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훗날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시비를 그대로 존치하기로 결론을 모았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이로 인해 이 시가 더욱 화제를 모으리라 기대한다.                      

                                                   (2020. 5. 7.)                                    

 

*교각살우(矯角殺牛) : 소의 뿔을 바로 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는 뜻으로, 결점이나 흠을 고치려다가 수단이나 정도가 지나쳐 일을 그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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