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곤란한 입장

2020.06.20 13:48

노기제 조회 수: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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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2                             하느님의 곤란한 입장

 

                                                                                                 박기순(65)

 

   “하느님이 바빠서 그런 기도는 못 들어주시거든.”

   일상생활 속에서 드리는 기도의 일부를 친구에게 얘기 한 후 받은 핀잔이다. 나의 기도는 과연 어떤 모양새일까? 친구의 의견처럼, 바쁘니 그 정도는 네가 해결하라고 외면하시는 종류인가? 자잘한 일상을 모두 올려드리며 아뢴다. 내가 원하는 바를 미리 결정하지는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고자질 하는 수준이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을 유치한 일상을 하늘 아버지께 세세히 보고 드린다.

   내가 하는 생각이, 행동이 과연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지 어쩐지 판단이 안서는 때가 있다. 이를테면 각막이식 수술이 필요하단 진단을 받았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뭔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느냐고 의사를 바꿨다. 네 명의 다른 의사 진단이 똑같다. 짧은 방황 끝에 처음 진단을 내린 의사에게로 다시 갔다. 남달리 유능한 각막 전문의로 카이저 병원 안과 의사들이 강력하게 추천 한다.

   일 년을 기도했다. 의사에게 맡기기 싫었다. 아버지가 직접 안수하시면 간단히 회복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시야가 뿌옇게 가려 안 보이게 됐다. 불편한 쪽을 손으로 가리고 한 쪽 눈으로만 보면 시야가 뚜렷하다. 그렇다면 이식 수술을 하자. 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 인간의 손에 나를 의탁하도록 보고만 계실까. 그러다 실수하면? 재수술 하게 되고 결국엔 실명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는데. 내가 이해 못하는 무슨 특별한 뜻이 있으실까?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하늘의 대답을.

   하느님의 입장을 한 번 생각하고 싶다. 나처럼 모든 걸 떠맡기고 칭얼대는 자식들이 엄청 많다.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시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사랑을 주신다는 하느님이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존재가 있다. 우리 인간과는 비교 할 수 없는 영특한 사단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 우리만 편애 하신다는 불평으로 자칫 우리를 청구할 사단에게, 빌미를 줄 수 없는 하느님의 입장이다.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아, 매사에 하느님께 충성하는 욥이라고 불평하며 그를 시험하도록 청구했던 사단의 교활함을 기억하면서 또다시 하느님을 곤경에 빠트리는 일은 없어야 되겠다.

   가끔, 담판을 짓겠다고 하느님께 대드는 경우가 있다. 나더러 어쩌라고요? 나 이러다 죽어요? 죽고 싶어요. 이렇게 참고 살다 병들어 죽는 게 하느님 믿고 사는 삶이에요? 정 그러시면 난 하느님 없다고 생각할래요. 왜 나만 참고 살아야 하는데요? 어느 순간엔 슬픈 표정으로 나를 지긋이 보고만 계시는 모습이 그려지기도 한다. 아버지와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다. 지혜를 구해서 아버지의 참뜻을 구별하고 싶다.

   작정을 하고 찾아 온 대학동창에게 은퇴 후 삶의 밑천을 홀랑 날렸다. 동창이니까 의심 없이, 하자는 대로 해 주면서 경영하던 약국을 넘기려던 남편이, 그만 사기를 당했다. 새빨간 거짓말로 시간 끌기, 야비한 방법으로 트집 잡기, 문서화 된 약속도 안 지키고, 남편의 이름으로 28만원이란 액수로 몰래 외상 약을 자신의 영업장소로 받아서 착복을 시도 했다. 결국 아내의 입장에서 내가 끼어 들어 진열된 약품들을 돌려보내고 외상 빚을 청산하도록 했다. 권리금 못 받은 손해에 인벤토리를 땡 처리 헐값으로 처분하며 배신감에 아파하는 남편이 바보 같아서 미웠다.

   원수를 사랑하라고요? 사기 친 남편의 동창을 내가 용서 못한다. 12년이란 세월이 지났건만, 뻔뻔한 그 동창의 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좋은 마음으로 거래를 시작해서 손해를 당한 남편도 미운 판에, 누굴 사랑할 수 있겠는가? 이런 지경에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요즘에서야 곰곰 생각 한다. 아직 한 번도 고민 하지 않은 기도 제목이다.

   내가 어떤 기도를 올려드려야 하늘 아버지가 기뻐하실까. 억지로는 못한다. 왠지 마음이 누그러지고 있는 느낌이다. 12년이란 시간을 주시며 기다리신 울 아버지의 사랑이 내 가슴을 움직이고 있다. 돈에 욕심이 크지 않은 우리 부부가 먹잇감으로 보였겠지. 약아빠진 잔머리 굴려, 뜯어 먹어도 별 상처 없이 넘어갈 허술한 것들이라 짐작 되어 그랬겠지. 그렇다. 맞다. 우린 그거 잃었어도 사는데 지장 없었다. 여전히 풍족했다. 오직 상처가 된 건, 친구라면 친구요, 동창이라면 동창이라서 한 가닥 의심도 안 했던 단순한 믿음이 짓이김을 당한 남편의 가슴에 생긴 깊은 상처다.

   이쯤해서 그 사건은 잊을 것 같은 예감이다. 내 힘으론 못하겠지만 적어도 잊게 해 주십사고 기도는 하고 싶다. 누구를 위해서도 아닌, 저절로 생겨나는 훈훈한 기도임을 고백한다. 이정도의 푸념에도 내 입을 막으려는 남편, 나보다 먼저 잊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음 다친 후, 큰 병 얻을까 두려워 남편을 놓고 쉬지 않고 올린 기도에 넉넉히 응답 주신 하늘 아버지께 드디어 나 자신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한다.

   원수를 원수로 생각하면 용서가 안 되지만, 원수였어도 그저 나약한 하느님의 자녀라고 생각되면 그가 곧 내 형제가 되는데 어찌 불쌍한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우린 모두 어리석은 어린양 같아서 언제 어떤 치명적인 못된 짓, 즉 하느님을 슬프시게 할는지 모른다. 그러니 너도 나도 다 똑같은 부족한 인성임을 인정하면 얼굴 마주하며 따스한 미소 건넬 수 있겠다.

   살아있는 순간순간을 기도 없이는 숨도 쉴 수 없는 나는, 오직 한 가지 이치만 생각하면 된다. 내가 올리는 기도가 혹여 하느님을 곤란하시게 만들지는 않는지? 사단 앞에 당당하게 하느님 체면을 지켜드릴 수 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기도하고 싶다. 기뻐 받으시는 기도, 하느님의 자랑스런 자녀로서의 기도, 앞으로 쉬지 않고 고민해야 할 나의기도 내용들에 하늘의 도우심이 있기를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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