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방문과 담배 한 갑

2020.06.20 14:14

구연식 조회 수:3

가정방문과 담배 한 갑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가정방문은 신학기 때 선생님들이 교육지도에 참고하고자 가정의 교육환경을 살펴보고 부모님들과 면담을 통해서 교실의 교육 활동과 연계시키려는 선생님들의 교육적 출장 활동을 말한다. 1950년 말에는 우리 집에 선생님이 오셨고, 1970년대에는 내가 선생님이 되어서 학생 집을 방문했다. 그 당시는 학부모님들이 자기 자식을 지도하시는 선생님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담배 한 갑을 주시는 것이 보통이었다.

 

 1950년대 말에는 한국의 6·25 전쟁 직후여서 특히 농촌은 생활이 어려워 세간살이는 변변치 못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장남인 나에게는 교육열이 남다르셨다. 그 당시 선생님들이 집에 오셔서 제일 먼저 살피는 것이 학생용 책상이었다. 우리 집에는 책상이 없었다. 어머니는 자식 기 살리려고 궁여지책으로 널찍한 밥상을 안방에 들여놓고 어머니의 앞치마로 씌워 그 위에 책 몇 권을 올려놓으셨다. 그 옆에는 어머니가 새댁 때부터 애지중지 사용하셨던 우리 집 동산(動産) 1호인 재봉틀을 놓으셨다. 어머니는 선생님을 맞이하시노라 바쁘셨다. 흙먼지 나는 토방과 마당에 물을 뿌리시고 수수 빗자루로 싹싹 쓰셨다. 나는 방과 마루를 걸레로 닦았다.

 

 이렇게 선생님의 가정방문은 물론 손님이 오실 때면 집안청소를 하고 손님을 모시는 것이 예의였다. 옆집에서 선생님이 우리 집으로 오실 모양이다. 아버지는 선생님이 곧 오신다기며 헛기침을 하시더니 논좀 둘러보시겠다며 나가셨다. 어머니는 선생님을 반가이 맞이하신다. 선생님은 안방을 보시면서 아, 연식이 책상이 있군요!하신다. 어머니는 앞치마로 덮어 놓은 밥상을 책상이라고 보여드려서인지 약간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셨다. 어머니와 선생님은 마루에 걸터앉으셔서 교육에 관한 말씀을 나누시고 선생님은 다음 학생 집으로 가시기 위해 일어나셨다. 어머니는 선생님 대접을 제대로 못 해드려서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어머니 행주치마 주머니에서 아버지도 좀처럼 못 피우시는 권연(卷煙) 1갑을 선생님 손에 들려주셨다.

 

 나는 1970년대에 군산 K여자고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평소 숫기가 없는 성격이라 교실에서 수업할 때는 여학생들을 바로 볼 수가 없어서 교실 천장이나 칠판만 보고 수업하고 나오기 일쑤였다. 어느 때는 복도에서 대여섯 명의 여고생들이 어깨동무하고 길을 비켜주질 않아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어쩔 줄 모르는데, 나이 드신 여 선생님이 이놈들!하면서 길을 터주셔서 간신히 빠져나갔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그런 내가 1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때도 신학기 3월에는 가정방문 기간이었다. 교감 선생님은 가정방문을 하고 방문일지를 작성하여 반드시 결재를 받으라 하신다. 그리고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당부하셨다. 가정 방문을 하기 전에는 학생상담 카드 등을 통해서 얻은 학생의 전반적인 것을 숙지하고 부모님과 대화에 참고했다.

 

 군산은 항구도시여서인지 부둣가에는 피난민들이 살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학생 집을 방문했다. 학생 역시 6·25 전쟁 때 피난 온 가정이다. 학생 어머니는 객지 생활의 어려움과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가정학습 분위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시원한 음료수 한 컵을 주셨다. 이것저것 상담을 마치고 다음 집으로 향하는데 학생 어머니는 가게의 담배 한 갑을 호주머니에 넣어주셨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괜찮다고 극구 사양하니 사탕 한 봉지를 기어이 주셨다. 교감 선생님의 민폐 끼치지 말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지금도 새만금방조제나 군산 해망동 횟집 단지를 갈 때면 그 여학생 집 앞을 지나다닌다.

 

 몇 년 후에는 남자고등학교로 전출했다. 그 당시는 3학년 졸업반 담임을 맡았는데, 어느 때보다 학생들에게 전심전력을 다 하여 입시지도에 최선을 다했다. 다른 학년은 몰라도 3학년들은 개인 상담도 될 수 있으면 가정방문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런데 E 학생은 개별상담은 물론 진학상담도 전혀 할 수 없는 학생이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집 위치를 알아내어 여러 번 방문 끝에 아버지를 뵙게 되었다. 해질 무렵인데 손수레를 끌고 허름한 아저씨 한 분이 대문 앞으로 오더니 나를 보고 누구세요?하시면서 만사가 귀찮은 말투였다. ‘, 저는 E의 담임선생님입니다.라고 하니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E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하면서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셨다. 가정방문을 통해서 아버지의 직업을 알았다. 아버지는 군산시의 청소부이셨다. 그 당시는 시청에서 고용하여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 아니고, 골목골목 각종 쓰레기를 치워주고 주민들에게 몇 푼 받는 수고료로 생활을 하는 그런 직업이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생활고로 가출하셨단다. 아버지 말씀이 나는 이렇게 천하게 살아도 저라도 공부 열심히 하여 잘살기를 바라며 이 고생을 하는데 자식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한다는 말씀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대접해야 하는데 집이 누추해서 들어가자는 말씀을 못 한다면서, 청소 수고료로 받은 천 원짜리 몇 장을 꺼내 주시면서 담배라도 사서 피우라고 했다. 나는 담배를 안 피우지만 사서 피운 거나 마찬가지로 고맙다면서 아버님과 인사를 나누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학생 아버지는 손수레 위에 앉으셔서 담배만 피우시는지 담뱃불만 켜졌다가 사라지고 켜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그 학생은 대학 진학은 포기하고 전업사에 취직하더니 이제는 어엿한 전업사 사장님이 되었다. 그 학생 아버님은 어떻게 사시는지 찾아뵙고 싶다.

 

 지금은 가정방문은 커녕 생활기록부에 학부모의 학력이나 직업도 기록할 수 없다. 학생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선입견에 의한 피교육자를 평가하고 교육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서로 부대끼면서 사람 냄새 물씬 풍겼던 옛날의 교실 문화가 그립다. 지금은 학생들이 뽑아주는 커피도 마시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는 일부 교사들의 부실 성적(成績) 관리나 성()희롱 등에서 기인(基因)할 것이. 교육은 서로 눈높이를 맞추고 손을 잡아주며 가슴으로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차가운 심장과 전자 배터리로 조정하는 로버트식 교육으로 정착되고 있다. 교육의 일반적인 목적은 국가 사회에 알맞은 바람직한 인간상의 형성에 있다는데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인간으로 되어가는 것같아 안타깝다.

                                                                          (2020.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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