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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5                    마음 뚜껑을 활짝 열고 정리 정돈 할 때

                                                                                                   노기제

 

   나도 모르는 내 마음. 마구 흐트러진 채 쌓여 있어 빈 공간이 없다. 모두 꺼내야 한다, 차근히 살펴보아야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겠다. 좁은 입구가 막혀 있다. 손을 넣어 본다. 하나씩 잡아 들어내려니 잡히는 것이 없다. 분명 무언가로 꽉 채워져 있다고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이상하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 사랑하고 싶은 마음, 화를 내며 미워하고 싶지 않은 마음, 남을 누르고 일어나고 싶지 않은 마음, 경쟁하며 무언가를 차지하려 애쓰고 싶지 않은 마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대로 살고자 했던 마음,...마음, ...마음들.

   결과는 이리 피하고, 조리 피하고, 섞이지 않으려 도망치면서 텅 빈 마음이 되어있다. 따라서 머리도 텅 비어 버리고 따스한 모래밭에 큰대자로 누워서 파란 하늘과 눈 맞춤하며 히죽거린다. 가볍다, 모두 빈 상태라 무게를 느낄 수 없다.

   2019년 새해 첫 달에 나를 진단 해 본다. 어떻게 살아 왔기에 이룬 것이 하나도 없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들이 있었나 의심 되는데 기억이 안 난다. 하루하루 별 불만 없이 혼신을 다 해 살기는 했는데 왜 남은 게 없을까.

   나는 왜 살았나?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생각을 두어 번 했던 것은 분명하다. 절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냥저냥 시간을 때우며 지금 여기까지 와 있는 걸 보면. 그런데 이게 싫다. 앞으로 이런 모양새로 계속 생명을 유지한다는 자체가 멀미를 일으킨다.

   아직도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 온 방식대로 열정을 쏟아 시작을 하고, 금방 흥미를 잃고 시들해져 때려치우는 불상사는 더 이상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처음이다. 좋아서 시작했어도 싫증나면 미련 없이 버리고 돌아서는 습성을 버려야 한다는 신통한 생각을 스스로 하고 있음이 좋다.

   편한 길은 아닐 것이다. 억지로 참고 견뎌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그러다보면 끝이 있을 것이고 내 것으로 떨어지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난 그 결과로 무언가를 힘들여 노력해서 이루었다고 기뻐할 것이다. 그리하고 싶다.

   마음을 다져먹고 오랫동안 들락날락 했던 클래식 기타 동호회에 다시 얼굴을 내 밀었다. 십여 년 낯익은 얼굴들이 반겨준다. 그들의 첫 연주를 관람한 날, 새 회원으로 등록하고 오늘에 이르도록 회비 납부로 회원의 면목은 유지했지만, 매 해 치르는 연주회에 동참을 못하고 있다. 결석으로 이어지며 연습은 불참이고 기타 뚜껑은 닫힌 채 세월을 보낸 탓이다.

   여고 졸업하면서 처음 손 댄 기타가 수십 년이 흘러도 내 것이 되질 않았다. 손가락이 아프면 그만 두고, 악보 읽기가 어려워지면 집어 치우고, 선생이 맘에 안 들어 돌아 서고, 이유도 다양하다. 연습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학원이나 학교나 동호회에서 시간을 보내면 그것으로 난 잘하고 있다고 자신감이 생기곤 했다.

   하고 싶어서 손댄 것이니 끝을 보자. 몇 십 년이 흘러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것에 한을 품자. 이를 악물고 기어코 해 내리라. 모이는 사람 중에 맘에 안 드는 사람 있다면, 그 사람 꼴 보기 싫어 안 가겠다 맘먹지 말고 그 사람을 사랑하려 노력하자. 최소한 나 보다 기타는 잘 치는 사람이니 좋은 점부터 인식하고 예쁘게 생각하자.

   어느 면에서나 그들 모두는 나 보다 잘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까불지 말자. 잘난 척 착각하지 말자. 최소한 그들은 부족한 나를 반갑게 맞아주고 있음에 감사하자. 어려워 혼자 연습도 못하는 부분을 참을성 있게 차분히 알려 주는 따스한 마음이 고맙다. 이번에야말로 열심히 따라가겠다고 선포했더니 손가락 내밀며 약속하자고 응원 해 주는 배려에 가슴이 떨린다.

   “눈밭에서 신선한 공기로 건강하게 즐기다 오셨으니 오늘 부터는 연습하셔야죠. 지난 모임 때 배운 것 기억하세요?”

   하루에도 몇 번씩 문자로 카톡으로 연습 종용 해 주는 회장님이 눈물 나게 고맙다. 싫증 잘 내는 내게 코믹하게 채찍질하며 시간을 할애한다. 밤이 늦어도 하루에 한 번은 기타를 잡는다. 초보용 악보가 짜증나면 내가 즐기던 곡을 꺼내 연주하면서 나름대로 행복을 가꾼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온 몸을 감돈다. 하루하루를 해 보겠다는 노력으로 채워보자. 귀찮아질 수도 있다. 또다시 쉽게 포기할런 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손가락 걸고 맹세하자던 인자씨 정성을 기억해 내자, 그들에게 나란 존재는 포기 못 할 중요한 회원인 모양이다.

   텅 빈 내 마음에 그들의 사랑과 관심을 넣어 보관하자. 감사함으로 보답하려는 나의 노력도 함께 넣어두자.  2019년 정기 연주회에선 합주라도 참여할 수 있게 나를 다듬어보자. 연습하면 독주도 넉넉히 해 낼 가능성이 보인다고 아낌없이 힘 실어주는 회원들이 내겐 보물이다.

   내일 모임에 초빙된 옛 회원은 현 버팔로 대학 기타 교수님이시니 결석하면 안 된다는 극성 회장님의 전화다. 연습해야지 한 번 더 다짐하며 기타를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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