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공원에서 만난 이 충무공

2020.06.29 04:07

고안상 조회 수:2

순국공원에서 만난 이 충무공

-前方急 愼勿言我死-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고안상

 

 

 

  노량대교를 지나 15981118, 19일 조명연합군과 왜군이 마지막으로 격전을 벌인 노량해협 인근 이순신 순국공원을 찾았다. 촉촉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우뚝 서 있는 장군의 비문이 나를 한동안 그곳에 멈추게 했다.

 10여 년 전부터 초등학교 동창모임에서는 해마다 봄과 가을에 여행을 다녀온다. 오늘은 올들어 두 번째 여행을 떠나는 날이다. 그런데 세력이 아주 강하다는 제18호 태풍 미탁이 한반도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걱정은 되지만 이틀 뒤에 남해안에 상륙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우리는 명총무 병목을 믿고 남해로 여행길에 나섰다.

 특히 이번 여행은 항상 우리 모임에 헌신적인 손기남 초대회장이 많은 경비를 부담한다고 해 전보다 더 많은 친구들이 참여했다. 울산, 김해에 사는 친구들은 남해로 직접 오고, 서울과 천안에 사는 친구들은 전세버스로 정읍으로 내려와 점심을 함께 나누었다.

 정읍에서도 한정식으로 이름난 비원에서 보리굴비 정식으로 맛있는 점심을 나누었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가 내린다 해도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하고 나왔으니 걱정은 되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그동안 못다한 정담을 나누며 가다 보니, 벌써 섬진강을 지나 하동에 닿았다. 버스는 다시 하동 인터체인지를 지나 남해로 향했다.

 하동과 남해를 잇는 다리로 1973년에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인 남해대교가 있다. 그동안 남해를 오갈 때마다 아름답고 멋진 남해대교를 이용해왔다. 그런데 40여 년 동안 교통량이 크게 늘어 새로운 다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새로 건설된 다리가 바로 노량대교다. 총연장 3.1km의 세계 최초의 경사 주탑 현수교로 9년 간의 공사 끝에 2018913일 완공 개통되었다. 남해군 설천면 덕신리와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를 잇고 있는데, 이 지역은 임진왜란 때 노량대첩이 벌어졌던 곳이다. 이 다리는 이순신 장군의 승전을 기념하여 현수교의 경간을 지탱하는 주탑을 'V'자 형태로 기울여 건설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

  공원 사당 입구에 서있는 비에는 ‘前方急 愼勿言我死 (전쟁이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라고 새겨져 있었다. 장군께서 운명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부하에게 남기신 말씀이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나라를 걱정하신 장군의 충성심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비를 맞으며 침묵하는 가운데 장군께서 마지막 떠나셨던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라와 겨레를 한없이 사랑하셨던 장군이시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장군께서 저만치 하늘 위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듯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어려운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가르침을 주실 것만 같다.

 

 130여 척의 조명 연합군이 500여 척의 왜군을 물리친 노량해전은 조선이 승기를 잡은 전투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위대한 장군을 잃은 안타까운 싸움이기도 했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하자, 왜군은 전의를 잃고 철군을 서두르고 있었다. 장군께서는 그런 사실을 알고 퇴각하려는 왜군을 이대로 물러나게 할 수 없다며, 마지막까지 적군에게 최대한 큰 타격을 주겠다는 강한 의지로 최선을 다하시다가 그만 적의 총탄을 맞고 순국하셨다.

 충무공께서 떠나신 지 420여 년이 지났어도, 장군의 충정만은 아직도 이 나라 우리 후손들의 가슴 깊은 곳에 큰 울림으로 남아있다. 이는 장군께서 온몸을 바쳐 나라를 지키고자 하셨던 진정어린 우국충정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문득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되돌아 보았다. 지나온 나의 삶이 장군께는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참으로 부끄럽고 민망하다. 나라 사랑은커녕 오직 나 하나 살고자 몸부림치며 살아온 나날들이 아니었던가? 나라와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해보겠다는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살아온 것만 같다. 장군께서 우리 같은 필부들을 만나시면 뭐라고 말씀하실까? 그저 송구하고 부끄러울 뿐이다.

 장군께서는 평소 가난하고 어려운 백성들을 보시면 저들을 안타까워 하시며 돌보셨고, 전장에서는 부하들을 진정으로 아끼셨다. 또 충무공은 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자주 문안을 드렸고, 어머니의 소식만 듣고도 반가와 하였으며, 몇 날만 소식이 끊겨도 걱정을 하셨다고 한다. 이런 그의 효심은 <난중일기>의 곳곳에 배어 있다. 이 충무공의 생애를 돌아보며 ‘이런 분이 나라를 이끄신다면 우리 나라와 사회가 얼마나 편안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게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우리가 태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순신 장군을 만나뵙기 위해 이곳을 찾아온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군의 비문을 통해 그분의 거룩하고 숭고한 정신을 배울 수 있었던 점은 아주 큰 보람이었다.  

 이제 머지않아 선거철이 다가온다. 이 나라와 사회를 이끌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곳에 찾아와 이순신 장군을 만나 뵈었으면 좋으려니 싶다.

                                                                           (2019.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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