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뎅이

2020.07.26 19:25

윤근택 조회 수:2

 ‘더뎅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언제고 내 세안(洗顔)의 첫 단계는, 세숫비누 거품을 턱 언저리에 듬뿍 묻혀 거울을 마주하고 ‘싹싹’ 면도하는 일.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나면, 거울에 비치는 양쪽 입꼬리 부위(部位)에 어떤 흔적이 더욱 뚜렷이 나타나, ‘자기연민’케 한다. 사실 왼 연지볼 한 군데에도 입가처럼 어떤 일로 말미암아 멜라닌색소가 침착되어 검버섯처럼 더욱 뚜렷이 나타난다. 이 또한 자기연민토록 한다. 이처럼 내가 면도를 할 적마다 ‘국민학교 (나는 분명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에 다녔다. 특히, 이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이 이름을 써야겠다.) 시절’을 떠올리곤 한다. 위에서 소개한 흔적들은 ‘헌데’즉,‘부스럼’의 자국이라는 거. 당시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또래 아이들도 입가에 헌데를 달고 지냈다. 길게는 몇 년 동안 그렇게. 심지어 머리에도 부스럼이 난 아이들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 때까지는 “머리에 소똥도 아니 벗겨진 어린 것이... .”란 말이 유행했겠는가. 영양실조와 의약취약으로 말미암은 흔적이겠거니. 그런데 비해, 당시 우리 또래의 요즘 아이들은 하나같이 부모들을 잘 만나, ‘헌데’ 하나 없이 자라난다고 단언해도 될 듯. 내 입가 헌데는 학년이 올라가도 그대로였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손거울을 들고 반듯이 누워, 얼굴을 비추며 화로의 재를 그 헌데에다 조금씩 얹곤 하였다. 그러면 ‘쫘르르’ 소리를 내곤 했다. 아마 살균이 되는 모양이었다. 차차 헌데가 낫기는 했지만, 그게 화근이 되어, 이처럼 늙어갈수록 차차 멜라닌 색소 침착으로 이어져, 가뭇하고 아릿한 흔적을 남긴 것이다. 이 글을 적기에 앞서, 인터넷을 통해 살펴본즉, 그 헌데가 ‘포도상구균의 피부 감염’이다.

  사실 우리네가 겪은 것은 헌데뿐만이 아니다. 볼에 ‘마른버짐’도 생겨났다. 마른버짐이란, ‘피부가 건조하고 가려우며 흰 비듬이 일어나는 피부 질환’을 일컫는다. 겪어본 적 없는 젊은 독자들을 위해 이렇듯 서비스한다. ‘마른버짐’말고도 소가죽처럼 환부(患部)가 딱딱해지는 ‘쇠버짐’도 있긴 하였다. 버짐은 ‘백선균(白癬菌)’의 소행이라는데, 그때는 왜 값싸고 효능 좋은 약이 없었던 건지? 하더라도, 우리의 볼에 마른버짐이 일면, 좋은 일도 하나 생겨났다. 구두쇠 같은 어머니는 장에서 웬일로 엿도 사오곤 했다. 그 아까운 엿을, 솥전에 녹녹하게 녹여, 그 엿에다 가마솥 밑 검댕이를 묻혔다. 그러고는 그 검댕이 묻은 엿으로 마른버짐 환부를 꾹꾹 눌러주었다. 그러면 마른버짐의 보풀들은 용케도 사라졌다. 이제금 생각해보니, 그 검댕이는 요즘 흔히 말하는 ‘목초(木醋; pyroligneous acid woodvine)’의 효능과 맞닿아 있는 듯. 하여간, ‘마른버짐에는 검댕이를 묻힌 엿이 ‘왔다!’’였다. 이참에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임학도(林學徒)였던 윤 수필가가 덤으로 알려드릴 게 있다. 가로수로 늘어서 있는‘플라타너스’의 별칭(別稱)이 여럿 된다는 사실. 참, ‘플라타너스’는 ‘평원에서 자라는 너무’란 뜻을 지녔다는 점부터 알려 드리고.‘버짐나무’혹은 ‘버즘나무’라고도 한다. 그 수피(樹皮)가 마치 쇠버짐처럼 벗겨진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방울같이 생겨 먹은 열매가 조르르 3개 이상 달리면 버짐나무, 열매가 1~3개 조르르 달리면 단풍버짐나무, 열매가 달랑 하나만 달리면 양버짐나무. 그 열매가 방울같이 생겼다 하여 ‘버짐나무’를, 아예 ‘방울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깊은 밤, 내가 국민학교 시절에 재와 검댕이로 헌데와 마른버짐을 다스렸던 게 전혀 비과학적이거나 비의학적인 의료행위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게 된다. 재[灰;석회]와 검댕이[목초]를 살균제 내지 소독제로, 그것도 오늘 낮에, 내가 또다시 썼다는 거 아닌가. 바로 가을감자 종자 조각[切片] 소독에, 선인(先人)들의 권고대로, 재를 묻혔다는 거. 사실 우리 인류가 최초로 고안해내었고, 요즘도 우리네 농부들이 주로 사용하고 있는 ‘고전적인 농약’은, ‘석회’와 ‘유황’을 혼합한, 이른바 ‘석화유황합제’라는 거. 하여간, 나는 씨감자 조각을 소독코자, 한 때 내 헌데를 다스렸던 재를 다시 썼다. 그러면 ‘감자더뎅이병’을 예방할 수 있으니까.

  감자더뎅이병이라...... 실은, 내가 이 글을 적기 직전까지만 하여도 ‘더뎅이’의 개념도 몰랐다. ‘흔적’이니 ‘상처’이니 하는 개면도 정확히 몰랐다. 다만, 감자가 주로 걸리는 병이며, 그 병 때문에 ‘강원도 감자’또는 ‘강원도 씨감자’가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는 사실만 똑똑히 알고 지내 왔다. 아니, ‘감자더뎅이병을 피하려면 강원도에 감자를 심어야 하고, 제주도는 날씨가 포근하니 감귤을 들여오면 되겠고, 고전적인 엇갈이 배추가 아닌 수확량 많은 ‘알배는 배추’를 일본에서 들여와야 하고,‘겹 패튜니아 육종을 했고’ 등의 혁혁한 공을 세웠던 어느 육종학자와 관련해서 ‘감자더뎅이병’을 거의 기계적으로만 외워 익혔을 뿐이다. 그분은 <우리나라 농업분야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육종학자 우장춘(禹長春, 1898∼1959) 선생. 그분은 일본에서 들여온 감자가 ‘더뎅이병’ 등으로 피해를 입자, 서늘한 강원도 고랭지에 재배하게 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정부와 농민들에게 권하게 된다. 해서, 그때부터 병충해를 해결하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사실 감자는 퇴화(退化)가 심한 작물이라, 씨감자를 거듭해서 심게 되면 작황(作況)이 나빠진다. 그러기에 해마다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씨감자를 사다 심어야 한다. >


* 위 < > 부분은 본인의 또 다른 수필, ‘감자 이야기’의 일부이기도 함.

전체 읽기 :

http://blog.daum.net/yoongt57/585

'감자' 야기기2017.05.09


  이제, 내가 위에서 잠시 더듬거렸던, ‘감자더뎅이병이라..... ’에 관해서만 이야기하면 되겠다. 다시 말하지만, ‘더뎅이병(scab)’은 감자의 주요 병 가운데 하나다. 더뎅이병은 ‘열매의 껍질이 터실터실 마치 부스럼딱지처럼 되는 병’을 일컫고, 몇몇 곰팡이와 몇몇 세균이 일으킨다고 한다. 자연 이제 하나 남겨둔 내 이야기의 한 꼭지인‘더뎅이’는, ‘부스럼 딱지나 때 따위가 거듭 붙어서 된 조각’을 이르는 순우리말.

어디 한 번 상상해보라. 더뎅이병에 걸린 감자나 감귤이나 사과나 배는 얼마나 볼품없겠는가. 그것들 자신들은 또 얼마나 서글플까. 나날 내가 면도 때에 거울을 통해 바라보게 되는 입가 흔적도 언제나 아릿할밖에. 다 아물었다고, 이젠 다 아물었다고 스스로를 달래며 지내다가도 불쑥불쑥 되살아나는 옛 기억, 옛 상처는 끝끝내 더뎅이로 남으리니.


 작가의 말)


  끊임없이 적는 것은 나의 몫, 죽는 그날까지 천형(天刑)으로 여기며 적는 것은 나의 몫. 재미 있어 혹은 재미없어 읽든 말든 그것은 독자님들 당신들의 몫.

  또다시 고백한다.

  “나는 수필작품을 쓰고 있노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대신, 아직도 못다 쓴 연서(戀書)를 적고 있다고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느 여인에게. 해서, 편편 내 열정은 식을 줄 모르는 걸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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