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2020.08.02 13:50

황복숙 조회 수:8

 안골은빛수필문학회     

 

 

 

   일요일 아침은 언제나 김치볶음밥이었다. 여학교 졸업 후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요리를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일요일엔 내가 김치볶음밥 요리사!  신 김치를 잘게 썰어 푸라이 팬에 넣어 달달 볶으며 흥겨워 노래를 부르곤 했다.  그 시절에는 정년이 빨랐다. 아버지가 정년퇴임 후에도 동생들이 학생이어서 어머니와 같이 전주역 앞에서 조그마한 중국집을 경영하셨다. 지금은 고속버스 또 승용차로 왕래를 하지만 그때는 기차가 주요 운송수단이었다. 주로 밤에 이용하는 손님이 많았기에 아버지 어머니는 가게에서 밤샘 하시는 날이 많았다. 동생들은 이불을 둘둘말아 자고 있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배고픈 일요일 아침, 가족들보다 일찍 일어나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일은 동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선물이었다.

   먼저 일어난 나는 달궈진 푸라이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신 김치와 참치를 달달 볶다가 찬밥을 넣고 고슬고슬 볶았다. 대파와 양파, 감자를 썰어 간을 하고 돌김을 잘게 부수어 뿌려 준다. 그리고 그 위에 달걀을 풀어 푸라이 해 꽃잎처럼 볶음밥 위에 올려 내면 볶음밥 완성! 그렇게 볶음밥이 완성되면 우리는 푸라이 팬 주위로 동그랗게 모여 앉아 숟가락을 부딪치며 밥을 먹었다. 하얗게 끓인 콩나물국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푸라이팬을 비우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뒤집어 쓴 이불 사이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엎드려 텔레비전을 봤다. 김치 냄새를 빼려고 열어 둔 문사이로 불어 들어온 상쾌한 바람이 방안 깊숙이 쏟아지던 노오란 아침 햇빛, 햇살 사이로 먼지들이 동동 떠 다녔다. 나는 그것을 일요일의 공기라고 했다. 일요일의 공기는 동생들과 나의 체온으로 적당히 데워진 따뜻한 방안의 온기와 고소한 김치볶음밥 냄새, 시끄러웠지만 경쾌하게 들렸던 텔레비전 소리 때문에 일요일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행복했다. 일요일은 짧기에 더 행복했고 아름답게 빛났다.

   젊음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붙잡아도 언제까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잠깐 머물다 사라진다.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기에 더 마음껏 누리려고 했었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김치볶음밥을 그리워 했다. 지금은 다들 결혼하여 손자손녀를 본 동생들도 나처럼 그때의 김치볶음밥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혼자일 때는 덩그러니 앉아 텔레비전도 끄고 조용한 거실에서 책을 읽다가 그것도 귀찮아 몸을 움직이기 싫어 거실 가운데 멀뚱히 앉아 김치볶음밥의 일요일을 상기했다. 세상에서 김치볶음밥이 가장 맛이 없다고 하며 먹기 싫어하는 남자와 일생을 함께 살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일요일 아침이었을 게다. 신경통이 심해 날이 찌푸린 날이면 늦게까지 자리에 누워 들썩이는 나에게 그가 불렀다.

 "이게 뭐야?  , 김치볶음밥 좋아 하잖아? 내가 만들어봤지."

 

 접시 가득 김치볶음밥이 담겨져 있었다. 고맙기도 하고, 뭐라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감동했지만 갑작스러워 어리둥절하고 감동한 티를 내려니 수줍고 부끄러웠다. 한 숟가락 떠먹었다. 기대로 가득찬 눈이 반짝 빛났다. 쌍까풀진  큰 눈이 더 커 보였다. 별 맛은 없었지만 감동해 턱이 움직이고 입안에 가득 침이 고였다. 고기는 싫어하고 냄새 지독한 김치를 좋아한다고  핀잔을 주던 남편이 아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진지했다. 아삭한 김치가 씹히고, 잘게 부서진 참치가 혀를 간질이고, 기름진 밥알이 요리조리 입속에 굴러다녔다. 입안 가득히 퍼지는 향긋한 김치 향!    

 ‘무슨 맛이지?’ 남편도 한 숟가락 떠먹었다. 얼굴이 살짝 찡그려지더니 큰 코 평수가 서서히 넓어 졌다. 나오는 웃음을 참고 맛있게 먹었다. 실망해 하며

 "어떡하지? 맛이 없네!"

 "왜, 맛이 없어맛있게 먹었는데."

 김치국물을 퍼 부운 빨간 김치볶음밥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나를 위해 만든 정성이기에 정말 맛있는 김치볶음밥이었다고 칭찬해 주었다.

   장마로 한 달이 넘도록 폭우를 퍼부었다 멈추었다 반복하고 있다. 올해의 휴가는 아들네와 함께 했다. 강원도엘 갔다. 산속의 여름은 장대비가 쏟아지려는지 공기는 낮게 가라 앉아 내 허리춤쯤에 머물러 있었다. 그날 나는 일요일의 공기를 선물했다. 40년이 훌쩍 지나 잊혀진 추억의 공기를! 새벽 일찍 일어나 김치볶음밥 대신 카레볶음밥을 했다. 서로 대화를 나누며 먹었다. 식성이 까탈스러운 아들은 불평이 가득했다. 며느리는 소리 없이 먹으며 맛이 있다고 했다.
 식성이 더 까칠한 손자는 삼겹살을 구워 주었다. 샤워하고 닦지 않은 것처럼 땀이 줄줄 볼을 타고 흘렀다. 더워서 숨을 쉴 수 없었지만 웃었다. 행복했다.

 "아들, 아무말 하지 말고 맛있게 먹어."  

 "엄마, 처녀 때 외삼촌과 이모의 추억이 나네요." 

 카레향은 호텔 거실을 떠 다녔다. 손자는 떼굴떼굴 구르며 노래를 부르다가 엎드려 만화책을 읽었다. 아들내외와 커피를 마셨다. 거실은 적당한 온도였다. 잊혀져 사라졌을까? 그리워 할 때마다 꺼내어 주는 일요일의 공기, 거실 밖에는 장맛비가 그칠 줄 모르고 산속의  공기는 우울한 듯했지만 우리 가족은  부른 배를 두드리며 큰대 자로 누워 노래를 부르며 행복했다. 진짜 맛이 없어 구역꾸역 먹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하지만 눈가에는 행복이 그득했다. 그날은 많은 비가 내렸다. 비내리는 날은 언제나처럼 행복을 선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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