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계의 트로트 열풍

2020.08.02 19:12

김학 조회 수:16

가요계의 트로트 열풍

김 학

요즘 가요계에서는 트로트 열풍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고 있다. 어린이도 어른도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고 도전하고, 방송사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에서 푸짐한 상품을 내걸고 노래 경연을 시킨다.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싫어할 수 없다. 나도 조금만 더 젊었다면 트로트 가수가 되려고 도전해 보고 싶을 정도다.

나는 매주 토요일이면 KBS-2TV에서 방송되는『불후의 명곡』을 즐겨 시청한다. 그 프로그램에서 인기 가수들은 물론 낯선 가수들도 많이 만난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노래가 마치 높은 소리 내기 시합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 구별도 없이 높은 음을 내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때로는 귀에 거슬린다. 남성 가수들의 테너나 바리톤 음성은 들을 수 없고 오직 여성의 소프라노 음성만이 최고인 양 평가되는 것 같아서 아쉽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 가수들도 목소리를 갈고 닦아서 가늘고 뾰족하게 만들어 여성의 목소리를 이기려고 하는 느낌이 든다. 남자 가수들조차 여자 가수들의 높은 소리 내기 경쟁에 뛰어드는 것 같아 호감이 가지 않는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트로트가 가요계를 주름잡고 있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판소리 소리꾼인 송가인이 트로트 가요계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성악가인 김호중도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여 사랑을 받는다. 굵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트로트 가수가 되니 그들이 출연하는 텔레비전 음악 프로그램에 호감을 느낀다.

옛날이나 요즘이나 트로트 가수들의 목소리는 굵고 투박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나름대로 감미로운 목소리로 듣는 이들의 감정을 사로잡는다. 요즘은 트로트가 대세라서 그렇겠지만, 방송사마다 새로운 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 프로그램을 맡은 PD들은 시청률 때문에 얼마나 고뇌가 클까?

요즘 트로트 가수로 혜성처럼 등장한 젊은이들은 거의 모두가 KBS전국노래자랑과의 깊은 인연을 내세운다. 어릴 때부터 KBS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여 상을 받은 이들이 많다. 어떤 트로트 신인가수는 무려 네 번이나 출연하여 상을 받았다고 자랑했다. 90대 중반의 KBS전국노래자랑 MC 송해 선생과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KBS전국노래자랑은 트로트 가수의 산실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것 같다.

가요계를 보면 오랜 세월 무명가수로 살다가 어느 날 노래 한 곡이 히트하면 인기가수로 떠올라 스타가 되곤 한다. 대표적인 트로트 가수가 우리 고장 정읍 출신 송대관이다. 그의 히트곡은「해 뜰 날」이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 단다.’라는 가사처럼 이 노래 때문에 송대관은 인기 가수가 되었다. 그 노래 때문에 송대관은 오랜 무명시절의 슬픔을 씻고 가요계에서 제왕대접을 받게 되었다. 그런 스타가수가 되면 이 방송 저 방송에 출연하노라 바쁘고, 전국 방방곡곡의 크고 작은 행사에 초대를 받는다. 그러면 언제 배고픈 시절이 있었느냐 싶게 호주머니도 두둑해진다. 지금도 그런 대박을 기대하며 가요계를 기웃거리는 이들이 많다.

KBS는 또 『트롯 전국체전』이란 프로그램을 신설했다고 예고를 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단 한 사람의 가수가 금메달을 받고 트로트가수로 혜성처럼 등장하게 될 것이다. 전국 8도의 대표가수에서 글로벌 K트로트의 주역이 될 새 얼굴을 찾으려는 KBS의 대형 프로젝트 프로그램인 셈이다. 과연 어떤 트로트가수가 태어날지 자못 기대가 된다.

우리나라 문단(文壇)을 보아도 가요계나 크게 다를 바 없다. 해마다 신문사의 신춘문예에서 당선의 기쁨을 누리려고 노심초사하는 문학청년들이 많다. 신춘문예에서 당선을 하지 못하면 각종 문예지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여 문인으로 등단하기도 한다. 문예지에서 시인이나 수필가, 소설가, 평론가 등으로 등단하면 문인으로 대우를 받는다. 가수가 히트작을 남겨 대박을 터뜨리듯 문인들도 대박을 터뜨리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문인들은 날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머리를 굴리며 키보드를 두드리지만 그리 쉽게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도 수필가로 등단한 지 40년이 되었고 1,000여 편의 수필을 발표했지만 아직 송대관의「해 뜰 날」처럼 대박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가요계보다 문학계가 대박을 터뜨리기에 더 어려운 것 같다.

가요계에서 트로트 열풍이 불듯 문학계에서도 수필열풍이 불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글을 쓰는 맛도 쏠쏠하다.

(2020.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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