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화서

2020.08.07 13:30

윤근택 조회 수:1

  ‘무한화서(無限花序)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내 ‘만돌이농장’ 여러 종류의 작물들 가운데에서 ‘참깨’와 ‘고추’는 무한화서로 꽃피우고 열매 맺는다. 참깨와 고추가 무한화서로 꽃피우는 까닭에, 유한화서로 꽃피우는 여느 작물보다 병충방제에 신경을 더 써야 한다. 두 작물은 ‘서리가 내릴 때까지 계속 꽃대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에’ 취약한 어린 열매에 초점을 맞춰 거듭거듭 살균살충제를 쳐야하니까. 게다가, 두 작물 공히 ‘열대성 한초(旱草)’곧, ‘가뭄을 잘 견디는 식물’이고, 하필이면 성장기가 한여름이어서, 장마가 길어지는 해에는 아주 난처해진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그 약효가 10일 안팎인 저독성 살균살충제만 시중에 나와 있으니, 농약살포 주기인 10일을 놓쳐버리기 십상이다. 여느 해보다 장마가 길 대로 길어진 올 여름. 나의 깨농사와 고추농사는 식물성바이러스 창궐로 이미 볼 장을 다 보았다. 아예 망쳐버렸다. 오죽했으면, ‘참깨 농사는 자루에 곡식을 담아보아야 (그 끝을)알 수 있다’는 말이 나왔겠는가. 가뜩이나 우리네 인간들은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허덕이는 터에.

농사 경험이 없는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라도 내가 위 단락에서 ‘겅중겅중’ 들려준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미루어 짐작하시리라 믿고. 그렇더라도 다 접어두고서라도 ‘무한화서’의 개념만이라도 정확히 알려드려야겠다. 참, 무한화서를 설명하기에 앞서, ‘화서(花序;inflorescence)’ 곧, ‘꽃차례’부터 설명함이 옳겠다. 꽃차례란, ‘꽃대에 달리는 꽃의 배열’을 일컫는다. 꽃이 피는 순서에 따라, 크게 유한화서(有限花序)와 무한화서로 나눈다. 유한화서란, 꽃대의 위에서 밑으로 혹은 꽃대 중앙에서 가장자리로 향하여 순차적으로 꽃피우는 걸 이른다. 무한화서란, 유한화서와 반대로 꽃대 밑에서 위로, 혹은 꽃대 가장자리에서 중앙을 향해 순차적으로 꽃피우는 걸 일컫는다. 유한화서는 다시 단정화서(單頂花序)와 취산화서(聚散花序)로 갈라진다. 무한화서는 다시 원추화서(圓錐花序),꼬리화서, 두상화서(頭狀花序)......우산화서, 총상화서(總狀花序), 산방화서(繖房花序) 등 무려 17개 모형으로 갈라진다. 명색이 임학도(林學徒)였던 나는 이 글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다시금 손때 묻은 그 <樹木學> 교재를 펼쳐, 모형도를 보아가며 위 사항을 채웠음을 고백한다.

  하여간, 올해 나의 참깨농사와 고추농사는 숫제 망쳐버렸다. 다시금 말하거니와, 그 두 작물의 꽃피우는 버릇 즉, 꽃차례가 유한화서가 아닌, 무한화서인 까닭에 병충해방제에 나름대로 애로점이 있었다. 위에서도 이미 밝힌 바 있지만, 이들 두 작물은 꽃대 끝에 그야말로 무한하게 새롭고 어린 열매를 달기에, 그 취약아들한테 초점을 맞춰 거듭거듭 방제를 하여야 하는 까닭에. 어느 멍청한 농부인들 ‘국번 없이 131’을 모르랴.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렇듯 131번으로 전화를 걸어 일기예보를 듣는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참깨밭과 고추밭에 바이러스 예방약과 탄저병 살균제와 이들 온갖 병균의 매개자인 진딧물과 담배나방 구충제를 섞어 진하게, 아주 독하게 살포하였지만... .

  사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깨농사와 고추농사는 이미 결딴났지만, 내가 이들 두 작물의 농사를 접을 수 없는, 나만의 비밀이 있다. 나는 이모작(二毛作)의 묘미를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해마다 참깨이랑과 고추이랑에 ‘멀칭비닐(mulching 비닐; 토양 피복 비닐)’을 깔되, 남들과 달리, 한해짜리 얇은 비닐이 아닌 두해짜리 두꺼운 비닐을 깔곤 한다. 물론, 그 가격은 더 비싸다. 참깨재배의 경우, 참깨 그루터기를 쪄낸 다음, 김장배추와 김장무를 이어서 심게 된다. 이모작이다. 사실 나뿐만이 아니라 대개의 농부들도 참깨재배 후 김장배추와 김장무를 그렇게 이모작 하지만... . 고추재배의 경우, 참깨재배와 마찬가지로, 무서리가 내릴 즈음, 고추대궁을 뽑는 대신, 고추 그루터기를 전정가위로 차례차례 잘라낸다. 그러면 멀칭비닐은 거의 온전한 상태로 유지된다. 그 자리에다 일정 간격씩 꽃삽으로 뚫은 다음 양파모와 마늘을 심게 된다. 그것들은 월동하여 자랑스레 양파가 되고 마늘이 된다. 이 또한 이모작이다. 농업에서 이르는 ‘생력(省力)’즉, ‘일손 줄임’을 그렇게 지혜롭게 실천하곤 한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나의 이 글을 통해 무한화서로 꽃피우고 열매맺는 참깨와 고추의 습성을 제대로 안 이상, 앞으로 꼭히 나처럼 행해야 할 작업이 하나 더 있다는 거 잊지 마시길. 이제 그 정보를 공유코자 한다. 두 작물은 공히 그야말로 무한하게 열매를 맺으니, 서리가 내릴 무렵에 달린 녀석들은 채 익기도 전에 채 굵기도 전에 스러질 것은 번연한 이치. 농부의 입장에서는 그것들마저 낭비요소다. 그것들은 뿌리로부터 빨아들여 자기 손위 형제자매들이 나누어먹어야 할 영양분만 축낼 따름이니. 그러면 참깨재배와 고추재배에서 놓칠 수 없는 기술은 바로‘순지르기’ 아니겠는가. 고추야 그 끝물고추의 크기로 단박에 순지르기 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고, 참깨는 ‘삭과(蒴果)’ 곧, ‘속이 여러 칸으로 나뉘고 칸마다에 많은 씨가 든 열매’이고, 맨 아래에 달린 열매로부터 두어 개 삭과가 이뤄질 때가 수확적기이니, 그 시기에 맞춰 무한화서의 그 막내둥이들을 미련 없이 자르면 될 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두 작물의 수확은 이미 결딴났지만, 내가 두 작물의 농사를 차마 접을 수 없는, 진짜 나만의 비밀이 하나 더 있다. 무한하게 꽃 피우는 그 버릇이 하도 가상하여서라도... . 서리가 내릴 때까지 그야말로 무한히 꽃을 피우고 무한히 열매를 맺는 그 품성이 갸륵해서라도 해마다 참깨농사와 고추농사는 이어갈 요량이다. 참말로, 고작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아니다. 아니다. 내 아련한 추억 속에는 ‘꽃차례’가, ‘무한화서’가 있었다는 걸. 알퐁스 도데(Alponse Daudet, 프랑스, 1840~1897)의 단편소설 <마지막 수업> 속 ‘나’인 ‘프란츠’같은 심정의 젊은이가 하나 있었다는 걸. 다행스레, 요행히도, 어느 수필가가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적은 그 글을 어디서 읽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블로그에 곱게 옮겨가 있는데, 내가 다시 퍼올 수가 없도록 꾸며져 있어, 부득이 이렇게 독자 여러분께 전하면서 이 글을 맺을까 한다.

아래를 클릭하면,

전체를 읽으실 수 있다.

꽃차례/ 윤근택

https://blog.naver.com/magoldak/221988052889


  작가의 말)

  위 블로거가 퍼간 나의 글, ‘꽃차례’를 ‘랑데부 작품’으로 여기며, 동시에 위 글 ‘무한화서’의 말미로 여기며...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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