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새벽송

2020.09.10 17:57

곽창선 조회 수:47

 할머니와 새벽 송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곽창선

 

 

 

 케롤 송이 울리면 잊고 지내던 성탄절 해프닝이 떠오른다. 교회마다 성탄절 새벽에 교인 집을 돌며 찬송을 부르는 행사에서 낙오된 추억이다. 성탄절 전야제를 마치면 각 마을을 돌며 사립문에 밝혀둔 등불 앞에서 아기 예수 탄생을 찬송하며 기쁨을 함께 나눈다. 당시 성탄절 전야제는 누구에게나 가슴 설레던 축제 한마당이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최초로 들어 온 것은 1884년으로 알려 졌다. 초창기 숱한 박해와 고난을 무릅쓰고 기독정신의 씨앗을 국민 마음 마음에 뿌려 나왔다. 해방과 더불어 부흥기를 맞이해 활발한 전도로, 전국 곳곳에 찬송과 기도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구미歐美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교회와 학교, 병원 및 복지시설이 세워지고, 고장마다 큰 변화의 물결이 일었다. 기독정신은 해방의 기쁨을 가져온 정신적 지주였고, 육이오 전쟁을 승리로 이끈 호국의 보루였다.

 

 나는 어려서 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되신 할머니의 외로움을 달래 주시려는 아버지의 효심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부모 곁을 떠나 온 나를 어여삐 여기셨다. 차츰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잊고 투정 없이 지냈다. 할머니와 나는 늘 붙어 지냈다. 어쩌다 할머니가 출타하시면 외로워 집 근처를 맴돌며 할머니를 기다렸다. 어찌 보면 할머니와 나는 빛과 그림자 같은 사이였다. 어느 날 이웃의 순이 엄마와 할머니가 교회에 나가시게 되였다. 교회는 집에서 걸어서 3-40분 거리에 있었다. 교회에 다니시면서 일상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한숨 대신 찬송을 부르시고 주기도문을 외우셨다.

 

 할머니를 따라 주일학교에 다니게 되였다. 매일 지루하게 지내던 나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자치기, 팽이 놀이에 흠뻑 빠져들었다. 널따란 예배당에서 예쁜 누나들이 노래와 율동을 가르치고, 종종 밖에 나가 놀이도 하고 성경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다윗과 골리앗’은 지금 들어도 신나는 이야기다. 과자 따먹기나 보물찾기를 하던 봄가을 소풍은 손꼽아 기다리던 그리움이었다. 친구들과 서로 경쟁하듯 큰 소리로 찬송도 부르면서 아옹다옹 지냈다. 추수를 마치면서 교회는 성탄절 준비에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는 성탄절 이브의 밤을 빛내기 위해 노래와 율동. 연극 등을 열심히 연습했다. 성탄절 이브의 밤 교회당에 모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배운 노래와 율동, 연극을 선보이며 열렬한 박수를 받고 흐뭇했던 그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성탄절 행사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재롱잔치가 끝나면 새벽 송을 위해 서둘렀다. 어둠을 헤치고 각자 맡은 지역으로 떠났다. 교회 문밖에는 오고 가는 교인들이 얽혀 매우 혼란스러웠다. 잠깐 자리를 빈 사이 짝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목적지로 떠나고 없었다. 혼자 어둠속에 서성이고 있었다. 순간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평소 다니던 길을 따라 집으로 달렸다. 당시 농촌 길은 순탄치 않고 험했다. 두려움이 들면 찬송을 부르고 넘어지고 엎어지며 집에 도착했다. 할머니를 보니 눈물이 쏟아 졌다. 할머니 손을 잡고 잠이 들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새벽 송 ‘기쁘다 구주 오셨내’ 를 부르지 못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키워 주신 할머니와 새벽 송을 인도하셨던 장로님에게 죄송한 마음이다. 침착하지 못한 행동으로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얼굴이 붉어 온다. 두 분 모두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평안히 계실 것이다.  매년 12월이면 상처처럼 도지는 그리운 추억이다.

                                                                   (2020.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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