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오직 당신만을

2020.09.15 00:06

최미자 조회 수:2

[Essay Garden] 세상에 오직 당신만을
  • 최미자 미주문인협회 회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 탓일까. 늘 바쁘다던 남편의 한 친구 분이 우리 그이에게 자주 소식을 전해온다. 사실 나는 금년 초인가, 남편에게 한 달에 한번쯤은 미국에 한 분 있는 동기생이니 안부 좀 드리라고 조언했었다. 왜냐하면 3년 전에 병환의 아내를 보냈으니 어떻게 사시는지 위로하는 의미였다. 상상하건데 그분의 성격도 좀 무심할 정도로 인간관계엔 소극적인 내 남편과 비슷한 분 같아서였다.

그런데 요즘 동부와 서부에 사는 두 남자가 종종 전화로 긴 수다를 떨고 있다. 얼마 전에도 두 시간 남짓 전화하는 걸 곁에서 보면서 나는 피식피식 웃으며 흐뭇했다. 전화가 끝나면 남편으로부터 그의 친구이야기를 조금씩 전해 듣는다.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그리고 가족이야기 등 화제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어 나는 뜻밖이었다. 그래서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우리들 재미가 아니던가.

통화가 끝날 때마다 난 남편에게 격려한다. “얼마나 좋아요. 서로 특기가 달라서 학창시절은 친하지 못했어도 미국에 사는 것만으로도 귀한 인연인데, 앞으로 서로의 목소리를 듣는 날도 얼마나 있겠어요?” 맞는 말이라며 남편도 고개를 끄덕인다. 몇 해 전, 필라델피아에서 잘살던 남편의 동기생 친구가 그렇게 놀러오라며 초청을 여러 번 했는데도 우린 방문을 못했다. 그토록 마음이 너그러운 친구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버렸기에 지금도 아쉽기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을 서로의 출근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는데, 그 때 소개를 해주신 남편과 결혼했다. 공군, 해군, 육군 사관학교는 1960년대 입학정원이 60여명이어서 정말 전국의 수재들이 다 모였었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대학교에 갈 학비가 없어 부모의 걱정을 덜어드리려는 효자들이 지원한 곳이 사관학교였다. 경쟁이 심해서 사관학교에 불합격되면 오히려 서울대학교로 지원했던 시절이었다. 요즈음처럼 수백 명이 입학하는 사관학교가 아니었다. 또한 그들은 국가관이 애매한 군인들이 아니라, 역사를 잘 배웠기에 오로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애국심으로 가득 찬 씩씩한 사나이들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계급 사회인지라 동기생끼리 엄청난 경쟁을 하기에 혹은 상처를 받기도 했다. 좋은 선배와 친구를 만나면 이끌고 격려해주며 순조롭게 출세의 운을 타기도 하지만, 악연을 만나면 평생 가슴앓이를 하며 행운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제대를 해야만 했다. 남편의 동기생은 바로 그런 분의 하나였다. 또한 팔자소관인지 관직 운도 아무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즈음 세상은 타락을 해서인지 별난 권모술수와 재주를 부리면서 높은 관직의 타이틀을 잡는 뻔뻔한 인간들도 많아 미디어를 통해 보거나 읽으면서 나와 남편은 긴 한숨을 쉬기도 한다.

다행히 친구인 여기 두 남자는 직장 운은 별로였지만 아내복은 있다고 자부하며 사는 것 같다. 때론 내가 먼저 그 분의 전화를 받다 그의 가정 사를 직접 듣기도 한다. 그는 학창시절에도 예천비행단에서 F-5 비행기 창설에 가슴에 다는 휘장을 창안하며 참여했으며 그 후 팬텀기 조종사였다. 또한 대한항공에서 십년 가까이 근무하고 은퇴했다.

하지만 한국에 살 때 주변 사람들에 너무 속상한 일이 많아 가족을 데리고 1982년 미국으로 유학 왔다는 사연이었다. 연세대학 간호학과를 나온 아내는 미국에서 어느 날 신장 이식수술을 받아야했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았는데, 두 자녀를 잘 키우고 결혼을 시킨 후 아내가 세상을 떠나버린 것이다. 장녀는 자랐던 시카고의 중고등학교에서 최우등생이었고 남동생과 함께 MIT를 졸업했다.

그리고 줄곧 텍사스 큰 정유회사의 고위관직으로 일하고 있다 한다. 갑자기 암으로 어머니가 병석에 누우니 부모 가까이 남동생이 직장을 옮겨 살도록 해놓고, 딸은 아버지의 경제적 부양을 맡는다고 했다. 아내가 떠난 후론 남편은 교회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요즈음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정지 상태이다. 주위에서는 그에게 재혼을 권하지만 그는 “무슨 이 나이에”라면서 완강히 거절한다고 했다.

내 여고 친구들은 두 명이나 재혼하여 콧노래를 부르고 있기에, 나는 세상에 이런 남편도 있느냐며 그의 순애보에 감동할 수밖에. 그리고 아주 가끔 나는 한국의 연속극을 보는데 언제부터인가 남의 아내나 남편을 탐하는 부도덕적인 장면을 보면서 매우 놀랐기 때문이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그의 침상 머리 위에 둔 아내의 영정 앞에 영어 글을 써놓고 아침저녁으로 살아있을 때처럼 아내와 대화한다고 했다. “Honey, I love you forever. I have only you and I always thank you for giving me two big treasures, those are Ileen and Shon.” 실제로 두 자녀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부모를 섬기는 드문 효녀와 효자인 것 같다.

필자소개
경북 사범대 화학과 졸업
월간 ‘피플 오브 샌디에이고’ 주필 역임, 칼럼니스트로 활동
방일영문화재단 지원금 대상자(2013년) 선정돼
세 번째 수필집 ‘날아라 부겐빌리아 꽃잎아’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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