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의 이사

2020.09.15 18:47

이성수 조회 수:1

 아홉 번의 이사

 

                                      안골은빛수필 문학회  이 성 수

 

 

 세상을 살아가려면 보금자리가 필요하다. 저 창공을 나는 새도 제 보금자리를 지을 때 입부리에 흙과 지푸라기를 물고 열심히 나무위로 나른다. 안식처를 만들어 알을 낳아 새끼를 까고 키우기 위해서다. 나는 고희가 넘은 지금껏 9번의 이사를 했다. 이번에 이사를 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주를 해결하지 못한 어린시절이 생각난다. 대부분 어린시절은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유년시절, ,,고를 마치고 객지로 나가 대학교에 다녔다. 그래도 나는 다행이 그렇게 곤란을 겪으며 살지는 않았다부지런하신 부모님의 노력으로 한옥으로 지은 집에서 25세 나이에 신혼살림을 차릴 수 있었다. 이렇게 단란한 가족의 살림살이도 직장이동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누구나 자기 처지가 바뀔 때마다 이사를 하게 되어 새로운 둥지를 갖게 된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실천하여 맹자가 학문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이사를 하여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나는 다행히 교육자여서 학교관사 주변을 맴돌며 자녀들의 유년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다. 이른 새벽에 운동을 하며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이것을 기점으로 취미로 한 운동이 특기가 된 큰아들은 한때 시내 야구를 하는 명문고등학교에서 욕심을 내는 테스트까지 하며 장래약속을 받았다. 그러나 늦게 발탁이 되어 아쉬움으로 끝났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사를 하면 여러가지 변화가 따랐다. 어쩔수 없이 직장을 옮길 때 마다 이사하는 것, 자녀들의 학업문제, 건강문제, 경제문제, 등이 수반되어 이사를 하게 된다. 어려움이 닥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래도 적응하면서 살았다. 지금은 세계가 한 가족이 되다보니 가족이 외국에 나가 사는 경우도 많다. 주변 앎을 통해 또는 학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다보니 자기개발에 전념하여 가족을 멀리하여 이웃보다 못한 처지로 변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잊지 못할 것이 있다. 미물인 여우도 죽음을 맞을 때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둔다’ 고 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여 고향을 잊지 않겠다고 했는데 하물며 사람이 사람의 도리를 잊어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전통적으로 어른을 존경하고 전통예절을 중시하는 나라다. 지금도 추석이나 설날에는 꼭 부모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린다. 여기에 부모님 기일이나, 생신때도 찾아 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은 필수 조건이다. 안 찾아뵈면 죄를 지은 사람처럼 가족들에게 볼 낯이 없다.

 지난해 추석명절 때다. 아들이 순창 고향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온 경우가 있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되어 순창강천사를 둘러보고 자기가 다녔던 쌍치초등학교를 가자고하여 자기 아들을 데리고 살았던 관사와 그 학교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지금도 도심거리를 걷다보면 동창회모임 간판이 보일 때면 유심히 쳐다본다. 저 간판의 졸업생과 어떤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괜히 관심이 간다. 나도 초등학교 총동창회 모임을 몇 년 동안 빠지지 않고 참석했지만 지금은 쉽게 모여지지 않는다. 세월의 고달픔과 그리운 정을 느끼지 못한 아쉼움이 크다. 시간이 흘러 바뀐 것이 많아졌다. 이사할 때 마다 별 특징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많이 버렸다. 그래도 나는 추억을 챙기려고 하는데 아내는 추억을 버리는 것에 선수가 되어 있었다.

 

 이사를 하다보니 웃지못할 일도 발생했다. 전주 <송천동>에서 <인후동>으로 갈 때 내가 직장퇴임, 사회활동을 하면서 받아온 시계 등 상패들을 한꺼번에 내다 버려 나에게 핀잔을 들었다. 고장난 시계로 오인하여 몽땅 버린 것이다. 그걸 주운 쓰레기 치운 사람은 횡재를 했을 것이다. 이번 이사에서는 손수 버리는 것에 내가 관여했다. 집안 곳곳에 폐기처분이라 써 붙였지만 나는 떼어냈다. 그러면 또 붙였다. 시작품 액자, 장롱, , TV 등 많은 것을 치웠다. 그래도 이사하는 날 아이들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 초등학교 때 쓴 서예작품과 가족사진, 앨범, 내가 남긴 책들을 몇 번에 걸쳐 자가용으로 옮겨 따로 챙겨왔다. 내 땀이 들어있는 작품으로 나와 함께 없어질 작품들이다빛바랜 사진을 쳐다보며 추억을 더듬어 본다.

 이곳저곳 쓰레기장을 보면 쓸만한데 버린 물건들이 수두룩하다. 내 눈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아내는 종종 화분을 들고 와 꽃을 사다 심는다. 참 좋은 세상이라 하지만 검소하게 살자는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되었는가 쓴 웃음이 난다.

 세 번째 이사 쌍치에서 아들을 잃을 뻔한 일도 있었다. 사정이 생겨 곧 바로 관사로 옮기게 되었다. 그동안 18년 넘게 시골에서 살다 전주로 오게 되었다. 지대는 보지 않고 건물만 좋아 보여 집을 구입했다. 가뭄시 지역이 높아 상수도가 나오지 않아 새벽에 물차가 와 물을 받아 먹고 사는 애로를 나는 잘 몰랐다. 이듬해 내가 전주로 전입되어 또다시 <금암동>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행복을 다지기위한 생활이라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는다. 터전을 닦는데 밑거름이 되었고 살아가는 지혜를 더 넓힐 수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들은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안녕을 지키는 공무원으로 살아가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것은 삶의 애환속에 아픈 상처이지만 행복으로 남길 수 있어야한다. ‘주변 모든 것이 깨끗하고 바르게 되어 있어야 내 마음도 치유될 수 있다’ 라는 인생 귀착점에 온 것 같다. 인생 모든 것, 내 마음의 품격으로 갖출 수 있는 환경에서 구하기 위해 <서신동 아이파크 이 편한 세상>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16년 전 공직을 수행하다 본의 아니게 업무과다로 건강을 헤쳤다. 여기에 아내의 건강도 챙기는 마지막 선물이라 여기고 새집에서 여유를 갖고 건강을 다지며 살아가고 있다.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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