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마음

2020.09.19 17:27

정성려 조회 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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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마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정성려



새벽 5시다. 밖이 어둡다는 핑계로 뒤척이고 있다. 자정이 넘어서야 잠을 청한 탓이기도 하다. 짧은 밤에도 서울에 있는 큰딸이 꿈에 보였다. 떨어져 있기에 자주 전화통화는 하지만 늘 마음이 간다. 꼬끼오! 옆집 닭이 울기 시작하더니 마을에 있는 닭들이 너도 나도 덩달아 화음을 이루며 파도타기를 한다. 새벽 정적이 깨어지는 순간이다. 앞집 바둑이는 논밭으로 나가는 농부의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 정신없이 짖어댄다. 언제나 희망이 넘치는 우리 마을의 새벽 풍경이다.

텃밭을 오가며 노래하는 참새와 이름 모를 새들이 창문 가까이에 와서 안방을 기웃거린다. 제비도 처마 밑 둥지에 있는 새끼들에게 먹이를 나르며 창문 너머로 게으른 주인을 흉보는 것 같다. 텃밭으로 나를 불러내려는 새들의 몸짓이다. 눈을 비비며 텃밭으로 향한다. 텃밭에는 배추와 무, 그리고 가을채소들이 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서울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큰딸에게 언제나 그러듯, 오늘도 마음을 옮긴다. 잘하고 있을 거라고 믿지만, 떨어져 있기에 보고 싶고 신경이 쓰인다. ‘팔십 먹은 어머니가 육십 먹은 아들 걱정한다.’고 하지 않던가? 새벽잠이 많은 큰딸이다. 그런 딸이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 혼자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러기에 새벽이면 큰딸 생각이 우선이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아침잠을 깨우며 옥신각신했었다. 더 자고 싶다며 이불을 돌돌 말아 웅크리는 딸에게 큰소리로 깨우며 조용한 새벽을 요란하게 했었다. 앞가림은 알아서 다 하는 것을 괜히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것 같다.

큰딸에게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었다. 목표로 정해 놓고 그토록 애타며 욕심을 내던 높은 자리였다. 그 길로 인해 많은 시간과 세월을 책상 앞에서 책과 씨름하며 보냈다. 쓰디쓴 고배를 참고 견디며 오직 그 길만을 고집했었다. 조금 멀지만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여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오르는 길을 권유했다. 큰딸의 기를 꺾어 놓았던 그 많은 세월. 가슴 아팠던 그 시절도 지금의 기쁨이 있기에 모두 추억으로 기억된다. 출근하며 큰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날개를 단 기분일 게다. 목표로 삼았던 높은 곳을 내려놓고 첫 계단부터 슬기롭게 가자는 말에 수긍하고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해냈다. 큰딸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냈다. 목표했던 곳은 아니지만 새로운 일에 접하면서도 즐겁고 재미있다고 했다. 엄마이기에 믿는다. 내 딸은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누구나 하루의 시작인 새벽은 새로운 기대와 각오로 새롭게 다짐하며 시작한다. 큰딸의 앞길에도 평온한 새벽처럼 희망이 있는 그런 날만 이어지기를 이 새벽에 기도한다.
(2020.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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