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버지의 입학 선물

2020.09.22 00:54

구연식 조회 수:4

큰아버지의 입학 선물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구연식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의무교육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려워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중등교육은 밥술이나 먹거나 어지간한 교육열이 있는 가정이 아니면 엄두를 못 냈다. 더구나 대학은 한마을에서 최고 부자가 아니면 꿈도 못 꾸던 시기였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장남인 나에게는 최선을 다하셨기에 각종 학비는 꼬박꼬박 챙겨 주셨다. 전주 시내 H고등학교에서 입학통지서가 왔다. 대개 입학 시기는 춘궁기와 겹쳐서 시골에서 현금 마련은 너무 어려웠다. 아버지의 융통으로 겨우 입학금을 마련하여 등록을 마쳤다.

 

 나의 입학소식은 아버지가 입학금을 융통하러 다니시면서 소문이 온 마을에 펴졌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큰아버지가 찾아오셔서 그 당시 백미 901가마니 값을 선뜻 내놓으시며, 연식이 교복이나 맞춰 입히라고 주고 가셨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모든 물가가 쌀값으로 기준이 되어서 일반 공무원 초임 봉급은 쌀 2~3가마였다. 지금 생각해도 거금이고 고마운 큰아버지셨다. 나는 그 돈으로 전주시네 최고급 교복점에서 교복을 맞춰 입고 모자와 가방도 샀다. 입학식 후에 새 교복을 입고 큰아버지 댁에 가서 고맙다고 인사를 드렸다. 큰아버지는 교복 입은 나를 한 바퀴 도시면서 공부 열심히 해라, 하시고 밭으로 가셨다. 고샅길을 걸어서 집으로 오는데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선망의 눈빛을 주시면서 덕담도 건네 주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장남 장녀가 아니시지만, 나는 친가와 외가에서 제일 큰손자였다. 그래서 큰아버지는 나에게 기대도 많이 하셨고 후원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시절 추석 때 큰아버지는 교복 입은 나를 데리고 익산 함열읍의 종중 중시조(파시조) 묘역과 제각을 둘러보게 하시고, 그곳 집안 어른들을 뵙고 일일이 인사를 올리며 집안의 장조카란 말을 빼놓지 않고 소개하셨다. 가문의 임무와 책임을 심어 주시면서 집안 어른들의 지도 편달도 부탁하셨다. 제각 대청마루에 계신 수염이 허옇고 망건을 쓰신 제일 웃어른이 나의 손을 잡으시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부상마을에서 구씨가문을 중흥시키는 인물이 되라고 당부하셨던 말씀이 잊히질 않는다. 그러나 나는 큰아버지에게 그렇게 속 깊은 효도를 한 번도 못 했다. 참으로 불효스럽고 매정한 조카였다.

 

 막내 작은어머니도 교복 입은 나를 데리고 익산시 팔봉면 석암리 친정 동네를 일부러 방문하여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인사 소개를 하셨다. 그 동네에는 공교롭게 큰고모 댁이 있어 고모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고모님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친정 조카가 대견한지 어깨를 쓰다듬으시며 공부 열심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는 시골에서 고등학교 교복 입은 학생이 선망의 대상이어서 시댁 조카를 데리고 자랑삼아 다니셨는가 보다.

 

 그 당시 큰아버지는 내가 사는 지역의 종친회장으로 빈약한 종재 그리고 모자라는 일손으로 선영을 모시는 일에 최선을 다하셨다. 아버지 형제 중에 6.25 한국전쟁 때 한 분은 전사하셨고, 한 분은 전쟁 참전 후유증으로 지병을 얻어 돌아가셔서 할머니는 두 아들을 6.25 한국전쟁에서 잃으셨다. 그 일로 큰아버지는 익산시 유족회장을 역임하셔서 원호사업에 관련된 일을 맡으셨다. 익산시 거주 유족인들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큰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생전에 성격이 정갈하셔서 의관을 깔끔하게 챙기고 다니셨다. 턱수염도 길게 놔둔 적 없이 언제나 깔끔하셨다. 농사를 지으시면서도 멍석에 닭똥이나 농기구에 흙 하나 묻히지 않고 정갈하게 정리정돈을 잘하셔서 마치 군대에서 병기점호를 대비하듯 모든 살림이 완벽하셨다.

 

 큰아버지는 내가 교직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의 대소사를 나와 상의하셨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를 이장하시고 여러 가지 석물을 세우면서 장조카이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는 큰손자인 나에게 비석에 새길 할아버지를 소개하는 글을 써서 올리라고  하셨다. 그래서 몇 날을 심사숙고 정성을 다하여 할아버지 비석의 글을 근찬(謹撰)해 올렸다. 큰아버지는 흡족해하시면서 나를 볼 때마다 칭찬하셨다. 지금도 추석이나 설 성묘할 때는 할아버지 비문에 새겨진 나의 글을 읽어보면 그때가 새록새록 떠오르고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셨던 큰아버지가 아른거린다. 아버지 7형제 중 큰아버지는 늘 생활이 정갈하셔서인지 제일 오래 사셨다. 그러나 인명재천이라고 큰아버지도 연로하시더니 지병이 악화하여 말년에는 안방에서 간이침대 생활로 하루하루를 버티셨다. 어느 날 찾아뵈니 몰라보게 수척하시어 연식아, 내가 죽으면 너의 아버지가 누워계시는 옆으로 갈란다.” 하시더니 몇 개월 후에 향년 87세로 돌아가셨다. 살아계셨을 때 더 찾아뵙고 손도 잡아드릴 걸 하고 후회가 된다. 따뜻한 교복으로 나를 감싸주셨던 큰아버지셨는데 말이다.

 

 큰아버지 산소는 아버지 산소 옆 조금 위에 계신다. 오늘은 집안 어른들 산소를 벌초하는 날이어서 큰아버지 산소를 둘러보았다. 때 이른 구절초가 숲속의 귀한 산삼처럼 딱 한 송이가 예쁘게 피어있어 살아생전에 그렇게도 정갈하셨던 큰아버지 얼굴이 겹쳐졌다. 나의 고등학교 앨범에는 큰아버지가 마련해주신 교복 입은 사진이 있어 더더욱 생각이 떠오른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집안의 어른이 되었다. 집안 조카들에게 나는 그 옛날 큰아버지처럼 후덕하고 조카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큰아버지! 그 교복 3년 동안 잘 입고 졸업하여 대학도 마치고 공직에서 40여 년간 봉사하다가 10여 년 전에 퇴직하여 이제야 큰아버지의 고마움을 추슬러 본다. 큰아버지가 마련해주신 교복을 입고 공부 열심히 하여 과연 훌륭한 사람이 되었는가? 집안 어른들이 나에게 성원해주신 만큼 열심히 살고 성공했는가? 집안 조카들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는 인물인가큰아버지 산소 앞에서 뉘우쳐 본다.                                                  

                                                           (2020.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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