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벽골제

2020.09.23 13:20

김길남 조회 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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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벽골제

전주안골 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은 김제뿐이다. 들이 넓어 산은 보이지 않고 논만 하늘 끝까지 이어진다. 이런 곳이니 농사를 지으려고 일찍부터 저수지를 만들었다. 그게 벽골제다. 백제 비류왕 27년(330년)에 축조했다고 한다. 가두어 놓은 물을 논에 대려면 수로가 필요하다. 장생거, 경장거, 중심거가 물을 대는 수문이고 남은 물을 흘려보내는 수여거, 유통거가 있었다. 지금은 장생거와 경장거만 남았다.

벽골제를 수리 보수할 때 전해지는 설화가 있다. 신라 원성왕 때 벽골제가 홍수로 터져버리자 다시 막는 보수작업을 했다. 신라에서 원덕랑이란 토목기술자가 와 있었다. 원체 잘 생긴 사람이라 김제태수의 딸 ‘단야’ 낭자가 그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런데 방죽을 막으면 비가 와서 터지고 막으면 또 터졌다. 옛 이야기에 청룡과 백룡이 살았는데 청룡은 사람을 해치고 둑을 무너뜨렸다. 백룡은 좋은 용이라 청룡에게 그러지 말라고 하니 싸움이 벌어졌다. 청룡이 이겨서 계속 심술을 부리니 달래려고 처녀를 바치기로 했다. 그 때 원덕랑이 사랑하는 ‘월내’라는 여인이 신라에서 찾아와 있었다. 김제태수는 월내를 바치려고 음모를 꾸몄다. 그것을 알게 된 단야가 아버지의 음모도 막고 애인 원덕랑이 월내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해서 대신 청룡에게 몸을 던졌다. 단야의 희생과 애민정신을 기리려고 벽골제에 단야각을 세우고 단야의 초상화를 걸었다.

또 재미있는 뒷이야기가 전해진다. 벽골제 아래에는 신털미산이 있다. 이 산은 본래는 없던 산이었다. 벽골제 공사 때 사람들이 일을 끝내고 모여 신고 온 짚신을 깨끗이 털었다. 하도 많은 사람이 날마다 신고 온 짚신을 터니 그 흙이 오랫동안 쌓이고 쌓여 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곳은 일꾼들을 점검하고 돌려보내는 장소였다.

또 하나는 되배미다. 신털미산 아래에 있는 논이다. 공사에는 팔도에서 모여든 1만여 명의 일꾼들이 참여했다. 사람들이 많으니까 일일이 수를 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논을 한 배미 정해놓고 사람들을 그 논으로 들어가게 해서 가득 차면 나가고 가득 차면 나가게 해서 사람 수를 헤아렸다. 곡식을 되듯 사람을 되어서 수를 헤아린 것이다. 한 번에 500명이 들어갔다고 한다. 지금도 되배미는 남아 있다.

제주방죽도 있다. 팔도에서 사람들이 모여 공사를 했는데 제주도에서 온 사람들이 만들었다고도 하고, 풍랑으로 늦게야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공사가 끝난 뒤였다. 공사 감독이 늦게 온 값으로 저수지를 하나 만들고 가라해서 벽골제 남쪽 끝 명금산 아래에 저수지를 축조했다 한다.


수월리라는 마을도 있다. 물이 넘었다는 뜻이다. 벽골제를 막으면 물이 고이고 가득 차면 위에서 내려오는 물이 더 고일 수 없으므로 한 곳의 둑을 낮게 하여 그 물이 흘러가도록 해야 둑이 안전하다. 벽골제 북쪽 끝에 물이 넘도록 무넘이를 만들었다. 그 물이 넘는 곳의 마을 이름이 수월리가 되었다.

일꾼들이 일이 고되니까 하루씩 쉬게 해주었다. 쉬는 날은 김제태수의 딸 단야가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고 가야금을 타서 위로 했다. 그 뒤 가야금이 울린 산이라 하여 명금산(鳴琴山)이라 했다 한다.

옛날에는 농사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농사가 잘 되어야 백성들의 삶이 풍족했다. 흉년인가 풍년인가가 살아가는 즐거움을 가름했다. 그래서 농사를 잘 지으려고 수리시설이 나라 다스리는 근본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 저수지 가운데 오래 된 것으로 이 벽골제와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 상주의 공검지, 의성의 대제지가 유명하다.

이 벽골제에서는 김제시에서 매년 지평선축제를 열어 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지평선을 보며 누렇게 익은 황금물결을 감상하는 맛은 여기 아니면 볼 수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우리 조상들은 참 지혜로운 사람들이었다.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가두고 농사를 편히 지었으니 그 꾀가 가상하다. 잘 살려고 온갖 노력을 다 한 조상들이 자랑스럽다.

우리나라 농경문화를 알 수 있는 이 벽골제야 말로 우리 고장의 자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영원히 보존하여 우리 옛 농경문화 유적을 오래오래 간직하기를 바란다.

(2020.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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