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여운

2020.09.24 23:34

김성은 조회 수:2

당신들의 여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월요일 아침, 상쾌한 가을 바람을 양껏 들이마신다.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게 된 이후로는 주말 외출이 더 뜸해졌다. 바쁜 시간표 속으로 출근하는 월요일 아침은 그래서 내게 ‘환기’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내가 지금의 직장에 몸담은 것은 20023월이었다. 연고 없는 지방에서 안내견과 함께 사회 조직에 첫 발을 들였다. 토요일도 출근했고, 휴일 일직도 있었다. 일요일이면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빈 학교를 지켰다. 보완 장치를 풀고 주요 건물들의 안전 상태를 확인한 다음 대충 자리를 정리하면 법인 시설에 기거하는 학생들이 교무실로 놀러왔다. 수업 중에는 나눌 수 없는 개인 상담도, 정다운 다과도 그 시간에는 가능했다.

 동생 같던 여고생들이 놀러오면 눈깜짝할 사이 퇴근 시간이 됐다. 장애인 활동보조지원제도가 없던 그 때 내 주식은 배달 음식과 각종 인스턴트 식품이었다. 요리에 재능도 흥미도 없었지만 별로 불편하지는 않았다. 혼자 몸으로 먹고 싶을 때 요기했고, 먹기 싫으면 건너 뛰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어설프게 적응해 가는 과정에 배운 술은 내 위를 더 혹사시켰다. 위경련이다, 위염이다 번번이 병원 신세를 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내게 선배 교사들은 무턱대고 부담스럽거나 두려운 존재였다. 사근사근한 성격도 못되는 데다가 전맹으로 사회 경험 폭이 넓지 않았던 나로서는 동료들과의 유대 관계를 구축하는 게 풀기 어려운 숙제 같았다. 더구나 내 또래 교사가 없는 환경에서 내성적인 내가 살아 남는 방법이 무엇일지 사실 완벽하게 무지했다.

 꾸역꾸역 출근했고,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다. 서울 본가에서 윤택하고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기간에만 내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업무에도, 사회 적응에도 나는 미숙했다. 그래서 교무부장님이 더 어려웠다. 교무부장님은 워킹맘이었다. 맹학교 교사답게 목소리가 높았고 컸다.

 함께 15년 정도 근무했다. 초등학생 아들이 소풍 가는 날이면 교무실 탁자 위에 먹음직스러운 김밥 접시가 펼쳐졌다. 맥주와 커피를 좋아했고, 따끔한 충고를 서슴치 않았다.

 열무 김치를 처음 담가봤다며 불쑥 김치통을 내밀기도 했고, 한사코 운전을 마다하다가 친구가 떠넘긴 티코에 나를 태워주기도 했다. 조수석에 아들을, 뒷좌석에 나를 태우고 달달 떨던 그녀가 생각난다.

 언제까지고 한 울타리 안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던 그녀가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났다. 간암 때문이었다. 진단 받고, 입원하고, 수술하고 상황은 급박했다.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그녀를 보냈다. 장지로 떠나는 마지막 길에 장성한 아들이 엄마의 영정 사진을 들고 학교에 들렀다. 청명한 10월 어느 가을날이었다.

 

  현재 나는 그녀처럼 워킹맘이고 점심 시간이면 어김없이 초등학생 딸아이 하교를 확인한다. 부장이 되었고, 교문 안에 후배 교사들이 더 많아졌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내 행동 반경은 넓지 않다. 다만 세월만큼 발효된 관계가, 환경이 내 인생 깊숙한 곳까지 녹아들어 아예 한 덩어리로 꿈틀거린다.

 겨울방학, 집에도 못 가고 출근해서 혼자 일직을 할 때면 교무부장님은 일부러 전화를 주셨다. 특별한 용무도 없이 매번 싱겁게,  “선생님, 점심은 먹었어?” 하셨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첫 직장에 있다. 이제는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고, 주말 일직 근무도 없다. 장애인 활동보조 제도 덕에 출퇴근이 편해졌고, 중도 실명하여 뒤늦게 입학한 성인 학생들과 편하게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는 40대가 되었다.

 

 830분부터 5시 퇴근까지 빈틈 없는 하루가 흘러간다. 무한 반복될 것 같은 일상이지만 사실은 그 누구도 내일을 보증할 수 없다.

결혼식을 앞두고 시댁의 반대가 극심했을 때, 고심 끝에 아기를 임신했을 때, 안내견 강산이가 하늘나라로 떠났을 때 그녀는 나를 안아 주었었다. 졸업한 제자들을 집에 초대해서 손수 만든 음식을 대접하는 다감한 선생님이었다. 늦은 밤 동료 몇과 가진 편한 술자리 끝에 그녀를 초대해 놓고 갑자기 터져 버린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서 당황했던 기억도 있다.

 나는 그녀처럼 후배들에게 거침없이 쓴소리를 하지도, 다감하게 식사 안부를 챙기지도 못하는 무채색 지인이다. 그래서 더 그녀의 또렷한 감정선이 가슴에 남아 있는지 모른다.

 누군가를 알게 되고, 가까워지고, 오해하고 이해하고, 좋아하기까지 나는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렇게 마음에 담은 인연은 쉬 지워지지 않는다. 설령 상대가 내 곁에 없다 해도, 어쩌면 떠난 후에야 아프게 남는 그리움이라서 더 먹먹하리라.

 18년 된 첫 직장은 내게 소중한 인연을, 월요일 아침 출발의 기운을, 엄중한 책무를, 꿀같은 월급을,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했다.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값지고 지대한 성곽이 된 일터에서 행복한 가치와 의미가 부디 맑은물처럼 흘러 흘러 갔으면 좋겠다.

 

 내 삶도 누군가의 가슴에 진한 여운으로 남을 수 있을까? 장영희 교수가 남긴 저서를 읽으며 곁에서 조근조근 대화하듯 그녀의 삶과 생각을 배웠다. 위로를 받고 다시 시작해볼 용기도 얻었다. 교수님 생전에 직접 만나뵐 기회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녀가 남긴 생생하고 소소한 에세이는 언제까지고 살아서 많은 이들에게 교훈이 되어줄 거다. 혼탁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은은한 길잡이가 되어줄 거다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2020.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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