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추석

2020.10.05 14:31

이환권 조회 수:3

 코로나 추석

                                  신아문예대학 수요수필반 이환권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추석이다. 휘영청 밝은 달은 전봇대줄에 걸려 있는데 왠지 서글퍼 보이기까지 했다. 코로나19 전염병으로, 방송매체에서 미리부터 올 추석 연휴에는 고향에 가지 말라는 소식을 둥근 저 달도 들었나보다.

 매년 찾아오는 한가위에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늠름한 자태를 뽐내던 당신, 지구의 어느 구석이라도 밤이면 자신이 왕이라고 요염한 자태를 선보이는 당신. 특별히 해외에서 살고 있는 조카들에 대한 그리움이 저 달을 보면 더 향수에 젖는다.

미국 보스턴에 사는 작은조카는 해변에 떠 있는 보름달을 선물로 보내주고, 두바이에 사는 큰조카도 송편과 떡을 먹으며 보름달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오고 싶어도 맘대로 못 오는 세상, 가고 싶어도 비행기 길이 끊겨 가지 못하는 세상, 그러나 이 얼마나 편리하고 가까운 세상인가! 그렇다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카톡 하나로 전 세계 어디든 연락할 수 있으니 말이다.

 

 목요일부터 닷새나 이어진 추석연휴는 정부의 철저한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전보다 훨씬 북적거리지 않고 수월하게 이어져 갔다되도록 모일 장소들을 폐쇄하여 자연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루어졌다. 정부나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설들은 모두 휴무다. 그러나 휴무라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관광구역에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코가 석자다.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한숨만 내쉬고 있다. 어서 빨리 이 지긋지긋한 시간들이 자나가고 광명의 시간이 와야 할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이 고달픈 시간들이 끝날 기세는 보이지 않는다. 백신 치료제가 곧 나올 것이란 기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맞춰져 있어 연일 호들갑이지만 당장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자신이 확진자가 되어 버렸다.

 

 추석연휴 첫날, 추석감사예배를 가족과 함께 드리고, 산소에 가는 길에 군에서 잘 가꾼 코스모스 뚝방길을 선택했다. 이곳은 엊그제 미리 답사를 했던 곳으로 금번 추석에 힐링코스로 점찍어 둔 곳이다. 봉동 마그네다리 남쪽 천변이 바로 그 길이다. 차 한 대가 다닐 정도의 시멘트 도로 양 옆에 심어 놓은 약 4km의 뚝방길, 그리 알려져 있지 않은 길에 만경강과 더불어 힐링을 할 수 있는 코스다.

 길 중간 중간에 차들이 교차할 수 있도록 도로도 넓혀져 있고 약 2km 되는 지점에 대형 주차장과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코스모스 길도 여러 갈래 만들어 놓았다.

 

 아니나 다를까, 코스에 들어서자 일제히 환호성을 지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꽃길을 뚫고 달리는 기분을 어찌 글로 다 표현하랴! 한참을 가다 중간지점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 곳에서 몇 년째 코스모스축제가 열렸는데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축제를 열지 못했다고 한다.

 

 산들거리는 코스모스와 함께 손자들과 사진도 찍고 메뚜기도 잡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바람결을 느껴 보기도 했다. 둘째손자는 계속해서 메뚜기만 잡아 오라고 성화다. 꼬마들이야 꽃이 무슨 대수겠는가? 아이들은  곤충에만 관심이 있다. 나는 손자바보가 되어 연거푸 메뚜기를 잡아 채집망에 넣어주었다. 아내는 갖은 포즈를 취하며 자연을 만끽한다. 멀리 보이는 산자락에 우뚝 솟은 아파트들, 우리네 부모들이 살던 저 고향땅, 이제는 아스라이 잊혀져간 세월의 역사만이 남아있고 하늘에서 후손들이 잘 살아가기만을 고대하리라.

 즐거운 시간들도 자연의 포만감으로 가득찼나 보다. 빨강. 분홍, 하양 코스모스길 따라 가볍게 휘파람을 불며 자연을 만끽하니 다음 여정이 부드럽다. 산소는 깨끗이 이발이 된 채 우리를 맞이한다.

 “사랑하는 후손들아, 그래 오느라 수고 많았다. 요즈음 코로나로 인해 얼마나 고생이 많니? 우리 때도 여러 위험요소들이 많이 있었단다. 그래 잘 참고 견뎌내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매년 찾아뵙는 이 길에 나도 언젠가는 후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려니 싶다. 생각하니 삶이란 게 예사롭지 않구나 싶다.

                                                      (2020.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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