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이즈와 레가토의 조화

2020.10.07 23:18

전용창 조회 수:17

레이즈와 레가토의 조화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용창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은 온 국민의 애창곡이다. 그런데도 부르기는 쉽지 않다. 이 노래는 19616·25 전쟁 발발 11주년을 맞아 KBS가 조국 강산을 소재로 한 가곡사에 길이 남을 명작을 만들어 달라고 위촉하여 인천광역시 강화 출신의 ’시인 한상억‘이 시를 쓰고, 같은 인천 출신인 ’작곡가 최영섭‘이 곡을 빚어서 그해 826일 완성한 노래다. 통일의 염원과 열정을 담아서인지 첫 소절부터 고음이 많고 매 소절 끝부분은 네 박자를 길게 이어 불러야 하니 아무나 부를 수 없다. 그렇게 힘든 노래를 대학 은사였던 ‘P 교수님’은 흥이 나면 곧잘 부르셨다. 그분의 고향은 목포인데 부르기 쉬운 ‘목포의 눈물’은 부르지 않고 앙코르를 외치면 이번에는 ‘가고파’를 불렀다. 그러기에 유행가는 보통 사람이 부르는 노래지만 가곡은 성악가나 부르는 노래라고 생각했다.

 

 어느 따사로운 봄날 노인복지관에서 나오는데 여성합창단의 가곡이 흘러나왔다. 내가 아무나 부를 수 없다는 ‘그리운 금강산’을 모두가 합창으로 부르는데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순간 고등학생 시절에 배운 ’토셀리의 세레나데‘가 떠올랐다.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 옛날을 말하는가 / 기쁜 우리 젊은 날 /(중략)

 

  음악 선생님은 노래도 썩 잘하셨지만 예쁜 미모를 가진 여 선생님이셨다. 그러니 우리 남학생들은 모두가 한 번쯤 자신을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꿈 많던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나도 가곡을 배워야지' 하며 사무실로 갔다. 강당에서 수업하니 추가 접수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합창단에 들어갔다. 회원 40명 중 남자는 겨우 대여섯 명뿐이었다. 두 시간 수업인데 끝나기 30분 전에는 이름 순서대로 다섯 명쯤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대부분이 교재에 나와 있는 가곡을 연습하고 나와서 독창을 했다. 나는 이 시간이 즐거웠다. 내가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현란한 손놀림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반주와 40명 가까운 관객 앞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나는 회원들처럼 ‘프레이즈’와 ‘레가토’ 주법을 잘하지 못하여 가곡은 부르지 못하지만, 그 대신 시인이 작사한 노래를 불렀다. 고향산천을 그린 ‘정지용’의 시 ‘향수’를 불렀고, ‘김노현’의 시 ‘황혼의 노래’를 불렀다. 그래도 회원들의 박수를 많이 받고 ‘L 지도교수님’의 칭찬을 받은 노래는 ‘조영남’의 ‘사랑 없인 난 못 살아요’와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였다. 아마도 큰 소리로 불렀기에 칭찬해 준 듯했다. 내가 독창을 하고 난 뒤 교수님은 다 같이 부르자고 하여 선배님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었다.

 

 ‘밤 깊으면 너무 조용해 / 책 덮으면 너무 쓸쓸해 / 불을 끄면 너무 외로워 / 누가 내 곁에 있으면 좋겠네’ / (중략)

 

 그렇게 재미나게 기다린 가곡수업도 ‘코로나19’로 기약 없이 멈춰버렸다. 나는 회원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잠자던 ‘단톡방’에 추석 전날 ‘나훈아’ 콘서트를 보고 쓴 ‘사내답게 살다 갈 거야’ 란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총무님의 답신이 있었다. 추석 인사와 만남이 늦어져서 아쉽다는 내용과 지난해 결산 잔액이 4만여 원 남았는데 어떻게 할 것인지 의견을 구하는 내용이었다. 모두가 잠잠했다. 나는 메시지를 보냈다. 코로나로 답답하실까 봐 글을 올렸다며, 회비 잔금은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힘드신 교수님께 전하자며 5만 원을 채울 수 있게 1만 원을 보내드린다고 했다. 나의 제안에 동참 의사를 보내시는 회원분이 하나둘 늘어갔다. 총무님은 회장님과 상의하겠다고 했고, 그 결과를 올렸다. 모두가 힘들지만, 한마음으로 지도교수님과 반주하시는 선생님께 우리의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며 존경과 사랑을 드린다는 답신이었다.

 

 총무님의 계좌번호가 올라오자 자발적으로 동참해주시는 분들의 이름과 금액이 올라왔다. 나는 가슴에 차오르는 희열을 느꼈다. 비록 조그만 성의를 전하지만 기뻐하실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수업 시간마다 강조하시는 강의내용이 생각났다. 노래를 잘하려면 심호흡을 하여 발성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데, 우선 입을 크게 벌려서 공기를 많이 들여 마셔야 한다고 했다. 그런 과정이 끝나면 ‘프레이즈와 레가토’를 조화 있게 구사해야 한다고 했다. ‘프레이즈’는 노래 한 소절을 멈춤이 없이 한꺼번에 부르는 음악의 주법이고, ‘레가토’는 음과 음 사이가 끊어지지 않도록 부드럽게 이어주는 주법이다. 오늘 내가 본 회원들의 마음은 ‘프레이즈와 레가토’였다. 마음과 마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총무님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21만 원을 전해 드렸다며 회원님 모두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영상과 ‘우리 총무님, 너무 수고하셨네요.’란 칭찬과 감사 메시지가 올라왔다. 어느새 올 한 해도 다 가고 있다. 벌써 겨울의 문턱에 들어섰다. 여민 옷깃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비록 코로나로 지치고 힘들지만 ‘프레이즈’와 ‘레가토’의 삶으로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세상이 영원하리라 믿는다.

 

                                                                        (2020.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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