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2020.10.09 23:22

정남숙 조회 수:9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입니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정남숙

 

 

 

  “국기 게양은 나라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 동아리 총무의 문자가 들어왔다. 뒤이어 하나둘 국기를 게양한 회원들의 인증 샷들이 올라온다. 나는 이미 태극기를 게양한 후 아들 며느리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어 서두르지 않는다. 우리 집은 우리나라 5대 국경일에 거의 태극기를 달지만 유독 한글날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태극기를 게양한다. 남보다 유별나게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며 한글을 사랑해서만은 아니다. 109일 한글날은 내 둘째아들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결혼한 지 20년이 지났는데도 어김없이 이날 아침엔 전화를 걸어와 태극기 다셨느냐,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며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인사말을 번갈아 주기 때문이다.

 

  작은아들 서너 살 때 생일날 아침, 형을 따라 마을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놀다가 우연히 집마다 대문 앞에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것을 보고 이웃 사람들이 제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며 좋아했다. 아이의 꿈을 깨게 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래서 다른 국경일은 혹시 잊을지라도 109일 한글날만큼은 세종대왕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아들을 위해 빠지지 않고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아이가 성장하여 제 생일 축하가 아니라 한글날을 기념하기 위함인 줄 알았을 터이지만, 아들을 위해 태극기를 게양하는 엄마의 맘을 말없이 믿어주고 있다. 이렇듯 우리에겐 109일은 한글날도 기념하고, 내 아들 생일도 축하해주는 특별히 의미 있는 날이 되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손자 이름도 훈민정음의 백성 민()자를 넣어 지어주셨다.

 

  한글날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하여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는 5대 국경일 중 하나다. 1926, 한글을 창제한 음력(陰曆) 929일을 ‘가갸날’로 정한 것이 그 시초였으며, 2년 후 ‘한글날’로 개칭되었다. 광복 이후 양력(陽曆)으로 환산하여 109일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5대 국경일 중 하나인 한글날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1949년 국경일(國慶日)로 지정되었고, 이어 1970년 공휴일(公休日)로 지정되었으나 휴일이 많다는 기업 등의 지적으로 국가 경축일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한글단체 등의 꾸준한 문제 제기로 2006년부터 다시 국경일 지위를 회복하여 2012년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면서, 2013년부터는 법정 공휴일로 다시 지정되었다.  

 

  우리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 국기(國旗), 태극기는 처음부터 지금의 문양은 아니었다. 1882(고종19) 체결된 한미수호통상조약 조인식이 국기를 만들게 된 직접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조인식에 게양된 국기의 형태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최근에 발굴된 자료인 미국 항해국(航海局)이 제작한 해상국가들의 깃발에 실려 있는 것이 태극기의 원형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태극기는 1882년 조선의 왕을 상징하는 어기(御旗)"태극 팔괘도"를 만들었으나, 같은 해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과정을 기록한, 사화기략(使和記)에 의하면 박영효가 배 안에서 태극문양과 그 둘레에 8괘 대신 건()·곤()·감()·리() 4괘를 그려 넣은 태극(太極) 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사용했다고 한다. 고종은 다음 해인 1883년 이 태극 괘 도안을 국기로 제정 공포했으나 국기 제작 방법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탓에 다양한 형태로 사용해 오다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제작법을 일치시켜 제정·공포했으나 일반 국민들에게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태극기에 담긴 뜻으로 하얀 바탕은 한민족 백의민족과 광명(光明)의 상징이며, 가운데 태극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여 자연법칙의 최고 원리인 빨강 파랑으로 음양(陰陽)을 상징하였고, 네 귀퉁이의 건곤감리 4괘는 천지 일월로 주역(周易) 64괘를 나타내고 있다. 태극(太極)은 본래 우주 생명의 주이며 그 생명의 원리이고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에서 천지가 나타났으며 또 천지에서 만물이 생겨 천지간 삼라만상이 나타나는 것이라 하여, 태극의 결국은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으로 태극은 우주의 원리이며 만생(萬生)의 근본이라고 한다. 이러한 오묘한 뜻을 담고 여러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우리나라 상징인 태극기는 5대 국경일은 물론, 국가가 지정하는 날과 국군의 날에도 게양했으며, 66일 현충일에는 조의(弔意)를 표하는 의미로 조기(弔旗) 방식을 따라 게양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아파트에서도 국기 게양한 세대는 보이지 않고, 길가에 나가봐도 가로 게양대 외에 일반인들의 집에 태극기는 펄럭이지 않고 있다.

 

  서울에서 활동할 때 우리는 태극기 보급 사업을 통해 자치단체 내 아파트단지마다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 태극기를 제작하여 구청 관할 아파트 전 세대에 무료로 나눠줘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도록 장려하는 사업이었다. 힘은 들었어도 일사불란하게 태극기가 하늘 높이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잘했다 칭찬도 받고 서울시에서 우수 사업으로 인정받아 상장과 상품까지도 받았었다. 그때 사업을 마치고 남은 태극기를 귀향할 때 챙겨 가지고 왔었다. 언젠가 주민센터에 민원이 있어 들렸는데 직원들 담소 중에 태극기란 말이 들렸다. 나완 아무런 관계도 없었지만 나는 그들의 대화중에 끼어 들어가 태극기가 필요 하느냐 물었다. 얼른 집으로 달려가 태극기 들어 있는 기다란 보관 통 열 개를 가져다주었다. 필요하면 더 줄 수도 있다 하니 내가 태극기 파는 사람인 줄 알았는지 값이 얼마냐고 물었다.

 

  그 후로 이웃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자청하여 묻고 주기를 반복하고, 나머지는 시골 고향 동네 집집마다 나누어 주었다. 가정용만 만든 것이 아니라 대형태극기도 제작했으니, 아파트 관리실, 경로당, 지역 기업 등 필요한 곳에 인심을 쓰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높이 솟은 게양대에 내가 보낸 태극기가 바람에 나부끼면 뒤돌아서서 다시 한 번 더 바라보게 된다. 전에는 국기를 게양할 때와 내릴 때 시간을 정하고, 게양식과 하기식 시간에는 가던 길을 멈추고 노래가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었다. 언제부턴가 그런 관료적인 행사가 없어지고 밤낮없이 게양되고 있다. 옛날에는 태극기를 귀하게 대접했었다. 어떤 사람이 보자기가 없어 태극기를 대신 사용하다 국기 남용 죄로 경찰에게 잡혀갔다는 말도 있었고, 더럽히거나 훼손시켜도 벌금을 물린다 했으며, 만일 헤어져 못쓰게 되어도 함부로 버리거나 걸레로 써도 안 되며, 반드시 땅을 파고 묻어야 한다고 했다. 나라의 상징이라 그랬는지 구하기가 너무 어려워 귀한 것이기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태극기는 경건하게 다루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했다.

 

  지난해 삼일절 100주년 기념을 위한 태극기 특별전에 귀한 태극기를 만날 수 있었다. ‘진관사 태극기’ 였다. 진관사 태극기는 서울 북한산(일명, 삼각산)에 위치한 사찰 진관사(津寬寺)에서 지난 2009년 발견된 태극기다. 6·25전쟁으로 사찰 전체가 불타던 중 나한전과 같이 남겨진 칠성각의 해체 보수 과정에서 벽을 뜯었는데 그 안에서 보따리 하나가 나왔다. 그 보따리 안에는 독립신문, 자유신종보, 일제에 대한 경고문 등 독립운동에 관련된 귀한 자료 621점이 담겨있던 보자기가 바로 이 진관사 태극기였다. 이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 바탕 위에 검은색 안료로 태극 문양과 4괘를 그려 넣은 것으로  19193.1운동 당시 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진관사가 위치한 은평구는 매년 3.1절마다 거리에 특별한 이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지난해 대통령이 삼일절 행사장에 입장할 때 앞세우기도 했던 태극기였다. 이외에도 국권 회복과 조국광복을 위해 단합된 힘을 태극기에 새기며 만들어진 각양각색의 의미 있는 태극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요즘은 태극기가 풍년이다. 그런데도 태극기를 게양하는 집은 드물다. 옷으로 활용하고 머리 두건으로도 활용한다. 운동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좋은 성적을 거두고 나면 커다란 태극기로 온몸을 감싸고 운동장을 돌며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힘센 나라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특히 일본이 자기 나라 영토라며 억지를 부리며 우기고 있는 우리나라 땅 독도에, 하늘 높이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면 독도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를 지켜주는 상징적인 것으로, 대한민국 국기 태극기의 위용이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나라 사랑은 태극기 사랑’ 이라 하니 태극기가 바람에 휘날리도록 국경일이라도 우리 모두 태극기를 게양했으면 좋겠다.

                                                                         (2020.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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