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보이스 퀸

2020.10.13 12:47

한성덕 조회 수:41

눈물의 보이스 퀸

                                                                          한성덕

 

 

 

 

  나는 노래를 제법 부른다. 4성부 중 베이스파트는 자신하는데 중상위권은 될 것 같다. 그러나 노래를 듣는 것만큼은 상위권에 속한다. 신나는 노래에 어깨가 들썩이고 박수가 터지며, 더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일어나 춤이라도 추어야한다. 물론, 노래를 들으면서 명상에 잠길 때도 있다.

  고등학생 때는 ‘365곡 명곡집’을 끼고 살았다. 책가방이 빵빵할 때는 왼손에 도시락, 오른손엔 명곡집을 들었다. 내게서만큼은 노래책이 친구요, 애인이요, 분신이었다. 미치도록 노래를 좋아했으니 어쩌랴? 풍금이나 성악을 배운 것도 아닌데 풍금을 치면서 노래를 익혔다. 단지 풍금은, 교회선생님에게서 찬송가 한 곡을 지정받은 게 전부였다. 그 곡을 계속해서 치다보면 손가락이 부드러워지고 악보에 익숙해진다고 하셨다. 선생님도 그렇게 배웠다며, 나를 그렇게 가르치셨다. 마냥 노래가 좋아 점심시간에는 학교음악실에서 피아노를, 토요일과 주일(일요일)은 예배당에서 풍금을 쳤다. 결국은 두 건반악기를 다룬 셈이 아닌가? 노래를 참 좋아하던 학창시절의 추억이다.

  그 시절에 닦아둔 추억의 노래 때문이었나? 두 방송사에서 실시한 프로그램에 흠신 빠졌었다. 하나는, JTBC에서 실시했던 ‘팬텀싱어’다. 두 번 모두 감동적이었지만, 3년 만에 돌아온 ‘팬텀싱어3’야 말로 다양한 장르를 선보인 최고의 무대였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자나 숨은 실력자들, 천상의 소리를 뽐내며 살아온 꽃미남들, 노래만큼이나 싱그러운 젊은 남성들이 장악한 무대였다. 싱어들의 노래에 가슴이 뭉클하고, 추억은 콧잔등에 내려앉아 시큰거리며, 팔뚝에 돋아난 소름은 솜털을 꼿꼿이 세웠다. 금요일 밤마다 내 귀를 호강시켜준 행복플러스였다. 그 매력에 8개월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다 끝난 뒤에도 ‘팬텀싱어’를 보고 또 보았다. 지금도 심심찮게 보고 듣는다.

  그리고 mbn의 ‘보이스 퀸’이었다. 금년 123() 최종회로 막을 내렸다. 주부들의 노래와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훔쳤으니 꽤나 감동적이었다. 그 관심은 나를 대중가요에 성큼 다가서게 했다. 관심보다는 눈을 뜨게 했다는 게 옳다. 나이를 먹은 건지 향수 탓인지, 대한민국에서 치러지는 여러 고시(사법, 외무, 법무, 행정 등)들 보다 더 어렵다는 소문 탓인지,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힘들다는 난이도 탓인지 ‘보이스 퀸’의 시간을 몹시 기다렸다.

  지금은 이 나라가 온통 트로트 열풍을 넘어 광풍으로 변했다. 아마도, ‘코로나19’로부터 공격받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제공하기 때문인 성싶다. 대중가요라면 그토록 담을 쌓고 살았던 나도 대회 중에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물을 삼켰다. 트로트가 눈에 걸렸다고나 할까?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관심만큼이나 대중가요를 찾아나서는 건 아니다. 다만, 지난날처럼 대중가요가 싫어서 TV채널을 바꾸진 않는다. 그만큼 가까이서 품게 되고 친숙해졌다. 대단한 발전이요, 획기적인 변화다.

 

  새내기 트로트 가수들의 인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느닷없이 노래 한번 잘 불러서 된 건가? 인기로 경제가 거덜나고 잔심부름께나 하면서 어쩌다 무대에 올라서도, 그 좋아하던 노래를 510, 또는 그 이상의 세월동안 꾸준히 부르면서 가창력을 키운 게 아닐까? ‘나도 할 수 있다.’는 꿈을 안고 말이다. 두 방송사의 대회에서 인내에 따른 결과임을 한껏 느끼도록 했다.

 그동안 불렀던 노래의 대부분은 찬송가를 비롯해서 가곡, 세계명곡, 캠프 송, 또는 고전음악이었다. 그래서 대중가요는 잘 모른다. 허나 그 노래가 귓가에 부딪치고 뇌리를 스칠 때는 맥없이 흥얼흥얼 따라 부르곤 한다.  

                                           (2020. 10.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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