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의 탈출

2020.10.14 18:49

정근식 조회 수:2

게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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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국민연금공단

게가 없어졌다. 좁은 수족관에서 바깥세상으로 탈출을 했다. 어제 저녁에 먹이를 주고 단단히 문을 닫았는데 아침에 없어진 것이다. 끼니를 챙겨 주고 일주일에 한 번은 물을 갈아주며 정성껏 보살폈는데 좁은 수족관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하기야 두 해 동안 몇 번의 탈피를 거쳐 덩치 큰 성채가 되었으니 수족관이 좁긴 좁았을 것이다. 수염만 이십 센티가 넘었으니 폭이 이십 센터 정도의 좁은 수족관에서 몸을 뒤틀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아내는 아침부터 분주히 게를 찾았다. 살아있는 생물이 없어졌으니 걱정도 되었고, 두 해 동안 정성을 다해 키운 게가 사라진 것이 아쉬웠다. 아내는 냉장고 아래로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고 소파를 뒤집어 찾았지만, 게는 보이지 않았다.
 오후에 사무실로 아내가 전화를 했다. 혹시 게를 보지 못했는지 물었다.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무슨 게 타령이냐고 핀잔을 주었더니, 어젯밤 내가 먹이를 주고 어항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서 게가 나갔다며 화를 냈다. 저녁에 두고 보자는 말투로 들렸다.
 아내는 종일 게를 찾았는지 퇴근을 하고 현관문에 들어서는데 잔소리를 시작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찾아내라는 것이다. 그깟 게 한 마리 가지고 호들갑을 떠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은근히 게가 걱정되어 아내와 다시 찾아보았지만 없었다.
 몇 개월 전 큰애가 학원 강사를 그만두었다며 일방적 통보를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입사를 희망했던 직장이기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미리 내게 귀띔이라도 해 주었다면 말렸을 터인데 퇴직금까지 받고 내게 통보를 한 것이다. 아내의 말로는 분명 큰 애가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한 것 같다고 했다. 큰 애는 외국 여행을 다녀오고 두어 달 쉬었다가 서울로 가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 곁을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는 아이였기에 서울로 가겠다며 당당히 말하는 아이의 태도에 다시 한번 놀랐다.
 탈출한 게를 찾으면서 큰애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큰애는 지난달 직장을 얻어 서울로 갔다. 꼭 서울로 가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사표를 낸 직장에서 언제든 받아 주겠다고 했고, 대학 때 아르바이트 했던 학원에서도 몇 차례 연락이 왔었다. 집 근처에서도 직장을 구할 수 있지만 큰애는 서울에 있는 직장만 고집했다. 혼자 생활하는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큰애가 타지로 가겠다는 결심을 듣고 난 뒤, 어젯밤 탈출한 게를 생각했다. 수족관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보다 다른 환경이 중요했겠다고 하는 생각을 했다. 몸 틀기조차 힘든 좁은 수족관에서 불편했을 것이고, 무리 지어 사는 습성을 가진 게가 혼자 지내는 것이 많이 외롭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성체가 되어 짝을 만날 시기도 지났는데, 아무리 우리 부부가 따뜻하게 보살펴 주었더라도 혼자 있는 외로움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게는 수족관을 벗어나 넓은 바깥세상을 동경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성인이 된 큰애도 어린아이 취급하는 내게 갇혀 사는 것이 불편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반성이 되었다.
 서울로 떠난 큰애가 한 달 만에 집으로 왔다. 큰애는 서울 고시텔에서 월세로 지낸다. 고시텔을 구하는 날 나와 함께 다녔다. 몸만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은 고시텔도 괜찮다고 생활하겠다고 했다. 방이 좁아 마음이 불편했지만, 큰애는 고시텔 생활이 나름 재미가 있을 것 같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계약을  했다.
 아내는 큰애가 직장생활도 고시텔 생활도 집에서 다니는 것보다 더 좋다며 만족해한다고 했다. 섭섭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큰애도 성인이 되어 내 품을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들은 후 이제 나의 수족관에서 큰애를 벗어나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나는 게를 찾지 않을 것이다. 좁은 수족관을 떠난 게를 찾으려 애쓰지 않을 것이다. 집을 떠난 큰애가 바깥 생활을 즐거워하는 것처럼, 좁은 수족관을 떠난 게가 넓은 세상을 보면서 행복해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큰애가 탈출을 즐거워하듯 수족관을 떠난 게도 지금쯤 작은 개울에서 행복해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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