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다리

2020.11.18 23:59

허세욱 조회 수:55

송정(松亭)다리

 

허세욱

 

 

 

내 고향 모갈로 들어가는 동구 송정에는 달랑 주막 한 채가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부옇게 먼지를 둘러쓰고 있는 방앗간, 그것도 달랑 한 채였다.

주막과 방앗간 그 겨드랑이로 수십 그루의 동그란 수양버들과 꺼벙한 키의 사시나무가 히뜩히뜩 줄기를 드러내고 섰다. 바로 그 아래로 노산치*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이 졸졸거렸다. 그 위로 20m 남짓한 철근 콘크리트 다리가 남북으로 걸쳐 있었다. 북쪽 동냥아치고개로부터 헐떡거리며 내려오는 신작로와 남쪽 탑전고개로부터 신나게 미끄러져 온 신작로가 여기서 악수하면서 모처럼 가쁜 숨을 고르고 있다.

한낮이래도 신작로는 늘 교교했었다. 어쩌다가 산판의 재목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 획 지나면 뽀얗게 먼지가 일면서 주막집이 아른아른했다. 어스름 저녁, 소를 몰고 돌아오면 신작로는 하얀 가래떡처럼 낭창낭창 휘어졌고, 초승달 푸른 달빛 아래서 휘휘 둘러보면 차라리 승무(僧舞)하는 긴 명주 수건이었다.

여기서 서북쪽으로 6,7백 미터쯤 거슬러 오르면 내 고향집이다. 내가 나고 자랐던 곳이다. 하지만 그것은 들어서 알 뿐이요, 자란 일 또한 아물아물했다. 유독 625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우리 집 사랑방에 쭈그려 앉아 한문을 읽던 2년 남짓의 그 세월이 기억 속에 또렷했었다. 아니 그때 하루하루가 내 안막에 새겨 있었다.

그때 내가 가장 동경했던 곳이 송정이었다. 거기서 하얗게 뻗은 신작로를 볼 수 있었다. 거기서 시오리를 나가면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전주를 올라가고, 더 멀리 서울을 가고, 아주 멀리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오수역이 있었다. 거기라야 양복을 입은 사람이 넥타이를 흩날리며 오수 쪽을 활개 치는 그 발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거기라야 황혼 길에 술 한잔 걸치고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개처럼 옆 걸음으로 돌아가는 주정꾼을 만날 수 있었다.

송정은 나에게 부두 같은 곳이었다. 바다의 밀물이 밀려오는 방제 같은 것이었다. 웬만한 핑계가 아니면 거기까지 외출허가가 떨어지지 않았다. 멀리서 사장(査丈)**이나 집안 어른이 다녀가시는 등 그런 예모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충분조건이었다. 어른들의 꽁무니를 졸래졸래 따라갔다가 그 다리 어구에서 꾸벅꾸벅 절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때 마시던 신작로의 바람과 주막집에서 새어나던 술 냄새가 상큼했었다.

그 다리는 전송의 마당만이 아니었다. 간혹 아버님이 출타하셨다가 늦게 돌아오시는 날이면 초롱을 들고 거기 씽씽 바람 부는 다리 난간에 앉아 아버님을 기다렸다. 언젠가 동냥아치고개로부터 펄럭일 두루마기 자락을 기다리는 동안 송정 뒷산에선 자규가 피를 삼키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내 송정다리에서의 마중 역사는 훨씬 옛날로 거슬러 올랐다. 아버지는 물론 형님 두 분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때는 일제 말기, 작은형은 전주에서 중학교를, 큰형은 서울서 전문학교를, 그리고 나는 고향서 초등학교를 다니던 때였으니, 터울 따라 등급도 달랐었다.

작은형은 토요일마다 꼬박꼬박 돌아왔었다. 해가 뉘엿뉘엿할 때 그 훤칠한 키가 마당에 들지 않으면 나는 으레 송정엘 나가 그 다리 난간에 앉는 것이다. 이윽고 국방색 훈련복 차림에 각반과 전투모를 눌러쓴 형이 시야에 들어오면 당장 뛰어가서 형의 손을 잡고 앞장을 섰었다. 그때마다 형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자상한 웃음이 입술에 달려 있었다.

큰형은 일 년에 기껏 한두 번 만난 것으로 기억된다. 큰형이라서 만만찮은 데다 그놈의 사각모가 주는 묘한 생소감 때문에 얼른 그 팔뚝에 매달리지 못했었다. 마중보다는 송정다리서 몇 번인가 전송했던 기억만 어렴풋하다.

몇 년 전, 부모님 체백을 지리산 만복대 아래로 모셨다. 조부모님 선영 아래로 모셨다. 한 해에 한두 번씩 성묘를 핑계로 귀향하던 길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속버스나 급행열차로 지리산을 직행하면서 송정 그 다리를 쿵쿵거리며 달려갈 일이 적어졌다. 듣자니 최근 수재를 겪은 뒤 현대공법으로 더 넓고 더 탄탄한 다리를 중건했다고 한다.

어느 날, 훌쩍 바람처럼 돌아가고 싶다. 거기 송정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옛날처럼 턱을 괴고 저 동냥아치고개에서 두루마기 자락을 기다리고 싶다. 그 밤 소쩍새의 피를 삼키는 울음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 누군가 다가오는 그림자를 향해 한 번 외치련다.

거 누구요?”

지금 나는 서울서 늙고 있다. 그 다리 건너서 60, 그 다리 그리며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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