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엔

2020.11.22 12:07

이우철 조회 수:4

11월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 우 철

 

 

 

 매년 11월이 되면 마음도 몸도 무거워진다. 한 해를 시작하면서 다짐했던 일들을 얼마나 이루고 있는지, 그동안 헛되이 살지는 않았는지, 작심삼일은 되지 않았는지 뒤안길을 살펴보기 마련이다. 그리 자랑할 만한 게 없으니 자신이 부끄럽고 초라할 뿐이다. 올해는 이른 봄부터 역병 '코로나19'가 시작되더니 계절의 향기를 맛볼 겨를도 없이 한 해가 지나버린 것이다.

 

 내 마음을 후비는 시가 있다. 공주풀꽃문학관을 운영하고 있는 나태주님의 '11월'이라는 시다. 그동안 풀꽃처럼 작고 여린 존재를 향한 글을 써서 일반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한 해를 보내며 지금쯤 읽어보면 마음을 여미게 한다. 흩어진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돌아가기에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에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

  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나태주님의 시 '11월')

 

 마음을 환히 들여다보듯 정곡을 찌르는 글이다시인의 말처럼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아까운 시간이다. 핑계 같지만 꽃피는 봄이 오는가 했더니 난데없는 '코로나19'가 확산되어 계절의 감각을 느낄 겨를도 없이 휙 지나가 버렸다. 아무리 역병이 창궐하고 경제가 어렵다 해도 계절은 어김없이 지나가고 있었으니, 누구도 자연의 섭리를 비껴 갈 수는 없었다.

 

  나는 아침마다 앞산으로 산보를 한다. 가까운 곳에 있는 '가득뜰 공원'이다. 시내에 있는 야산이지만 등성이 몇 구비를 넘으면 금강을 바라볼 수 있으니 더없이 좋다. 욕심 부리지 않는 물처럼 살 수는 없을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편안해진다. 노자()는 제자들에게 상선약수(上善若水)를 가르쳤다. 가장 위대한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스스로 낮은 곳으로 흐르기를 즐겨하며(겸손),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신의)는 교훈을 준다.

 

 상강(霜降)이 지나니 싱싱하던 나뭇잎은 찬서리 한 방에 변했다. 점점 단풍으로 물들었고, 할머니 얼굴처럼 쭈글쭈글한 낙엽이 되어 실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졌다.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며 부서진다. 아무런 저항도 원망도 없이 생명의 끈을 놓아버리는 저들은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숲속의 까마귀들이 까악 까악 친구를 하자며 다가와 겨울이 임박했다고 속삭인다.

 

  금강 세종보에 이르니 아침햇살에 윤슬이 빛을 발한다. 물오리 떼가 물에 잠길 듯 말 듯 강물에 내려앉아 유영하는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꺽다리 백로가 강가에서 잽싸게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채며 기량을 발휘한다. 저 좋다고 날뛰기만 하던 녀석들이 한 순간에 백로의 먹잇감이 되었으니 제 운명을 어찌 예측이나 했을까? 누구나 잘 나갈 때 날뛰지 말고 조심해야 할 일이다.

 

 나는 연초에 일기쓰기, 문인화, 독서(1)를 약속했다. 일기쓰기는 수필공부에 도움이 될까싶어 4년째 계속하고 있다. 요즘은 하루의 일과중 한 건씩 수필형식으로 쓰다보니 글의 내용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책 읽기도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문학, 철학, 사회과학 등 안목을 부단히 넓혀나가고 있는 중이다. 다만 문인화는 거주지를 옮기다보니 어찌할 수 없이 서예(書藝)로 대신하고 있다.

 

 11월은 자신을 돌아보는 중요한 달이다. 달력 마지막 한 장을 남겨놓고 있으니 아쉽지만 마음 조이며 자신을 평가받는 시간이다. 단풍과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빛을 발하듯 후회없이 마무리해야겠다. 가식의 옷을 벗어던진 11월의 청빈한 나무처럼 가벼운 연말을 준비하고 싶다.

                                                                      (2020. 1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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