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농민 지도자의 죽음

2020.11.22 12:31

이환권 조회 수:4

어느 농민 지도자의 죽음

                                          신아대학 수요수필반 이환권

 

 

 

  그나마 가을 속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지난 118, 단풍을 자랑하는 위봉사쪽 산자락과 소양 한지마을 도로, 그리고 진안 모래재 구도로쪽으로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그런데 매년 전성기 때의 감성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딱 한 주가 늦었네!”를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맞아, 한 주가 늦었어!” 그래도 간간이 한 그루씩 늦은 단풍나무가 있어 그런대로 위안을 삼았다.

 이대로 가을을 보내기가 아쉬웠다. 나름대로 기다림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기에 친구로부터 단풍사진 몇장이 카톡 채팅방에 올라왔다. 완산칠봉 녹두관에서 근무하는 친구가 보낸 것으로 투구봉 부근 완산시립도서관 뒷산 산책로에서 찍은 사진이라 했다.

 다행히 그 날 오후는 딸이 휴가를 내서 손자들 돌볼 일이 없어서 바로 완산칠봉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3분 거리의 녹두관으로 향했다

 녹두관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을 일본군이 효수하여 진도에서 유출된 두개골이 일본 북해도 대학에서 발견되어 1996년 본국으로 송환되었는데 그동안 전주역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201961일 완산칠봉 꽃동산(투구봉)에 녹두관을 건립하여 안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녹두관에는 안내홀과 전시장, 무명지도자 추모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상시 근무자와 문화해설사가 상주하고 있다. 이제 1년 반 밖에 되지 않아 낮설지만 우리는 우리의 역사의식을 바로 가져야 할 것 같았다. 탐관오리들의 횡포와 갑질이 오죽 심했으면 농민들이 분연히 일어났을까? 전봉준 장군과 전주관찰사 사이에 맺은 12개조 폐정개혁안 또한 오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폐정개혁안에는 노비문서 소각, 천인차별 철폐, 백정 양인 대우, 청상 과부 개가 허용, 공평한 인재 등용, 등 동학사상의 핵심인 인내천*시천주(侍天主)의 평등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어 힘 있고 가진 자들의 횡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마지막 그 석 자의 이름에 무얼 남길까? 친구가 보내준 단풍들을 감상하며 산책길을 걸었다.

 이제 곱디고운 자신의 자태를 뒤로 한 채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저 나뭇잎들은 자기의 임무를 완성한 듯 바람소리와 함께 사라져 가고, 아직도 무명농민 지도자의 이름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약자 편에 서서 자신을 서슴없이 내놓았던 그 기개만큼은 우리가 본받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2020. 11. 20.)

*시천주 사상: 내 몸에 한울님을 모셨다는 동학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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