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칠기삼

2020.11.23 11:41

박제철 조회 수:3


img76.gif

운칠기삼(運七技三)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제철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말이 있다. 무슨 일을 할 때 운이 70%고 기술은 30%라는 말로서, 아무리 노력해도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별로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어떤 일이 성사되었을 때 쓰는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내 인생에서도 운칠기삼의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승진시험을 볼 때였다. 공부를 제법 한다고 했는데도 불안하고 만족하지 못했다. 시험장의 책상에 앉아서 최종적으로 주문 아닌 주문을 외웠다. 제발 공부한 범위 내에서 시험문제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 아찔함이 아니라 훤하게 보였다. 나의 바람대로 공부한 문제들이 대부분 출제되었다. 결과는 수석합격이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생각하면 운칠기삼이었다.



또 하나, 나는 화투를 잘못 치지만 모임을 할 때면 소위 고스톱이라는 것을 하기도 한다. 하고 싶지 않지만 성원이 되지 못할 때는 할 수 없이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끼어들어야 했다. 나만 서툴지 나머지 친구들은 소위 고수들이다. 몇 번 치면 상대방이 무슨 화투를 들고 있는지도 훤히 알고 있다. 하지만 끝날 때 계산을 해 보면 의외로 내가 돈을 딸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친구들이 하는 말이 있다. ‘기술이 어디 있어? 운칠기삼이지.’ 하면서 웃고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 코로나19가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를 치고 있다. 연일 300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오고 얼마 후에는 천명이 상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지만 코로나의 확산에는 핑계가 아닌 현실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성싶다.



단풍 잎새도 저버린 11월 중순, 휴일이 아닌 평일날 순창 강천산에 간 일이 있다. 순창읍에서 유명한 한식을 먹고 강천산에 갈 요량으로 한식집에 들렸다. 예약을 했느냐고 물었다. 예약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예약손님만 받는다며 다른 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또 다른 한식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집 역시 단풍철이라 손님이 많아서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시 이름이 있는 집이라서 그런지 예약손님들로 시끌벅적했다. 과연 저렇게 손님이 많은데 방역활동은 제대로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장통에서 순대국으로 점심을 때우고 강천산엘 갔다. 입구에 있는 대형버스 주차장이나 승용차 주차장은 만원이었다. 강천산 입구에 도착했다. 열을 체크하거나 방문자를 기록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들고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강천사까지 가는 길엔 나같이 늦가을의 정취를 맛보러 오는 사람들로 넘쳐 났다. 단풍도 저버린 한가한 시간이리라 생각하고 갔는데 아마도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나 보다.



강천사까지 올라가면서 수많은 사람과 마주쳤다. 경상도 말씨가 특별해서인지 유난히 많이 들렸다. 모임이나 동호회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지 명찰을 달고 오거나 자기단체를 알리는 깃발을 든 사람도 있었다. 옆의 친구들과 쉬지 않고 대화를 주고받기도 한다. 대부분 마스크를 했지만 숨이 차서인지 턱스크나 코스크를 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마스크를 벗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정부에서는 관광지 방역을 외치고 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이 과연 관광지 방역인가 싶었다.



코로나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지만 시내에서도 무언가 특별한 음식점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손님이 한가한 집은 열 체크도 하고 마스크사용여부와 출입자 체크도 한다. 하지만 문전성시를 이루는 집은 방역 체크를 하지 않는다. 아니 밀려드는 손님들이 많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난다. 나 혼자 아무리 방역을 잘한다 해도 내 주변 환경이 이러다 보니 운에 맡겨야 하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코로나19의 최고 백신은 마스크라고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나부터 백신인 마스크로 방역을 잘하여 운칠기삼이 아닌 운삼기칠(運三技七)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싶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산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2020. 11. 23.)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067 내 여동생 정근식 2020.11.25 1
2066 신판 효도잔치 김학 2020.11.25 2
2065 퇴계형한테 배울 게 더 많습니다 박정환 2020.11.24 9
2064 간디가 기억하는 '나의 어머니' 함석헌 2020.11.24 4
2063 백남인 수필집 발문 김학 2020.11.23 10
2062 일흔한 번째 생일 정석곤 2020.11.23 12
2061 낯선길 구연식 2020.11.23 2
» 운칠기삼 박제철 2020.11.23 3
2059 어느 농민 지도자의 죽음 이환권 2020.11.22 4
2058 11월엔 이우철 2020.11.22 4
2057 행운이 오는 31가지 방법 오경옥 2020.11.22 3
2056 활개치는 거리의 무법자들 이인철 2020.11.21 6
2055 연줄 김세명 2020.11.21 23
2054 선유도 연가 송병운 2020.11.21 14
2053 일반인도 갑질 대열에 서다 이인철 2020.11.20 16
2052 항상 쫓기면서 사는 사람들 이인철 2020.11.20 42
2051 전주여, 움츠린 날개를 펴라 곽창선 2020.11.20 47
2050 할머니와 계란프라이 정근식 2020.11.20 43
2049 짧은 삶에 긴 여운으로 살자 두루미 2020.11.20 16
2048 죽음, 그 너머를 보더 한성덕 2020.11.19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