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 효도잔치

2020.11.25 12:05

김학 조회 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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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판 효도잔치

 전민일보
|김 학






아, 이 코로나19가 언제쯤 사라지려나? 아니, 이 삼천리금수강산에서는 그게 언제쯤 떠나려나?

이 코로나19는 부모자식 간에도 만날 수 없게 훼방을 놓고 있다. 지난 추석 때는 오지도 가지도 말라고 하여 만날 수 없었는데, 다음 설날에도 또 만나서 세배를 받을 수 없게 하면 어떡하나?

딸과 두 아들이 보고 싶다. 사위와 두며느리가 보고 싶다. 네 손자들과 두 손녀들이 보고 싶다.

눈으로 얼굴을 볼 수 없고 두 팔로 껴안을 수 없다면 귀로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 자녀들의 얼굴을 본 지가 1년도 더 지난 것 같다. 코로나19는 그 아이들이 우리에게 오지도 못하게 하고 또 우리 부부가 그들에게 가지도 못하게 한다. 서로 오갈 수 없는 금단의 벽을 높고 높게 쌓아 올리고 있다.

그래도 자녀들과 우리 사이엔 스마트폰이 다리를 놓아주어 정을 이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 스마트폰 때문에 서로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고, 영상통화로 서로 얼굴을 볼 수도 있다. 스마트폰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건네고 싶다.

서울에 사는 큰아들과 고명딸은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두 달에 한 번씩 교대로 손자나 손녀를 데리고 우리를 찾아오곤 했었다.

그런데 코로나19라는 역병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그들의 발길이 뚝 그치고 말았다.

그 코로나19가 곧 물러가겠지 하며 기다렸으나 물러갈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니 우리는 서로가 발이 묶여 오갈 수도 없다.

해마다 5월 어버이날 무렵이면 서울에서 아들네와 딸네 식구들이 맛 집에서 만나 회식을 하며 즐거운 잔치를 마련하곤 했었다. 어버이날과 아내 생일 축하잔치를 함께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모임을 가질 수도 없었다. 봄에 축하잔치를 못했으니 가을 내 생일에는 잔치를 마련할 수 있으려니 기대했으나 그것도 불가능했다.

10월 5일은 일흔여덟 번째 맞는 내 생일이었다. 그런데 자녀들과 서로 만날 수 없는데 어떻게 생일잔치를 가질 수 있겠는가?

10월 5일 미국에 사는 작은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축하금을 보냈으니 엄마랑 맛있는 음식을 사 드시라고 했다. 그날 나는 작은 아들이 옛날처럼 전주의 맛 집에서 음식을 주문하여 보내줄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 7시가 되어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아내는 부랴부랴 저녁식사를 준비하여 가까스로 끼니를 때웠다. 생일날 저녁식사조차 거를 뻔했다. 그 다음날 10월 6일 오후에 또 미국에 사는 작은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오후 5시 반쯤 주문한 음식이 배달될 테니 맛있게 드시라고 했다.

그 시간이 되자 뜨끈뜨끈한 맛 집 음식이 배달되었다. 그날이 한국은 10월 6일이지만 미국은 10월 5일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내 생일이 지났지만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하루가 늦으니 그날이 10월 5일 내 생일이었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하하호호 웃으며 작은아들이 보내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이게 코로나19가 바꾸어 놓은 신판 효도잔치로구나 싶었다.

서울 사는 큰아들과 딸도 가끔 맛 집에서 음식을 주문하여 보내준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 부부가 음식점에 드나들 수 없게 되자 생각해낸 신종 효도법이다.

또 고명딸은 매달 e-mart에서 20여 가지 식자재와 살림도구들을 사서 보내준다. 고명딸 때문에 아내는 장보기 하는 재미 하나를 잃게 되었는데도 마냥 기뻐한다.

올해는 큰손자 김동현과 외손자 안병현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미국에 사는 손자 김동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다. 그 손자들의 졸업식과 입학식도 온라인으로 이루어져 할아버지로서 구경할 수도 없었다. 코로나19 때문이다.

아들·딸이 보고 싶다. 며느리·사위가 보고 싶다. 손자·손녀들이 보고 싶다.

코로나19가 없었던 옛날처럼 자유롭게 만나고 싶다. 일일이 보듬어 보고 악수를 나누며 장강(長江) 같이 정겨운 이야기를 오래오래 나누고 싶다.

김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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