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천의 작은 변화

2020.12.02 12:12

박제철 조회 수:5

전주천全州川의 작은 변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제철

 

 

 

  50여 년 전만 해도 전주천은 옥수玉水가 흘렀다. 전주시 교동에 있는 한벽당은 맑은 전주천의 청아한 조망과 풍경이 아름다워 한벽청연寒壁靑煙이라 하여 전주의 10경 중 2경이었다. 지금은 흔적도 없지만 한벽당 아래 남천()에서는 광목을 삶아 널거나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남천표모南川漂母가 전주 9경이었다.

 

 한벽당 주변은 전주천에서 직접 잡아 올린 물고기로 매운탕을 만들어 파는 집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빨래터는 옷감으로 사용할 광목을 삶아 조약돌위에 널어 말렸다. 빨랫줄에 널지 않고 조약돌 위에 널어 말렸으니 전주천의 조약돌은 백옥처럼 맑고 깨끗했었다. 그뿐 아니었다. 전주천은 여름이면 시민들의 더위를 식혀주는 물놀이 장소였다. 한벽당 앞과 그 남쪽 각시바위는 남자들의 밤 낮 없는 물놀이 장소였고, 빨래터주변의 남천南川은 밤이면 여자들의 물놀이 장소였다

 

 가는 세월에 아름답던 전주천도 많이 변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50여 년의 세월 속에 다섯 번이나 강산이 바뀌었으니 변할 만도 하다. 전주의 10경에 들었던 전주천의 은자갈 은모래는 건설의 붐을 타고 도심 속의 빌딩으로 변하고, 그 자리는 검은흙이 차지했다. 그 흙 위에 인위적으로 억새도 심고 갈대도 심어 숲을 만들고 오솔길을 만들어 오늘의 전주천과 천변의 산책길이 되었다. 어쩌면 젊은이들은 지금의 천주천 모습이 본래의 전주천 모습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여름 40여 일간의 긴 장마와 폭우는 전주천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하늘에서 비를 양동이로 퍼붓더니 전주 어은골 다리가 넘칠 만큼의 많은 물이 흘렀다. 천변엔 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도 그 틈에 끼어 물을 구경했다. 노도와 같다는 말이 실감났다. 붉은 황토물이 전주천의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냇가에서 자란 버드나무들만이 거센 물결에 머리를 내놓은 채 뽑히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버티지 못한 나무는 송두리째 뽑혀 어디론가 긴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많은 물은 냇가에 버려져있던 페트병이나 비닐 등 오만가지 쓰레기까지 품고 흘러 흘러갔다.

 

 비가 개고 전주천의 물이 줄었다. 건설현장 속으로 끌려가지 않고 땅속 깊이 숨어있던 하얀 모래와 자갈이 거센 물살에 밀려 여기저기 작은 톱들이 만들어졌다. 물도 많이 흐르다보니 주변도 깨끗해졌다. 모래톱에 텐트를 치고 가족 물놀이를 해도 손색이 없을 성싶었다. 새로 만든 섶다리에서 내려다 보니 이끼도 없는 깨끗한 물속에서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놀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백로가 물고기 사냥을 나왔는지 움직이지도 않고 물속을 겨냥하고 있었다. 자갈 톱에서 부지런히 돌을 뒤적이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수석을 수집하려는 사람인 성싶다, 이것이 노도와 같은 강물이 휩쓸고 간 뒤의 전주천의 작지만 변화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번 여름은 수해가 많아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도 많고, 지금도 집을 잃고 귀가를 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비로인한 많은 피해 속에서도 숨어 버렸던 자갈 모래톱이 나온 것은 해속에서도 은혜가 나온다는 은생어해인 성싶다.

 

 맑고 아름다웠던 전주천의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지만, 많은 비로 생긴 작은 변화가 희미해져가는 옛날의 추억을 불러내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타임 캪슐을 타고 추억 속으로 빠져들어 50여 년 전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해준 전주천의 작은 변화에 감사했다.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202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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