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난로 앞에서

2021.01.11 07:33

윤근택 조회 수:1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열아홉 번째,일백스무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19.

  짐짓 녀석을 골려줄 요량으로, 이 ‘만돌이농장’을 휘감아 사계절 흐르는 개여울가에 외로 선 어떤 나무의 가지를 하나 베어 왔다.

  “으뜸아, 이 나무는 무척 향기롭고 달콤해. 어디 네 혀로 가지의 절단면의 맛을 느껴보렴.”

  녀석은 이 할애비의 권유에 따라 그 작고 귀여운 혀를 내밀어 나무의 맛을 보려 한다. 녀석은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그 나뭇가지를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한아버지, 순거짓말쟁이. 이 나무는 완죤(완전) 써. ”

  이 할애비는 호방하게 웃어젖히고 녀석한테 일러준다.

  “으뜸아, 이 나무를 ‘소태나무’라고 해. ‘소[牛]의 태(胎)’ 즉, ‘소의 태반(胎盤)’처럼 그 맛이 쓴 데서 유래한 나무이름이란다. 소태나무과(-科)에 속한 나무인데, 소태나무과에는 이 소태나무 말고도 지난 번 제 101화에 소개한‘가중나무[假僧木]’가 있어.”

  녀석은 그처럼 쓸개즙처럼 쓴 소태나무의 쓰임에 관해 이 외할애비한테 곧바로 물어 온다.

  “으뜸아, 우선 이 이야기부터 들려주어야겠다. 너는 소젖[우유]이 아닌 엄마젖을 먹고 자란 걸로 이 할애비는 알고 지낸단다. 네 어미이며 이 할애비의 딸인 ‘초롱’은 젖을 떼려고 무척 힘들어했대. 보통 아가들은 태어난 후 6~7개월이면 젖을 뗄 수 있는데, 외동인 터라 네 동생이 네 엄마 뱃속에 없었던 탓인지, 늦게까지 젖 달라고 보채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던데? 해서, 네 엄마는 너한테 겁을 주려고 이른바 ‘아까징끼(머큐로크롬, 빨간약)’를 젖꼭지에 바르곤 했다던데?”

  녀석은 다소 쑥스러워하며 소태나무와 ‘머큐로크롬’과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다.

  “예전에, 이 외할애비의 아버지이시자 네 외증조부이신 분께서는 송아지 젖떼기를 할 적에 어미소 젖꼭지에다 소태나무즙을 바르곤 했단다. 송아지는 태어난 지 60일~70일이면 젖떼기에 알맞은 시기였기에. 사실 시골 엄마들 가운데 연년생 자녀를 둔 분들도 소태나무즙을 ‘아가 젖떼기’ 약으로 젖꼭지에 바르곤 했단다. ”

  외손주녀석 으뜸이가 중간점검을(?) 한다.

  “한아버지, 소태나무는 소의 태반처럼 쓴 나무. 아가나 송아지 젖떼기에 쓰였던 나무. 근데(그런데) 다른 나무들처럼 소태나무도 별명을 여럿 가졌을 텐데... .”

  언제고 녀석의 질문은 이 할애비를 신명나게 한다. 해서, 덤으로 녀석한테 다음과 같이 알려준다.

  ‘ 소태나무는 고련(苦楝)·고목(苦木)·고담목(苦膽木)·산웅담(山熊膽) 등의 별명을 지니고 있다. 소태나무의 학명은 Picrasma quassioides(D.Don.) Benn.‘Picrasma’은 ‘쓴맛[苦味]’을 이르는 희랍어이고, quassioides’은 나무줄기껍질에‘콰시아(quassinin)’라는 쓴 성분이 들어있는 나무임을 뜻한다. 콰시아는 이미 위에서 이야기하였던 대로 이유제(離乳劑)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구충제·건위제·소화제·식욕촉진제로도 쓰인다. 우리가 ‘소태같이 쓰다’라고 하는 말은 바로 소태나무 껍질 쓴 맛에서 비롯되었다.’

  녀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서 한마디 한다.

  “한아버지, 으뜸이한테 소태나무의 별명 가운데에는 ‘산웅담(山熊膽)’도 있다고 조금 전에 말했어. 웅담이면, 텔레비전 어느 제약회사 의약품 광고에서 ‘곰의 쓸개’로 알고 지내는데... .”

  녀석이 무엇이 연상되어 하는 말인지 알겠다. 녀석은 중국사극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을 떠올린 듯하다.

  와신상담, ‘ 섶에 누워 자고 쓴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으려 하거나 실패한 일을 다시 이루고자 굳은 결심을 하고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것을 이르는 말. 중국 춘추(春秋) 시대에 오(吳)나라의 왕 부차(夫差)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섶에 누워 잠을 자며 복수를 꾀하여 월(越)나라의 왕 구천(句踐)을 항복시켰고, 패한 구천은 쓸개를 맛보며 복수를 꾀하여 다시 부차를 패배시킨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으뜸아, 꼭히 우리가 아직 맛본 적 없는 곰의 쓸개가 아니더라도, 조금 전에 네가 맛보았듯, 소태나무도 정말 쓰지 않던?”

  녀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를 더 보탠다.

  “한아버지, 엄마는 으뜸이 젖떼기에 고생을 하였겠지만, 그래도 으뜸이는 소젖을 먹고 자란 그 많은 ‘뿔 달린 소새끼’들과 달리, ‘온유한 사람새끼’라서 무척 행복한 걸. 으뜸이는 엄마의 젖가슴에 묻혀 사랑으로 자라난 아이이니까.”

  이 외할애비는 조금은 앞질러 나간 외손주녀석의 말이 다소 맘에 걸리기는 하지만, 소태처럼 쓰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어려운 여건에도 녀석한테 모유를 먹여 키운 큰딸 ‘현지’가 갸륵하다.

  또 다시 어둠은 산골 외딴 농막에 찾아들고, 멀리에 있는 으뜸이 에미가 보고싶기도 하고고... .


  120.

  어느새 나의 이야기는 제 120화에까지 이르렀다. 머리를 짜내 계속 이 시리즈물 이어갈 요량이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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