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일생

2021.01.11 02:14

전용창 조회 수: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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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일생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용창












“아빠, 아빠?”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아빠’라고 정답게 부른다. 나는 어린 시절에 아빠라는 이름을 한 번도 부르지 못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이미 불혹의 나이도 지난 5남매의 가장이었다. 아버지의 성품이 엄격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에는 우리 또래 누구나 아빠라고 부르지 못 했다. 아빠라고 부르면 버릇없는 자식이라 손가락질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보다 아빠라고 불러주면 좋다. 딸도 출가 전에는 아빠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래도 막내는 아직도 아빠라고 부르니 더 정겹다. 아빠라고 부르면 친근감이 느껴지는데 아버지는 왠지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 칠순이 지나서야 새삼스럽게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나는 「꽃밭에서」라는 동요를 하모니카로 부른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






아버지는 농사일에 바빠서 한가로이 꽃밭을 가꿀 시간이 없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르지 못했겠지. 아버지 산소에 가면 한 번씩 ‘아빠’라고 불러본다. 전에는 어머니만 ‘엄마’라고 불렀는데 이제서야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아버지들이 외롭게 살아오신 것 같아서일까?

나도 때로는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아내는 딸들과 자주 통화도 하고 메시지도 주고받는데 나에게는 뜸하다. 더구나 코로나 사태로 갇힌 몸이 되니 더욱 쓸쓸한 나날이 이어진다. 아빠의 삶은 어떠한 삶이었던가? 언젠가 T.V 동물의 왕국에서 그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동물들은 거의 다 ‘모계사회’였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도 모계사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서글픈 생각이 든다. 그때의 장면을 시 한 수로 담아보았다.






아빠의 일생 (1)






숫 사자 아빠, 초원의 제왕 / 새끼가 일 년 되니 /

엄마 암사자 아빠를 멀리하네 / 어느 날 아빠 숫 사자 /

침입자 숫 사자와 결투하는데 / 엄마와 새끼는 보고만 있네 /

싸움에 진 아빠 숫 사자 / 눈물을 삼키며 광야로 떠나네 /






아빠의 일생 (2)






하이에나 가족 서열은 /

엄마, 큰딸, 둘째딸, 이모, 아들은 5순위 /

아빠는 꼴찌 /

아빠는, 엄마 DNA 없다고 /

구박받고 / 숨죽이며 사네 /






아빠의 일생 (3)






아빠 바지랑대 / 엄마 보금자리 /

행복했던 우리 가족 / 아빠 힘 빠지니 /

자식들 아빠 모른 척하네 / 그래도 아직은 /

뒷방 대장이라며 / 큰기침하며 오가네 /






한때는 바지랑대처럼, 버팀목처럼, 가정을 지키고 이끌었다. 그렇게 고생한 세월이 애환도 많았지만, 건강하게 자라가는 자식들을 바라보면 고생도 행복했다. 자식들이 출가한 뒤 힘이 빠지고, 아픈 곳만 생기고, 경제력도 약해지니 숫 사자처럼, 아빠 하이에나처럼 무시당하고 사는 게 아빠의 인생인가? 가시고기를 봐라. 부성애가 애절하다. 암컷은 산란만 하고 떠나버린다. 그러면 수컷은 날밤을 가리지 않고 지느러미를 흔들어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는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을 위하여는 자신의 몸까지 새끼들에게 먹잇감으로 내놓는다. 이보다 더한 사랑이 어디 있을까? 그런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다.



“아버지, 노년에 외로우셨지요?” "한 번쯤 '아빠라 불러라.'고 하시지 그랬어요? 저도 외로운 때가 많아요."

신축년 새해도 열흘이 지났다. 코로나도 종식된다고 하니 부픈 마음으로 새해 청사진을 그려보았다. 그런데 아내는 싸늘한 표정이다. 얼마 전 성탄절에도 예쁜 트리를 베란다에 만들어 놓았는데. 지금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아내의 마음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일은 전에도 있었다. 우리 부부는 토라지면 마음의 평정이 올 때까지 묵언으로 대한다. 그럴 때마다, 나를 만난 것을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다른 사람의 삶과 비교하지는 않는지. 이제는 손녀도 있으니 아내와 어머니에서 인자하신 할머니 모습으로 바뀌기를 바라는데, 꿈 많던 여고 시절을 떠올리고 있나보다. 가족이 무탈함에 감사하며 이렇게 글이라도 쓰며 분노를 달래는 나의 마음을 왜 몰라줄까?

“아버지, 아버지는 속상하시면 사랑방에서 일꾼들이랑 새끼를 꼬고 계셨지요?”

아버지를 떠올리다가도 이내 아내에게 다가간다.



“여보? 내가 언제나 철이 들지 모른다던 지난날 당신의 탄식을 이제야 알 듯하네요. 허구한 날 친구 좋아 싸돌아다니며 젊은 시절은 밖에서 보내고, 늘그막에 철이 들어 방구석에 있는 나를 보면 화가 많이 나겠지요? 그래도 당신이 웃으면 온 가족이 기쁘고, 당신이 화내면 집안에 먹구름이 낀답니다. 천국을 지옥처럼 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옥도 천국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고 하잖아요? 어서 상한 마음을 훌훌 털고 남은 생애 소중하게 삽시다.”

그 옛날 늠름했던 해병대 군인아저씨 모습은 어디로 가고 꽁지 빠진 닭처럼 구석을 찾는 모습이 정녕 지금의 내 모습이란 말인가?

(2021.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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