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연식 수필집 발문

2021.01.12 07:21

김학 조회 수:1


img76.gif

<구연식 수필집 발문>

노 교육자의 수필 사랑 이야기
-구연식 첫수필집 『그리움을 담아서』출간에 부쳐-

三溪 金 鶴(수필가, 신아문예대학 지도교수)


1. 구연식과 수필의 만남

學林 구연식은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온 분이다. 學林 구연식은 전주 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조선대학교 법정대 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직의 길에 들어서서 무려 41년이나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2010년 2월 25일 군산여자고등학교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에는 대안학교인 익산 무궁화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學林 구연식은 1947년 11월 26일 익산시 왕궁면 부상천마을에서 능성구씨 24세손으로 태어났다. 능성구씨 아버지 구봉증과 은진송씨 어머니 송병순 사이 2남5녀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또 學林 구연식은 아내 평강채씨 채희순과의 사이에 2녀1남을 낳았는데 지금은 모두가 가정을 이루었다.
아들 내외는 중등학교 영어교사로 대를 이어 교직에 몸담고 있고, 큰사위는 국세청에, 작은사위는 전기안전공사에 근무하고 있다.
學林 구연식은 교직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9년 만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에 등록하여 수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2년 동안 매주 한 편씩 수필을 써서 첨삭지도를 받았다. 부지런히 습작활동을 하더니 마침내 2019년 8월 격월간『수필시대』에서「나의 골동품」이란 수필로 신인상을 수상하여 당당히 수필가로 등단했다. 學林 구연식은 마침내 첫 수필집 『그리움을 담아서』를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學林 구연식은 지금까지 120여 편의 수필을 썼는데 그 중에서 60여 편의 수필을 골라 첫 수필집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學林 구연식은 비록 늦게 수필을 만났지만 수필쓰기에 정진하다 보니 지금은 문우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2. 구연식의 수필 들여다보기

웃음과 칭찬은 사람만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무기이다. 이 두 가지를 잘 활용하면 세상살이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간난아이는 하루 평균 3백 번을 웃는데 어른이 되면 17번밖에 웃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순수성을 잃었기에 웃을 일이 줄어든 탓이리라.
‘웃으면 복이 온다.’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웃음과 관련된 속담도 많다. 모름지기 이 두 가지 무기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야 더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고, 그만큼 더 좋은 글을 쓸 자료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學林 구연식의 등단 수필 「나의 골동품」부터 살펴보자. 學林 구연식은 참으로 효자다. 대학시절 고학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부모님 방에 괘종시계를 사다가 걸어드렸다고 한다. 부모님도 얼마나 애지중지 하셨을까? 세월이 흐른 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부모님이 사시던 그 집에 동생이 살게 되었다. 그런데 그 동생이 집을 수리하느라 부모님이 쓰시던 살림도구들을 비닐하우스에 모아두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화자는 그 비닐하우스에 들러 살펴보다가 벽시계 소리를 들었다. 화자는 그 벽시계를 찾아 승용차에 싣고 자기 아파트로 돌아와서 서재 벽에 걸어놓게 되었다.

괘종시계는 나에게는 대학 시절 청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진리를 탐구하고 세상과 자신과 싸우면서 끊임없이 정진했던 초침과 같은 의미였고, 부모님에게는 객지에 있지만 늘 부모님을 기대와 희망으로 지켜드리겠다는 큰아들의 상징물이었다. 그 시계가 시골의 부모님 안방에서 도시 아파트 나의 서재로 옮겨졌다. 괘종시계는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을 때 시계추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생전 부모님의 얼굴이 움직이는 것 같아 그저 좋기만 하다.
「나의 골동품」중에서

이 한 편의 수필을 읽어보면 學林 구연식이 얼마나 효자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學林 구연식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분들이 생전에 쓰시던 절구, 국수틀, 다듬잇돌, 방망이, 홍두깨, 미싱, 화로, 길쌈도구, 되, 말, 저울, 가마니 바디, 호미 등을 모두 아파트로 옮겨놓고 애지중지 보관하다 보니 그의 아파트는 작은 박물관이 되었단다.
요즘 단독주택에 살다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 옛날 가구들을 다 버리고 가는 게 예사인데 學林 구연식은 반대로 옛날 살던 단독주택에서 살림도구들을 아파트로 옮겼으니 그거야말로 효심(孝心)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수필은 작가와 독자의 힘겨루기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 펼쳐지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이야기다. 수필가는 모름지기 독자의 심리상태를 예상하고 그에 대처하면서 작품을 빚어야 한다. 읽을거리가 푸짐한 오늘날에는 독자가 겨자씨 같은 작가의 작은 실수만 있어도 읽던 책을 금방 덮어버리고 만다. 작가는 독자의 그런 심리상태를 파악해야 하고, 독자들에게 그런 빌미를 주지 않게 작품을 빚어야 한다는 뜻이다. 독자가 처음부터 작가에게 끌려오도록 유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편의 작품을 다 읽은 뒤에 독자가 머리를 끄덕이거나 무릎을 치며 공감의 미소를 자아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거기까지가 수필가의 몫일 것이다.

아기가 젖을 달라고 보챌 때 외손자의 경우는 ‘어미젖 좀 그만 뜯어먹어라’하고, 친손자의 경우는 ‘어미야, 아기 젖 좀 주어라’ 한다. 딸과 며느리의 차이에서 오는 우리네 가족문화의 잘못된 폐습이다. 그러나 굳이 할미꽃의 전설을 말하지 않아도 막내딸에 대한 친정 엄마의 애틋한 사랑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막내딸과 외손자」서두

딸과 며느리, 외손자와 친손자를 대하는 데는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지만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심정적 거리라 할 수 있으리라. 수필가라면 ‘근사하게 늙어가는 법 10가지’를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① 호기심을 가져라
② 취미를 만들어라
③ 모임에 참석하라
⑷ 유머감각을 키워라
⑸ 메모습관을 가져라
⑹ 친구를 사귀어라
⑺ 연애를 즐겨라
⑻ 여행을 떠나라
⑼ 멋 내는 법을 배워라
⑽ 매사에 감동하라

이 열 가지를 잘 알아두면 좋은 수필 소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좋은 문학이 된다는 금아 피천득 선생의 말씀의 의미를 되새겨 볼 일이다,
문학은 체험의 재구성이라고 했다 특히 수필은 체험 자체가 가장 내세울 만한 강점이다. 그 체험에 의미부여란 양념이 제대로 버무려지지 않으면 수필로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전주 용산다리를 건널 때면」이란 작품 역시 작가의 체험담이다.

언젠가 나와 어머니는 용산다리 시냇가까지 일부터 걸어 내려갔다. 어머니는 그 옛날 빨래터를 찾아내시고 시냇물이 불어서 내가 둥둥 떠내려갔던 장소도 손가락으로 가리키셨다. 어머니는 나를 살려준 그 은인을 알 수 없으니 정월 대보름 때 월천공덕(越川功德)의 섶 다리를 이곳에 놓았으면 하시기에 아무리 마땅한 장소를 찾아봐도 하천 정비 사업으로 하천은 더 넓고 깊어져서 섶 다리는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마음의 섶 다리만 놓고 60여 년 전의 고마운 아저씨를 생각하며 어머니를 부축하여 다시 하천 제방으로 올라왔다.
「전주 용산다리를 건널 때면」중에서

學林 구연식은 어렸을 때 빨래하러 용산다리 밑을 찾던 어머니를 따라가 냇물에서 놀다가 물에 빠져 목숨을 잃을 번한 일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때 어떤 젊은이가 구해주었는데 화자의 어머니는 당황한 나머지 그 청년에개 고맙다는 감사인사조차 못한 걸 후회하며 화자를 데리고 다시 그 곳으로 찾아가 설명을 해준 것이다. 화자 역시 그 생명의 은인에게 얼마나 고맙겠는가?
우주만물이 다 수필의 소재라고 했다. 양주동 박사 같은 이는 우수마발(牛溲馬勃) 즉 소 오줌이나 말똥 같은 하찮은 것도 다 수필의 소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금은보화 같이 귀중한 것만 수필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란 뜻이다.

내 지갑 한쪽에는 꼬깃꼬깃 접은 만 원 권 한 장이 벌써 15년째 부적처럼 지키고 있다. 생전에 어머니가 세뱃돈으로 주신 만 원 권 중 한 장이다. 그간 지갑은 서너 번 새것으로 바꾸었지만 지갑지킴이 만 원 권은 그대로다. 설날 아침 자손들의 세배를 받고 특히 귀엽고 예쁜 손자들의 손에 세뱃돈을 나누어 주는 기쁨은 그렇게도 흐뭇하다.
「어머니의 세뱃돈」서두

어머니가 주신 세뱃돈 만 원 권 한 장을 15년 동안이나 보관하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學林 구연식 같은 효자가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알베레스(R. M. Alberes, 1921~)는 『20세기 문학의 총 결산』이라는 저서에서 ‘수필이란 지성을 바탕으로 한 정서적, 신비적, 환상적 이미지로 쓰인 글이다.’라고 했다. 또 김광섭은 ‘인간미를 보여 줄 흥미나 자질을 갖지 못한 사람은 평론이나 소설은 쓸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수필은 쓸 수 없다.’고 했다.
수필은 체험의 문학이기 때문에 수필가의 다양한 체험은 다채로운 수필을 빚을 수 있는 원천이 될 것이다. 수필이란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문학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모름지기 수필가라면 육안(肉眼)으로 본 것만을 전부인 양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심안(心眼)으로 헤아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다. 좋은 수필을 쓰려면 잡학박사가 되라고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버지는 날씨가 좋고 시간이 있을 때마다 자식 손자가 먹을 수 있는 푸성귀나 오이, 호박 그리고 감자 등을 수시로 실어다 놓고 가셨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 아버지가 저희들을 위해서 구경도 오시고, 이것저것 갖다 주시는 것은 감사하고 좋은데 오가실 때 도로가 위험하니, 자전거는 타지 마시고 버스로 오시라고 했다. 그리고 남이 알면 아들며느리가 공무원이라면서 늙은 아버지 차비를 안 드려서 익산에서 군산까지 자전거로 다닌다고 할 게 아니냐고 했다. 아버지는 집에서 금마 버스정류소까지 짐을 들고 걸어가서 한참 기다리다가 군산 가는 버스를 타고, 군산 정류장에서 너희 집까지 걸어가면 그 시간이 그 시간이라고 하셨다. 결국 나와 아내의 설득으로 아버지는 짐바리 자전거 대신 버스로 오셨다. 내가 아버지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하여 서운해 하셨는지 자전거로 오시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아버지의 짐바리 자전거」중에서

學林 구연식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고향 집에 가면 아버지 등멱을 시켜드리듯 그 낡은 짐바리 자전거를 꺼내 기름걸레로 깨끗이 닦아놓곤 했었다고 회고한다.
수필가는 세 가지 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첫째는 자기를 보는 눈, 둘째는 남을 보는 눈, 셋째는 세상을 보는 눈을 일컫는다. 이 세 가지 눈만 가지고 있으면 수필의 소재를 찾는 일은 식은 죽 먹기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學林 구연식은 정년퇴직을 한 뒤 여느 퇴직자들과 마찬가지로 소일거리를 찾아 서예를 배우게 되었다.

공직에서 정년퇴직을 한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퇴임하던 해 여름부터 묵향(墨香)_에 취해 10년째 먹을 갈면서 거칠고 들뜬 인격을 다듬고 억누르며 하얀 한지에 한 획 한 획 글씨를 써 내려간다. 그러나 아직은 인격수양이 미천한지 글씨는 삐뚤빼뚤 들쑥날쑥하여 지도하시는 서예실 원장님과 문하생들에게 나의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웠다. 재능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도 선천적 끼가 없으면 안 된다고 자기 방어적 모순된 푸념만 늘어놓다 보니 소경 개천만 나무라는 격이다.
「묵향에 추치해 10년」서두

꾸준히 서예에 정진하다 보니 지금은 어느 정도 서예에도 일가를 이루게 되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이 있어서 그런지 무엇이든 10년쯤 배우고 나면 다른 분야로 옮기곤 하는 게 요즘 세태이다. 그런데 學林 구연식은 서예 지도 선생에게 이렇게 하소연 했다니 얼마나 믿음직한가?

“원장 선생님, 저는 10년 가지고는 어림없어요. 계속 지도해 주세요.”

습관이나 고정관념이란 굳은살을 떼어내면 늘 보던 사물들도 새롭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것이 바로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기인 것이다. 수필가라면 누구나 귀담아들어야 할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두보(杜甫)는 책을 만 권을 읽으면 붓에 귀신이 달린 듯 글이 써진다고 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만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러나 유능한 서예가나 수필가가 되려면 두보의 충고대로 책을 많이 읽어야 할 것이다. 독서를 통한 간접 체험이 바로 서예와 수필쓰기의 밑거름이 될 테니 말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의 도서관이었다. 하버드대학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라고 한 세계적인 부자 발게이츠의 이 말을 곰곰 음미해 볼 일이다. 이거야말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늘은 계곡의 마실 길을 따라 올라가기로 했다. 그 많던 낙엽은 모두 시몬이 밟고 지나갔는지 나뭇잎은 닳아서 없고 잎자루와 잎맥만 생선가시처럼 남아있다. 고운님을 떠나보낸 상사화는 설움이 복받쳤는지 푸르름으로 무장을 하고 겨울을 견디면서 내년 가을까지 고운님을 기다리며 부엉이 소리를 위안삼아 긴긴밤을 지새운단다.
「늦가을 산사에서」중에서

자금은 인간 100세 시대라지만 그래도 學林 구연식 수필가가 고희를 넘긴 뒤 첫 수필집을 출간한 것은 결코 빠른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젊어서 수필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에 견주면 뒤늦은 출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가버린 세월을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구양수(歐陽脩)의 삼다설(三多說)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그 삼다설에서 길을 찾아야 하리라 생각한다.
참고로 지금 80대 후반이신 김길남 수필가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어르신은 70대 중반에 수필공부를 시작하시더니 매주 한 편씩 어김없이 수필을 쓰셨다. 그러더니 등단한 뒤 해마다 수필집을 한 권씩 출간하셨다. 어느새 9권의 수필집을 출간하셨다. 김길남 어르신은 문우들이 보내주는 각종 문예지나 동인지 그리고 수필집을 받으면 모두 꼼꼼히 읽는다고 하셨다. 심지어는 메일로 수필을 보내주면 그것조차도 빠짐없이 다 읽는다고 하셨다. 그렇게 그분처럼 열심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수필에 매진하니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學林 구연식 선생도 그 어르신에게서 한 수 배우면 어떨까 싶다.

삼례 한내는 전주천과 모악산 계곡의 삼천천이 합류한 만경강의 본류이다. 만경강은 전ㄱ구 최대 호남평야의 젖줄로 어머니 역할을 하다가 서해로 빠져나간다. 비비정 앞 백사장에는 기러기 떼가 살포시 내려앉는다는 비비낙안(飛飛落雁)의 풍광은 풍류객들에게 회자된 단어로 그래서 완산8경의 하나이다. 비비정 앞 만경강은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흘러가니 해돋이와 해넘이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그래서 아침 시작의 희망과 하루 반성의 자숙(自肅)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자리다.
「비비정 예찬」중에서

수필의 독자는 한문이나 번역문 투의 수필문장을 좋아하지 않는다. 문장이 감성적이며 부드러워야 읽고 싶어 한다. 수필가의 글을 읽은 독자가 머리를 끄덕이며 공감하면 그건 좋은 수필이고, 고개를 갸웃거리면 그건 좋지 않은 수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수필을 쓸 때 한자말이나 외래어를 가급적이면 활용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나는 비비정 앞 만경강의 겨울을 유난히 좋아한다. 언제인가 중국 연변 용성 빙문 때 비암산 정상에서 일송정(一松亭)을 가슴에 담아 온 적이 있다. 만경강이 해란강이 되고 비비정 뒤 소나무가 일송정이 되었다. 흰 눈이 갈대밭에 내려앉으면 갈대꽃인지 눈인지 쉽게 구분이 안 된다. 눈과 갈대꽃은 부등켜 안은 연인처럼 바스락거리면서 움직인다. 이때 나의 머릿속에는 돌연 그 옛날 선구자들이 조국과 민족을 위해 갈대밭을 헤쳐가며 말달리던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말의 입김에서 내뿜는 열기는 얼어붙은 갈대밭을 녹여주고, 만리타향에서 서러운 민족을 보듬어 준다. 말의 갈기는 민족의 기상을 보는 듯하고 근육은 미래의 듬직함을 갖게 한다. 나도 그들의 대열에 끼어 어느 사이 해란강을 달리고 있다.
「비비정 예찬」중에서

만경강에서 만주의 해란강을 떠올리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고 만주 벌판을 누비던 선구자들을 생각하는 작가의 상상력은 압권이다. 學林 구연식 수필가가 비비정을 즐겨 찾는 것은 바로 그런 연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3. 學林 구연식 수필가의 앞날을 위하여

아나톨 프랑스는 수필문학이 미래문학으로서 온 문예를 주름잡을 날도 멀지 않았다고 했다. 수필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수필은 독자를 가르치는 글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하는 글이어야 한다. 이 점을 꼭 명심하기 바란다.
중국의 후주(胡適) 박사는 그의 스승으로부터 문학수업을 받을 때 관찰력을 가르고자 이를 손바닥에 놓고 며칠 동안 관찰한 나머지 이의 혈관이 보이고 숨 쉬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한다. 이런 훈련이 생활화 되어야 좋은 수필을 빚을 수 있을 것이다.
수필가는 특히 자기를 보는 눈, 남을 보는 눈, 세상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것은 좋은 수필소재를 찾는데 절대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편 한 편의 수필을 빚을 때 수필쓰기의 길이만을 중요시하지 말고 내용의 형상화와 의미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수필이란 관조의 눈으로 본 것을 철학의 체로 걸러서 산문으로 쓴 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學林 구연식 수필가의 첫 수필집『그리움을 담아서』출간을 축하하며 꾸준히 제2, 제3의 수필집이 잇따라 출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댓글 0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00MB (허용 확장자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227 계단 김세명 2021.01.14 1
2226 어머니와 솥뚜껑 구연식 2021.01.14 1
2225 합평회 유감 전용창 2021.01.14 3
2224 치매, 그 몹쓸 놈 안선숙 2021.01.14 2
2223 녹슨 주전자 안선숙 2021.01.13 3
2222 긍정적인 삶 김길남 2021.01.13 1
2221 산타의 선물 이우철 2021.01.12 1
2220 희수 유감 김세명 2021.01.12 1
2219 내가 이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인철 2021.01.12 1
» 구연식 수필집 발문 김학 2021.01.12 1
2217 제 눈의 들보부터 살펴라 두루미 2021.01.11 1
2216 2020년 우리 집 10대 뉴스 하광호 2021.01.11 1
2215 한국말을한국말답게 고도원 2021.01.11 1
2214 아빠의 일생 전용창 2021.01.11 4
2213 나무난로 앞에서 윤근택 2021.01.11 1
2212 백두산온천 그리고 한하운의 금강산 온천 서호련 2021.01.10 4
2211 노래가 시대를 바꾸고 치유한다 고도원 2021.01.10 1
2210 겨울 나들이 이진숙 2021.01.10 2
2209 꿈을 꾼 후에 윤근택 2021.01.09 2
2208 코로나19 속에 맞는 성탄절 전용창 2021.01.0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