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받으러 가는 시간

2021.08.16 17:42

노기제 조회 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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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9                                           급식 받으러 가는 시간

 

 

                                                                                                    설촌

 

 

   “나랑 어디 좀 가실래요?”

  어느 학교에서 급식을 주는데 밥맛없을 때 요긴하게 잘 먹는다며 같이 가잔다. 급식이라면 저소득층들이 대상이다. 해당 사항 없는 내가 가서 가난한 척 하라는 줄 알고 안 가겠다니까 그런 거 아니란다.

   차편이 필요한 듯해서 더 묻지 않고 태웠다.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불편 없이 생활하는 옛날 교우다. 그리 멀지도 않고 차에서 내리고 줄을 서고 그런 절차도 없이 드라이브 스루다. 필요한 개수만 말하면 테이블위에 놓아주고 옆자리에 탄 집사님이 내려서 뒷좌석에 싣고 빠져나온다. 쉽다. 간단하다. 자격을 묻거나 쓰는 것도 없다.

   이름도 주소도 아무 정보도 묻지 않고 일인분으로 패킹된 봉 다리 원하는대로 준다. 왠지 기분이 좋아 진다. 공짜라서 그런가보다. 내용을 보니 평소 여행 중에 간단하게 사먹던 아침식사를 생각나게 한다. 일회용 우유가 2, 쥬스, 과일, 케이크 한 조각, 베이비 당근, 셀러리, 쿠키, 피자, 치킨 튀김, 미니 햄버거, 등등. 메뉴가 바뀌면서 한 두 끼 먹을 만하다.

   신기하게 새로운 세상을 접한 듯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차려준 밥상으로 한 끼 때울 수 있다. 당연히 배급 받아야 하는 저소득층 몫을 가로챈다는 생각은 기우였다. 급식이 끝나는 시간임에도 수북이 쌓여 남아있는 상태를 보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8시부터 11시까지란다. 어느덧 재미 부치고 자주 간다. 주위에 차편이 없어서 혜택을 못 받는 시니어들이 많다. 아파트 청소하는 라티노들도 엄청 반긴다.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한다. 정부에서 주는 것이라고 매번 강조를 해도, 대신 이렇게 배달 해주니 감사하다며 따뜻함을 내게 준다.

   요즘은 시간이 10시에 끝난다. 내가 바빠졌다. 아침잠이 달아서 늦게 일어나면 자칫 마감 시간을 놓친다. 귀찮은 생각이 들어 그만 끝내려 했다. 한식에 입맛이 젖은 한국인들에겐 잠깐의 외도로 충분하다. 계속 반가운 식단은 아니라 나를 비롯해 한인 이웃들에겐 늦잠 포기하면서 계속 배달할 필요가 없다.

   필리핀 시니어들, 몇 명의 장애인, 라티노 청소부들이 고맙게 받아간다. 애초 그들을 위해 나섰던 건 아니지만 현재 상황이 그들을 위해 계속해야 하는데 자꾸 그만하고 싶어진다. 내게 필요한 것도 아니니 늦잠 포기하면서 이래야 하나? 이게 뭐 큰 봉사라도 된다면 모르겠지만 생색도 안 나는 일, 저들에게 딱히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지 않는가.

   귀찮고, 생색도 안나고, 감사해 하는 것도, 받아가는 그 순간으로 진심이 안 느껴진다. 내게 돌아오는 이익이 전혀 없는데 이걸 계속해야 하나? 늦잠 포기하고 기름값 버리고 시간 낭비하면서 이게 무슨 일이람?

   쓰레기통을 뒤지는 낯선이에게 묻는다.  줄까?  없이 허리를 조아리며 고맙단다.  아하 이런 기쁨이 돌아오기도 하는구나.  색다른 만남을 경험한 후 나의 급식 받으러 가는 행보는 한결 가볍고 행복한 일과로 변한다  

   더자고 싶지만 그만 일어나자. 누군가를 위해서 뭔가 작은 것 하나라도 포기하려 않던 나의 이 속물근성을 버리고 싶다시작을 시킨 집사님은 아직도 가느냐고 의아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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