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하는 문화

2022.05.07 03:37

노기제 조회 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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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9                                                       칭찬하는 문화

                                                                                   설촌

 

  신난다. 누군가를 만날 수 있다. 정깊은 사람과 특별한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가 나를 초청한 것도 아니다. 평상시 보다 좀 일찍 일어나서 서둘러 차를 몰자. 탁 트인 바다가 반겨줄 것이다. 팬더믹으로 만나지 못했던 문우들의 얼굴을 반갑게 볼 것이다. 해변문학제, 바로 그가 나를 기다린다.

  “어머 기제씨, 요즘 신문에서 글 잘 읽고 있어요. 난 기제씨 이름만 봐도 엔돌핀이 막 나와요. 좋은 글 많이 써 주세요.” 항상 밝은 미소에 여고생 투의 애교 넘치는 음성의 광순언니다. 오래전 여행사 통해 래프팅을 함께 하며 만나 찐 독자임을 고백하신 유일한 분이다.

  잘나가는 작가가 되어 보겠다는 꿈은 없다. 언젠가는 독자들에게, 이름 석 자 기억될만한 좋은 작품 남기겠다는 소망도 없다. 뭔가 느끼고 가슴에 간직하고 수시로 덧칠하고 긁어내고 다듬느라 일정치 않은 날들을 투자하면서 숙성시키다가, 견디지 못하고 토해내면 그것으로 곧장 이별이다. 내 글로 누군가의 심장을 건드리고, 감동을 끌어내고, 얇은 한 조각 위로가 되어 주고픈 바람이 짙을 뿐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쟁이로 21년 째다.

  늦지 않게 도착해서 접수하고 명찰을 받아 목에 건다. 얼굴이 씰룩거린다. 웃음을 피우느라 열일한다. 팬더믹 상황이 무색한 지경이다. 백신의 위력이리라.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모두 건강한 모습들이 내게 안도감을 준다. 막연한 그리움이 컸던 세월을 살아온 탓이다.

  빈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진행 석을 향한 세 자리는 이미 주인이 있다. 목소리를 높이 띄우고 눈을 맞추며 먼저 인사를 한다. 아하, 내 찐팬 혜란씨와 동석인 두 분은 초면이다. 검은 마스크가 우아하게 얼굴을 가렸지만 예쁜 눈매가 개성 있어 보이는 혜란씨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한 사람, 낭독하는 나를 지치지도 않고 칭찬해 주는 분이다.

  수년 전 단국대학이 주관한 문학 세미나 첫해에 강의실에서 앞 뒷자리로 앉았던, 같은 수강생이다. 교수님의 강의 중, 교재에 실린 작품을 읽으라는 지시에 원하는 사람 몇이 차례로 읽었던 시간이다. 수 십 명 학생들이 있었고 서너 명이 자발적으로 읽고 강의가 이어졌다. 마이크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일어나서 제대로 자세를 갖추고 낭독을 한 것도 아니다.

  뒷자리에서 쏟아 내는 폭풍 칭찬, 내 낭독에 엄지척을 보이는 분을 만난 기적 같은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 그분의 고운 마음이 내게는 더 감동이었던 기억이다. 가끔 이어진 같은 상황에서 변함없이 주시는 칭찬으로 덩달아 따뜻해지는 내 마음은 다른 누군가를 칭찬하게 한다.

  혜란씨의 폭풍 칭찬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초면의 두 분에게 설명으로 펼쳐진다. 오늘 해변 문학제가 내게 준 깨달음이다. 더 열심히 다른 사람 칭찬할 일을 찾아야 한다. 나도 광순 언니와 혜란씨의 천사 같은 마음을 복사해서 내 가슴에 붙이고, 작은 일에나 큰 일에나, 주위에 함께 걷는 인생 동행인들에게 아끼지 말고 칭찬을 해주자. 칭찬하는 작은 문화를 만들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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