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정치-북(北)소리

2018.01.31 01:34

김학천 조회 수:36

  2차 대전 중에 미국 오케스트라 순회단이 독일군에게 포로가 되었다. 마침 적군 사령관은 음악을 사랑하는 장군으로 이 순회단을 잘 예우하며 많은 연주를 하도록 배려해 준다. 그 와중에 미군 낙오병 둘이 숨어들어오게 되고 이를 찾아내려는 독일 장교와 탈출시키려는 순회 단원들 간의 숨 막히는 작전이 주옥같은 클래식 음악 연주를 배경으로 벌어지는데 결국 탈출은 실패하고 낙오병은 사살된다.

  그러다 패전으로 퇴각 명령을 받자 독일군 장교는 오케스트라 단장을 사살하려 하지만 사령관이 기지를 발휘하여 살려준다. 그리곤 떠나면서 '서로가 편안한 관계로 다시 만날 날'이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음악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마음 앞에서는 너와 나 사이에 어떤 이념도 체제도 쟁점화되지 않는다는 메시지일 게다. '카운터포인터(대위법)'라는 영화 얘기다. 베토벤, 슈베르트, 차이콥스키 등의 대표적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영화였다.

  오래 전에 나온 이 영화가 떠오른 건 평창올림픽에 온다는 북한 관현악단 때문이다. 10년 전 로린 마젤이 뉴욕 필하모닉을 이끌고 평양에서 연주회를 가진 적이 있다. 이때 그의 연주 선곡에 큰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는 '파리의 아메리카인'과 '신세계'를 통해 구시대적 평양 속에 있는 자신을 그리며 북한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길 바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이어진 앙코르곡 '아를의 여인'과 '캔디드'에서는 실패로 끝날 고립된 사회와 자유 없는 지상낙원주의의 허상을 일려 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그는 영화 속의 음악을 아끼던 장군과 단장이 어느 날엔가 불편하지 않은 자유인이 되어 다시 만날 것을 바랐던 것처럼 서로 경계 없이 오가는 그런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음악에는 사람의 혼과 양심을 불러일으키어 사람과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위대한 저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서 누군가의 말처럼 음악은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보고, 죽음 앞에서도 써야 하고, 감옥에서도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음악조차도 가끔은 정치적으로 악용되어 선동의 분위기로 몰아넣는다는 데 있다. 독일의 나치가 그랬듯이 북한 또한 음악이 정치에 철저하게 종속돼 있어서다.

  이제 국제 제전을 앞두고 남과 북이 음악을 통한 새로운 역사의 장을 쓰려고 한다. 이에 따라 북한 예술단 공연에 앞서 현송월(玄松月) 단장이 강릉에 나타나면서 온 언론은 그녀의 외모와 패션에만 치중하는 인상이다. 강릉은 예로부터 달과 소나무 그리고 선비정신으로 이름난 곳이다. 이러한 곳에 소나무(松)에 걸린 검은(玄) 달(月)이 떴다. 

 하지만 강릉에는 절개 굳은 검은 대나무 집(오죽헌)도 있고 금강소나무도 있으며 수호신 범일국사가 지키고 있는 곳이다. '메밀꽃 필 무렵'에 그려진'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마냥 음흉한 속내를 품은 달(月)그림자가 북(北)소리에 맞춰 풍악을 울리려 한다. '북에서 온 미녀 응원단' 화제에 정신 쏟기보단 그들의 가락이 들려줄 의미를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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