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산책하는 기러기

2018.08.20 05:52

서경 조회 수:96

기러기떼.jpg



 3) 동물에 관한 수필 - 산책하는 기러기

 

기러기 떼를 보았다. 나르는 기러기가 아니라, 공원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하고 있는 기러기였다.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만 보던 내가 소요학파처럼 공원에서 유유히 거닐고 있는 기러기 떼를 보는 건 처음이다.

뚝방에서 새벽 달리기 연습을 하고 돌아오던 공원 초입. 오리 뗀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던 내게 옆 친구가 기러기라고 했다. 너무 신기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한참을 지켜보았다.

먹이를 찾아 잔디밭을 쪼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는 녀석도 있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다니는 녀석들을 보며, 기러기는 홀로 나르는 고립의 새가 아니라, 역시 함께 나르는 군집의 아름다운 새라는 생각을 했다.

보다 쾌적한 환경을 찾아 떼 지어 나를 때도 그 나름의 규칙을 정해 V자 대오를 지어 나른다고 한다. 장장 40000 킬로미터를 날아가야 하는 장거리 여행. ‘빨리 갈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갈려면 함께 가라는 교훈을 몸소 보이며 수없이 나래짓 친다.

앞서 가는 기러기는 리더로서 온 몸으로 거센 바람을 맞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간다. 또한, 뒤따라오는 동료 기러기들은 끊임없이 끼럭대며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 준다. 이로 인해, 뒤 따라 오는 기러기들은 71%로의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한다. 서로 돕고 상생하는 모습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더 기러기가 지치면 자리바꿈을 하며 잠시 편안하게 나를 수 있도록 숨쉬기 시간을 준다. 이런 따뜻한 마음 씀은 현명함을 넘어 감동을 준다. 동료 중에 무슨 변고라도 생겨 대오에서 이탈하게 되면 꼭 두 마리가 함께 남아 돌보아 준단다. 절대 홀로 버려두지 않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하다 숨을 거두면 그때 다시 빠른 날갯짓으로 자기들 무리로 찾아간다고 한다.

한참을 서서 지켜 보다 보니, 나도 우리 팀 대오를 이탈한 기러기가 되었다. 우리 팀을 찾아 빛의 속도로달려갔다. 숲 속 그늘 저 멀리 우리 해피 러너스 팀이 보였다. 붉고 노란 유니폼을 입고 모여 있는 우리 팀 대원들이 마치 기러기 떼처럼 보였다.

온몸으로 거센 바람 홀로 맞고 가는 리더 기러기, 윤장균 회장님의 뒷모습이 제일 크게 보인다. 몸풀기 운동을 가르쳐 줄 때면 팍팍 각이 서는 모습도 보기 좋고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온유한 표정도 정스럽다.

난 똑똑하고 칼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보다 언제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를 선호한다. 9인조 배구 경기에 비유한다면, 스파이크를 때리는 스타 공격수보다는 좋은 위치로 공을 보급해 주는 센터 역할이 리더의 소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리더나 나나 우리 모두 티가 있는 진짜 옥이란 점에서 인간관계를 시작하는 거다. 그러노라면, 자연히 불만도 줄게 되고 어지간한 건 수용하게 된다. 무언가 마무리 말을 하고 있는 윤회장의 뒷모습과 다소곳이 경청하고 있는 우리 회원들의 모습이 자못 다사로왔다.

그래, 바로 이 모습이야! 우리가 독불장군으로 홀로 날지 않고 팀을 이루어 함께 날아갈 때, 우리는 더 멀리 쉽게 날아갈 수 있는 기러기 팀이 되는 거야!’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며, 회장님과 봉사 위원을 위시한 모든 임원들에게 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이 일었다. 우리는 이 분들의 수고로 71% 의 에너지를 아끼며 쉽게 달려갈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바로 눈앞에서 기러기 떼를 보고 온 때문일까. 늘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오늘 따라 그 마음이 더욱 진하다.

나도 끊임없이 끼룩대며 응원을 보내주는 후방의 한 마리 기러기가 되리라 다짐해 본다. 다음 주에 있을 크리스탈 레이크 캠핑장 야유회가 무척 기대 된다. 그때 쯤이면, 산책하던 기러기도 떼 지어 날아가고 없으려나.

 

<작품 후기>

 

수필 <산책하는 기러기>는 미 발표작으로 얼마 전에 쓴 작품이다. 사진 몇 장을 찍고 포토 에세이 식으로 쓴 글이다. 나르는 기러기 떼는 보았어도 산책하는 기러기는 처음 보았다. 일요 새벽 달리기 연습을 하고 모임 장소로 되돌아오던 세리토스 공원에서의 일이다. 바로 눈앞에서 공원을 유유히 산책하고 있는 기러기를 보니 정말 신기했다. 처음에는 오린가 싶었는데 모양이 조금 달랐다. 그때 누군가가 기러기라고 귀띔 해 주었다. 요즘 유행이 낯설게 하기라더니, 산책하는 기러기야말로 낯설게 하기를 몸소 보여 준다. 기러기는 우리들의 정서 뿐 만 아니라, 그들의 지혜로운 공동생활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현명한 리더와 순종하며 따르는 기러기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특히, 무리에서 처지는 동료를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며 돌봐준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것으로 퍽 감동적이다. 기러기는 사람들과 꽤나 친화적 동물인지, 가까이 가서 봐도 날아가거나 피하지 않았다. 한참을 미소 지으며 보고 왔다. 저 멀리 숲속 그늘 아래 또 한 무리의 인간 기러기 떼가 보였다. 우리 해피 러너스 클럽 멤버들이었다. “멀리 갈려면 함께 가라와 딱 어울리는 마라톤 클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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