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왕자 친구님

2018.04.10 08:56

서경 조회 수:177

  페이스 북을 열었더니, 친구 대기 명단 중에 영국 해리 왕자가 들어 있었다. 요것 봐라? 요즘 결혼 준비에 바빠 정신 없을 해리가 왜 내 친구 예비 명단에 올라 있나 싶어 흥미로웠다. 설마, 누군가 왕자 신분까지 도용하랴 싶어 기계 오작동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려나. 해리 왕자님이라니 재미있는 일이다. 두 사람 사진을 척 갖다 붙여 놓은 건 그야말로 타임지 커버감이다. 난, 수필감도 하나 건질 겸 시험삼아 친구 수락을 했다.
  아니, 그런데 이건 또 뭐람?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날아 왔다. 영국 왕자 해리라며 안부 인사와 함께 "Where are you from?" 하며 개인 관심사까지 드러낸다. 자동 기계 대답치곤 퍽도 친절하다.
  굳이 내가 기계에 대고 상냥하게 굴 필요가 있나 싶어 그 답은 생략했다. 대신, "넌 지금 결혼 준비로 바쁘지도 않냐?"하고 물었다. 하하.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또 답장이 와 있다.
   "am very busy my lady?" 날 더러 my lady라며 공손하게도 대답한다. 정말 웃긴다. 어디까지 무슨 말로 대답하나 싶어 다시 답장을 보냈다. "넌 도대체 누구냐? 너가 진짜 해리 왕자라면, 어떻게 나한테 이런 메시지를 보낼 수 있지?" 인터넷 연결이 안 좋은지, 아직 내 메시지가 전달되지는 않았다.
  요즘은 SNS시대다. 소통 부재의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 파이프라인 역할을 해 주는 건 좋은데 거기에 따른 폐단도 적잖이 많다. 이중탈을 쓰고 작심하고 여성을 혹은 남성을 농락하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되었다. 남의 이름과 사진까지 쓰며 그것도 모자라 이력서까지 도용한다.
  오래 전 일이지만, 나도 황당한 일을 당했었다. 전혀 경험이 없을 때다. 어느 날,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 요청이 들어 왔다. 록 허드슨 같이 잘 생긴 얼굴에 적십자 소속으로 시리아에서 일하고 있는 의사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이름은 Maxwell.
 영어도 배울 겸, 멀리 있어 만날 일도 없으니 펜팔 친구나 해 주자 싶어 수락했다. 날 어떻게 알았냐고 하니, 하이 스쿨 때 헤어진 친구를 찾다가 페이스 북에서 내 사진을 보았다고 한다. 아름답고 매력적이라 친구 하고 싶었단다.
  외국 사람들이야, 입에 발린 게 칭찬이니 후끈 달아오를 필요도 없다. "여자 사진 믿지 마라, 다 제일 예쁜 사진만 올린다"라는 경고성 멘트를 날렸다. 이 말은 사실이다. 나 역시 얼굴이 논두렁 밭두렁 주름살 투성이라도 사진은 아직 그럴 듯하게 나온다.
  그런데 이 친구. 참, 운도 없었다. 이야기 나눈 지 채 보름도 되지 않아, 똑 같은 사진의 다른 이름을 보았다. 난, 너무도 놀랐다. 매칭 프로그램도 아니고, 서로 생각이나 느낌을 공유하는 페이스 북인데도 이런 사람들이 있는가 싶었다.
  연결 연결해서 들어가 보니, 장장 여섯 명이 다른 이름으로 같은 사진과 같은 경력을 쓰고 있었다. 파헤쳐 보고 싶은 기자 근성이 동했다. 난 나머지 다섯 명도 모두 친구로 수락한 뒤, 여섯 명에게 똑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것이 정녕 네 이름이며 네 진짜 얼굴 사진이 맞냐?"고. 만약, 너가 진짜라면 여러 사람이 네 사진을 다른 이름으로 쓰고 있으니 리포트 하고 아니면 당장 이런 가짜 행세를 멈추라고 했다. 돌아온 답은 다 갖가지였다.
  최초로 친구가 된 맥스웰은 자기가 알아본 결과, 함께 일 하는 동료가 본인 사진을 프랭크란 이름으로 쓰고 있었다고 했다. 자기가 막 화를 냈다며, 곧 프랭크가 사진도 내릴 것이며 나한테 사과 메시지를 보낼 거라고 알려 왔다.
  이 녀석이 누굴 바보로 아나 싶었다. 두 놈이 동일 인물임에 틀림없다. 굳이 원수 질 필요는 없는 것. 너가 워낙 잘 생겨서 그런가 보다 하는 덕담을 해준 뒤, 둘다 바로 차단시켜 버렸다. 다른 두 명은 들켰다 싶었는지 저들 스스로 날 차단시켰다.
  그런데 나머지 두 명은 완전 프로다. 이것들, 한술 더 뜬다. 자기가 진짜라며 바로 영상 통화를 하잔다. 순간, 면상이라도 한 번 볼까 하다가 나의 현실적인 '면상'을 고려하여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한 놈은 나더러 Fake 아니냐며 되물었고, 또 한 녀석은 계속 자기가 장본인임을 확인시키려 노력했다. 둘다 가차없이 차단시켜 버렸다.
  고개가 절로 흔들려진다. 자식들! 걷는 놈 위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위에 붙어가는 놈, 그 위엔 또 쏘는 놈이 있는 걸 모르나 싶었다.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없이 거짓되게 사는 삶. 어느 집 아들들인지 정말 한심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순진한 여성들을 농락하고, 돈까지 갈취하는 인간들. 이름하여, 로맨스 스패머들은 오늘도 인터넷이란 황금 어장에 그물을 쳐 놓고 때를 기다리고 있겠지.
  전문 인력들의 네트 워크인 인스타그램에서 조차 이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한다. 은퇴한 영국의 여교장은 미국 파이낸셜 어드바이저에게  $165,000을 뺏겼다고 했다. 은퇴 자금을 굴려준다고 해서 완전 믿었단다. 요즘은 또 군인들 중에 장군 신분을 위장하여 쓰는 인간도 많다고 한다.
  갖가지 이유를 대어 돈을 보내 달라 하다가 안 먹히면, 아예 돈을 보내 준다며 은행 인포메이션을 보내 달라는 신종 사기군도 판을 친다고 한다. 대부분 비 영어권 중년 여성에 인터넷에 서툰 사람이 중심 타겟이란다.
  나야말로 그들에겐 '필요 충분 조건'을 다 갖춘 고기다. 하지만, 나도 이젠 산전수전, 육해공군전까지 다 치룬 인생 베테랑. 완전 원천 봉쇄가 최선의 방법임을 안다.
  요즘따라, 카카오 스토리를 통해 친구 요청을 해 오는 외국 남자들이 부쩍 많다. 외국 남자들이 우리 한국인들이 즐겨 쓰는 카카오 스토리를 어떻게 알고 들어오는지 모르겠다.  4월 27일자로 카카오 스토리와 토크를 닫는다며 백업을 해 두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무슨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놈의 왕자 친구님. 진짜, 시간이 많으신가 보다. 자동 기계가 하는 일이라 생각한 건 오산인 모양이다. Fake Man인가 보다. 이번엔 어디에 사는 웬 놈일까. "넌 도대체 누구냐?"란 아침 메시지에 또 답장을 보내 왔다.
  "is that your faith?"
  "am I God?"
  "am  a man and human"
  "Indeed, i love mankind"
  어쭈, 이젠 농담까지 하신다. 결혼 준비로 바쁘신 왕자님을 생각해서라도 이쯤에서 내 장난스런 대꾸도 끝내야 할까 보다. "우리 왕자 친구님! 부디 부디 예쁜 아내님과 행복하게 사세요!" 어쩌랴. 수필감 하나 주셨으니, 댕큐 인사라도 드리고 차단하는 게 교양 있는 여성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저러나, 사람 사는 세상은 심심할 여가가 없다. 언제나 얘기거리가 풍성하다. 거짓과 진실이 동거하고 사랑과 미움이 공존하는 세상, 남과 여가 있고 만남과 이별이 끊임없이 웃음과 눈물을 불러오는 세상. 오늘도 해와 달이 공평하게 하루를 반씩 나누어 가지며 이런 세상을 흥미롭게 내려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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