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봄날은 다시 오고

2018.05.01 04:05

서경 조회 수:51

   봄날은 다시 오고.jpg


   어머니 기일이 돌아 왔다. 벌써 여섯 번 째다. 딸과 함께 어머님이 계신 '대한 수목장'으로 향했다.
  돌아가신 분들 이름을 새겨 넣은 합동 비석판이 바뀌었다. 
   일년 사이, 사람 수는 늘어나고 이름 크기는 작아졌다. 위치가 바뀌어 버린 어머님 영문 이름도 겨우 찾았다. SOO YON CHI. 어머니 영전에 꽃 한 송이 바치고 묵념을 올렸다.
  - 어머니, 잘 계시죠?
  -......
  - 어머니, 간호해 드린 댓가로 돌아가시면 따따불로 복 주신다 한 거 잊지 않으셨죠?
  -......
  어머니 앞에만 서면 어린 딸로 돌아가는 나. 돌아가셨어도 옆에 계신 듯 농을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육신의 옷을 벗고 민들레 홀씨 되어 떠나신 어머닌 침묵으로 농을 받아 주신다.  살아 계셨으면, 우리가 이제 오나 저제 오나 하고 3층 창문으로 빼꼼히 내다 보며 기다렸을 어머니. 이제는 가슴으로  만난다.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새들 포롱포롱 날고, 꽃들은 때를 만나 저마다 예쁘게 벙글었다. 푸른 하늘엔 목화솜 구름 미동없이 떠 있고 바람마저 고요하다. 지상의 누구도 어머니의 잠을 방해하지 않는다. 청구서를 보내는 이도 없다. 느릿느릿 흐르는 강 하류처럼 느긋하게 즐기고 계실 영구 안식년. 세상 어머님의 완전 안식은 '눈 감는 날'이다. 
  - 대학만 가면...
  - 결혼만 하면...
  맨날 날만 잡으시던 엄마의 자식  미션은 2012년 4월 26일 새벽녘에야 끝났다. 여든 셋. 생애 첫 비상이요 영원한 안식에로의 첫 나들이었다. 생전에도 자주 함께 하지 못했던 여행을 어머닌 또 홀홀 단신 혼자 떠나셨다. 자식에게 짐 지우지 않으려 늘 '홀로 서기'를 노래하시더니, 마지막 순간에도 '홀로 떠나기'로 마감하셨다. 어쩌면, 노래 부르지 않아도 홀로 왔다 홀로 가는 게 인생이지 싶다.    

   잠시, 감상에 젖는다. 하지만, 가슴 찢어지게  슬프진 않다. 누구나 한번은 가야할 길이요, 맞이해야할 지상의 이별이다. 지금의 내겐, 함께 보낸 마지막 시간만이 아름답게 기억된다.
  - 어머니! 천상에서 영원 안식을 누리소서.
  짧은 기도를 끝내고 손을 들어 천천히 성호를 그었다. 기도를 끝낸 우리는 납골당을 함께 둘러 보았다. 깨끗하게 꾸민 대리석 납골당은 캘리포니아 밝은 햇빛 아래 아름답게 빛난다. 여기 좋다, 저기 좋다 하며 딸과 함께 내 들어갈 자리를 고르며 관광하듯이 구경하고 사진도 찍었다. 가격을 한번 알아보라는 딸에게, 내 발을 가리키며 농을 던졌다.

  - 그래도, 내 그림자 하고 서 있는 여기가 제일 명당자린 거 같은데? 딸아, 여긴 얼말까? 목숨값이 있으니 비싸겠지? 
   딸도 웃고 나도 웃었다. 아무렴. 다이아몬드로 만든 납골당이라 해도 발 붙이고 사는 이 땅만 하랴. 훗날, 이런 농도 다 추억거리가 되겠지.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는다. 자유 의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계획하심에 의해서. 남은 사람은 제 삶의 무게를 견뎌내야 한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있고 감당해야할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늦은 점심 시간. 형이상학적인 삶의 얘기는 잠시 미뤄두기로 하자. 산 사람에겐 먹는 게 급선무다.
  - 어디로 밥 먹으러 갈까?
  어머니를 등 뒤에 남겨 두고 딸과 내가 동시에 물었다. 
  - 중국 음식?
  그동안 식성이 변했나. 딸이 뜬금없이 둘 다 좋아하지 않는 중국 음식을 들먹인다. 
  - 중국 음식은 소화도 안 되고 맛도 별로야!
  무심결에, '소화'라는 말을 뱉고 움찔했다. 어머닌 돌아가시기 일 년 전부터 소화가 안 된다고 하셨다. '노인네라 그런가부다' 했다. 언젠가부터 매운 걸 드시면 속이 안 좋다고도 하셨다. 이번에도, 역시 '나이 들면 다 그런가보다' 생각 했다. 주치의가 어련히 알아서 해 주랴 싶어 걱정하지 않았다. 이십 년 동안, 매달 한번씩 줄기차게 찾아 갔던 의사가 아닌가. 
  그러나, 다른 의사 권유로 위내시경 검사를 받고 나서야 '소화불량'이 아닌 '위암 말기'란 걸 알았다. 연령으로 보나, 시기로 보나 수술은 이미 물 건너 간 일이다. 우리가 바라는 건, 그저 남은 시간 고통없이 편히 가시는 것. 어머니도 갈 때는 누구나 이름 하나 받아간다는 말로 순순이 가슴에 '위암 말기' 명찰을 다셨다.
  마지막 생을 앞둔 분에게는 효도란 것도 별 게 아니었다.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 그것이면 족했다. 병원에서 어머니랑 함께 지낸 마지막 한 달간은 이승에서 보낸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여섯 개의 말없음표 옆에 찍히는 한 점 마침표였다고나 할까. 어머님 가시는 길에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고 혼자 떠나게 하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언제나 흉허물 없이 마음을 터 놓던 유일한 친구, 내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내 어머니여서 좋고, 지금도 그  어머니로부터 힘을 얻는다.
  - 엄마! 사시미 좋아?고기 좋아?"
  중국집은 싫다고 말한 나에게 딸이 다시 물었다. 
  - 나야, 늘 사시미지! 하지만, 양이 많아 다 먹을 수 없으니 손칼국수나 먹으러 가자!"
  - 손칼국수? 
  오래간만에 만난 딸은 거나하게 한 턱 내고 싶었는지 소박한 밥상을 원하는 나에게 저으기 실망한 표정이다.
  - 가자! 갈 사람 가고 산 사람은 묵고 살아야제?
  딸을 재촉해서 '항아리 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도 없이, 딸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시간에 쫒겨,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나온 엄마가 뭐가 예쁘다고 딸은 자꾸만 사진을 찍어댄다. 
  - 야! 엄마 허락없이 쪼글쪼글한 사진 너 페이스 북에 올리지 마라!
  - 엄마는?  그 나이에 늙는 게 내추럴한 거지! 
  - 야, 그래도 엄마는 아직 여자이기를 포기 안 했어! 
  - 아, 오케이, 오케이! 
  딸은 디저트 먹으러 가자며 짐짓 화제를 돌린다. 
  - 오우 케이!
  나도 흔쾌히 딸을 따라 일어섰다. 우린 '파리 바케트'에 들러 커피와 아몬드 크라송까지 디저트로 먹었다. 
  갈 사람은 가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맞다. 바닷물 한 바가지 줄었다고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어머니 잃은 딸이 어디 나 하나 뿐이랴. 배가 부르고 속이 뜻뜻해지니 마음도 느긋해진다.  정호승 시인도 삶은 견뎌내는 거라 했다.
  단, 나는 영혼 불멸을 믿는 신앙인이다. 신앙의 신비와 부활의 소망을 안고 살아가는 거다. 이런 모습의 나를 어머니도 바라시겠지. 아니, 이 세상 먼저 가신 모든 이들이 남은 이들에게 바라는 소망이겠지. 파도는 넘실대고, 갈매기는 창공을 향해 힘차게 차 오른다.
  한 때는, 나도 사랑하는 사람 잃으면 세상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끝나지 않고 무엇 하나 변하지도  않았다. 계절은 어김없이 돌아오고, 꽃들은 피고 질 때를 잊는 법이 없다. 연분홍 꽃바람에 봄날은 가도, 봄날은 흰나비 나래 타고 다시금 돌아 온다. 어머니 기일이면 해마다 반복되는 인생 학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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