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딸의 여행 준비

2020.02.25 10:16

서경 조회 수: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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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생일 기념으로 딸이 유럽 여행을 떠날 거라 한다.
3년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여행 경비를 저축해 왔다고 했다.
먼 길 떠나는 딸에게 응원도 하고 얼마간의 여행 경비를 주고 싶어 딸집에 들렀다.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딸은 페이퍼 웤을 하느라 바빴다.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무리할 회사 일이 있나 보다 하고 눈여겨 보지 않았다.
저녁상을 물리자, 딸이 신나는 표정으로 색색의 여행 파일 지퍼백을 펼쳐 보였다.
그러자, 같이 가지 못해 심술이 낫나.
내가 보기도 전에 잽싸게 티거가 달려와 제 먼저 각 도시를 밟고 간다.
티거가 밟고 간 다섯 개의 지퍼백 표지엔, LONDON, PARIS, VENICE, ROME, BARCELONA라고 적혀 있었다.
이번에 방문할 여행지룰 순서대로 나열하며 보여 준다.
그 안에는 여행지에 대한 모든 정보가 프린트 되어 들어 있었다.
그 지역에 관한 역사적 정보는 물론, 시간별 순서로 어디서 무엇을 보고 거기서 몇 시간 머물며 숙식할 호텔과 식당 이름까지 세세히 적혀 있었다.
특별히 지퍼백 파일로 준비한 이유는 항공권이나 티켓, 예매표 등 현지에 가서 사게될 표나 엽서를 보관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딸이 예전부터 무엇을 하면 철두철미하게 준비하고 티켓 한 장도 다 보관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렇게 준비해도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데 그냥 준비없이 길을 나서면 낭패 보기도 싶고 건성 보고 지나치기도 싶다고 덧붙인다.
사람들은 이런 게 벌써 스트레스라며 고개를 흔드는데, 자기는 리서치하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여행의 일부로  재미있고 설렌다고 한다.
없는 시간을 내서 비싼 경비 들이고 떠나는 만큼 최대한으로 많이 보고 배우고 싶다고 한다.
누군가, ‘여행은 학습’이라더니 이런 애를 두고 하는 말인 성 싶다.
딸은 나랑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나는 ‘여행을 놀러 가는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때문에, 목적지보다 누구랑 같이 가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유서 깊은 고적이나 건물보다 거기에 누가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여행을 자주 다니지도 않지만, 없는 시간 내어 비싼 경비 들여 움직일 바에야 이왕이면 추억이 있거나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곳으로 가길 원한다.
그리고 장기 여행보다는 짧은 여행을 선호한다.
준비 과정이 복잡하지 않고 짐도 많지 않아 가볍게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곳을 가는 것보다 한 두 군데 눌러 앉아 느긋하게 지내길 원한다.
그런데 딸은 여행하길 좋아하고 특히 아트와 히스토리에 관심이 많아 여러 군데 둘러 보고 세세하게 보는 걸 좋아한다.
그 애한테는 모든 게 흥미롭고 신기하고 배울 게 많은 모양이다.
새로운 도시에 대한 동경과 흥미로움으로 눈을 반짝이고 있는 딸 아이를 보면서 넓은 세상 많이 보고 사고의 지평도 더욱 넓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음 장기 여행은 엄마랑 고국 방문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면 뿌리 찾기 여행이란다.
내가 더 늙고 힘들기 전에, 고국 방문을 해서 저가 나서 자란 곳은 물론 엄마와 가족이 살았던 곳을 모두 가 보고 싶단다.
나 죽고 나면 알려줄 사람도 없다고.
그런 여행이라면 의미 있겠다 싶으면서도 은근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딸과 함께 여행 갔다온 친구 말에 의하면 동작 빠르고 열정적인 딸 따라다니느라 생고생하고 왔다고 한다.
나도 그 쪽 날 것같다.
같이 움직이면서 부지런히 다니려면 보통 체력으로는 힘들 것같다.
애들은 나이들면 동작이 굼뜨는 걸 모른다.
부모 나이 든 건 모르고, 빨리 움직이는 저들 같은 줄 안다.
나도 왕년엔 ‘여포 창날’ 처럼 빠르다는 소릴 들었지만, 이제는 동작이 상당히 느려졌다.
차에서 내리는 시간만 보더라도 이전과 같지 않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어머니랑 같이 갈 땐 빨리 움직이자고 여러 번 독촉했던 것같다.
건강하고 동작이 빨랐던 엄마만 기억하고 있었다.
내 처지가 되니, 이제사 재촉하던 내게 짜증내던 엄마 마음이 이해된다.
밤 늦도록 짐을 챙기고 다시 점검하고 있는 딸아이를 보며 잠시 엄마 생각에 잠겼다.
엄마랑 여행은커녕, 일상적인 시간도 함께 많이 못보냈다는 사실에 회한이 인다.
후회한들 무엇하나.
이제는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저 천국으로 영원한 나들이 가신 분인 것을.
지금부터라도 딸이 떠나자 하면 마다 않고 떠나야 겠다.
인생은 결국 추억쌓기 아니겠나.
여행이 학습인 딸과 놀기라고 생각하는 엄마의 여행은 제대로 코드가 맞으려는지 모르겠다.
어느 새 밤도 깊었다.
제 인생 열심히 살아 가고 세상 구경도 열심히 하는 딸에게 응원을 보내며 잠자리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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