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향미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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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콩나물 무침

2012.07.04 14:43

최향미 조회 수:734 추천:28

          

 

                                     콩 나 물   무 침


     지난 주말에 LA 를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 마켙에서 장을 봐왔으니 한 이주 정도는 식탁 걱정이 줄어들 것이다. 내가 사는 이곳 시골에도 한국 식품점이 두 곳 있지만 대형 한국 마켙에 길들여져 있는 나를 만족시켜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작은 구멍가게 수준이다. 식료품의 다양성과 신선도 그리고 아직도 적응이 안 되는 높은 가격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해 온지 육년이 되가지만 아직도 한국 식품 구입을 동네 마켙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매번 LA에 다녀 올적 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대형 한국 마켙에 들러 장을 봐온다.  이번에는 욕심내서 오 파운드짜리 콩나물을 사 왔다. 신선하고 싼 가격의 묵직한 콩나물 봉지를 비장한 각오를 하며 들고 왔다.


     동네 미국 마켙에서 구할 수 없는 야채 중에 한 가지가 콩나물이다. 그런데 콩나물로 해 먹을수 있는 한국 음식은 왜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감기 기운으로 몸이 으슬거리면 고춧가루 듬뿍 풀은 콩나물국이 생각나고 고향 친구들이 그리워지면 고추장 쓱쓱 비벼 계란 후라이 하나 얹은 콩나물 비빔밥이 먹고 싶어진다. 아무 때나 해줘도 남편이 잘 먹어주는 굴밥에도 주연인 굴보다 콩나물이 더 많이 들어간다. 상에 내놓기 힘든 신 김치가 콩나물이랑 한바탕 끓여지면 콧물 풀어 대며 먹혀지는 고향의 국으로 변신한다. 또한 홍합이랑 해물들이 찜으로 탄생하려면 콩나물의 무한협조가 필요하다. 콩나물이 끼어드는 한국 음식들이 어디 이것들뿐이랴. 주연인지 조연인지 구분 안 되는 무한 변신과 등장으로 언제나 식탁위에서 환영 받는 것이 콩나물인 것 같다. 하지만 냉장고속에서 할아버지 수염처럼 흰 뿌리를 길러 내면서도 끈질기게 살아주는 당근하고는 판이하게 오래 보관할 수 없는 성질 급한 것이 또 콩나물인 것 같다.


     한 번도 오파운드의 반의반도 음식으로 탄생 시키지 못하고 눈물 줄 줄 흐르는 봉지채 쓰레기통으로 보내 버린 나의 게으름을 이번에는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했다. 일요일에 사온 콩나물의 반의반을 월요일에 홍합 해물찜으로 변신시켰다. 남편과 둘이 식탁에 앉아 ‘콩나물을 더 넣을걸’ 하면서도 아삭한 콩나물과 매콤한 홍합맛에 연신 즐거워했다. 그리고 오늘 수요일, 거사를 치룬다. 큰 찜솥에 그 나머지 콩나물을 모두 쪄 버렸다. 솥에서 꺼내 식힌 콩나물의 일부는 나중에 콩나물 국으로 환생 시키려고 유리 그릇에 담아 놓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큰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콩나물 무침을 하기로 한다. 고소한 콩나물 무침 반찬으로, 또 고추장에 비빈 매콤한 비빔밥을 며칠동안 즐길 생각에 콧노래도 나온다.


     간장도 넣고 고소한 참기름, 달달한 꿀가루도 조금, 깨소금도 솔솔 뿌리고 초록빛 파도 송송 곱게 썰어넣고 마지막으로 사랑의 눈길 한번 날려 주고 일회용 비닐장갑을 꼈다. 밑으로 가라앉은 간장과 윗부분에 걸터앉은 갖은 양념을 속에서 겉으로, 겉에서 속으로 꺼내고 숨기며 조물 조물 무치는데 순간 몇 가락의 콩나물이 무침 그릇에서 휙 튀어나온다. 몇 가닥은 부엌선반에 그리고 몇 가닥은 그릇 가장자리에 심술부리는 아이처럼 축 걸터 자빠져있다. 나는 상큼한 노래까지 콧구멍에 걸려 있었는데 찜솥에서 한바탕 쪄져서 축 늘어진 콩나물 대가리를 보는 순간 ‘ 아니 이것들이...왠 반항! ...’하는 어처구니없는 불쾌감이 올라온다.


     무침 그릇 안에 있는 콩나물들은 어느새 간장물 머금고, 참기름 발려지고, 푸릇푸릇한 파, 군데군데 깨소금까지 찍어 발랐는데 그릇 밖으로 튀어져 나온 몇가닥 콩나물들은 축 쳐지고 아직은 홀딱 벗겨져 파리한 모습이다. 내가 정성들여 양념하고 고루 섞어 맛난 나물로의 변신을 해주고 있는데 이 녀석들은 ‘ 내 몸에 손 대지마 ! ’ 하고 반항하는 것 같다. ‘ 이것들이...그래봐야 너네들은 이미 콩나물도 아냐. 찜 솥에서 푹 쪄져서 이렇게 축 쳐졌쟎아. 까불고들 있어 ’ 하는 괘씸한 마음이 든다. 쓰레기통으로 던져 버릴까 어떻게 할까 잠깐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내 버릴 수가 없다. 녀석들을 집어 들어 그릇 속으로 던져준다. 문득 파리하게 널부러져있는 그 콩나물들이 아직도 어울려 살아내지 못하고있는, 타향살이에 지쳐 버린 내 모습 같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기 때문이다.


     난, 고개 꼿꼿이 치켜들고 혼자 살수있는 예전의 내가 이미 아닌데, 간장은 까매서 싫고 참기름은 미끄러워서 싫고 파는 냄새 나서 싫다고 아직도 투정을 부리고 있다. 이미 혼자서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비릿하게 데쳐진 고개 숙인 콩나물 아닌가. 버무려 지는 걸 반항한들 벌거숭이 혼자로는 이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콩나물하고 놀다가 콩나물한테 한 대 얻어맞는다. 콧등이 자꾸 찡해온다.


    오늘 저녁에는 고추장을 두 숟가락쯤 더 듬뿍 넣고 콩나물이랑 쓱쓱 비벼 먹어야겠다. 너무 매워서 눈물이 찔끔 나면 남편한테 한소리 또 듣겠지. ‘ 미련하게 고추장은 왜 그리 많이 넣어가지구..눈물까지 찔끔거리구...언제 철들래... ’ 라구.

                                                                                                                                                                                                                                  


                                                                                                                                                                                                                            &n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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