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오늘:
1
어제:
1
전체:
320,265

이달의 작가

풀잎 하나도 건드리면 안돼

2017.12.28 14:58

조형숙 조회 수:93

구운 두부와 야채로 늦은 점심을 먹고나니 병든 닭처럼 꼬박 꼬박 졸음이 몰려온다. 운동도 할겸 정신도 차릴겸 반스달 공원을 걸었다. 한 바퀴 두 바퀴 돌 때 마다 눈에 들어오는 나무가 있다. 높이 뻗어 올라간 잘생기고 싱싱한 나무다. 나무는 무릎정도의 높이에 피부가 조금 튀어 나온 것이 도가니뼈를 꼭 닮은 모양을 하고 있다. 볼 때 마다 도가니탕 생각이 난다.


반대 쪽에는 아주 다른 나무가 있다.껍질이 벗겨져 노리끼리하고 매끄러운  속살이 드러나 있다.  마치 허물 벗는 뱀의 알몸을 보는 것 같다. 아직 벗겨지지 못한  허물의 조각이 바람에 흔들리며 매달려 있다. 손으로 살짝 떼내어주었다.보랏빛 자국을 남기고 떨어진 껍질은 힘없이 바람에 굴러 멀리 가버린다.  나무는 아직 그을리지않은 고운 색의 피부를 간직한채 서있다. 


아! 이나무는 껍질을 벗으며 굵어져 가는구나. 햇빛과 바람과 구름과 비를 경험하고 나면 다시 새로운 껍질이 생기고 또 갈라져 바람에 흩어지는 일을 반복하면서 속살이 두꺼워지고 나무는 점점 굵어져 간다.이름도 모르는 나무를 보고 있자니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처럼, 강함과 옥죄임과 부드러움과 자유속에서 생의 나무가 굵어져가고 있다. 함께 떨어지지 못한 나무껍질의 속은 멍든것처럼 잉크색 상처가 남아있다. 상처가 오래 남지 않도록 슬픔은 빨리 떼어내고 잊어야한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어제밤 내린 비로 잔디는 밝은 풀색으로 새 숨을 쉬고 있다. 작고 고른 나무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니 어릴적에 하고 놀던 자치기가 생각났다. 조금 두께가 있는 나무 위에 10센티 정도 되는 짧은 나무토막을  비스듬히 올려놓고 막대로 쳐서 멀리 보내는 놀이다. 날아간 길이를 재어서 멀리 가는 사람이 이긴다. 나도 곧 잘 했었다.

나무 조각들 주위를 뱅 둘러 예쁜 돌들이 모여 있다. 하나 가져갈까 하다가 웃음이 났다. 오래전 어느 시인이 17Mile에 갔을 때 예쁜 돌을 집어 왔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다시 그 돌을 가져다가 어디에서 집었는지도 잊어버린 그 바닷가에 놓고 왔다는 글이 생각나서 였다. 참 아름다운 시인의 마음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나도 death valley의 모래 밭에서 예쁘고 납작한 돌을 하나도 아니고 두개를 주머니에 살짝 넣어 왔다. 작은 병에 오이지를 담아 눌러놓는데 썼다.  시인의 마음을 읽고 난 후에 "어쩌지 나도 다시 가져다 놓아야 하나?" 잠시 생각 뿐 그 힘든 죽음의 계곡을 언제 다시 갈 수 있으려나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소소한 것도 함부로 할 수 없고 작은 자연의 훼손도 허락하지 않는  미국이다. 여행으로 목사님 부부와 피츠모 비치를 구경하고 오는 길에 바다가 너무 아름다워 차를 세우고 내려섰는데 풀 종류가 아주 많았다. 음식 솜씨 좋은 사모님이 "와! 나물 해먹으면 맛있겠네." 하더니 나물거리를 뜯기 시작했다.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검은 차가 한 대 스르르 와서 섰다. 문이 열리고 안에서 제복을 입은 여자가 나오더니 우리 쪽을 조용히 쳐다보고 있다. 표정은 아주 근엄해 보였다. 목사님이 목소리를 낯추어 외쳤다. "그거 빨리 버리지 못해요? 차에 얼른 타요."  조용 조용 살살  한 사람 씩 차에 오르자 자동차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뺑소니를 쳤다. 미국에서는 돌맹이 하나 풀 한포기도 건드리면 안된다는 설명을 듣고나서야  뺑소니의 이유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