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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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패랭이꽃

2018.04.29 14:30

조형숙 조회 수:7727

   패랭이의 꽃말은 정절, 순결한 사랑이다. 조선 시대 김홍도의 그림에도 있었던 패랭이꽃은 산기슭이나 들녁, 바위 틈에서도 강한 생명력으로 살아가는 순박한 꽃이다. 가늘고 연약해 보이는 줄기 마디에 칼 모양의 가는 잎이 마주 나고 무리지어 꽃피어 바람에 흔들릴 때 정겨움이 넘쳐난다. 산 허리, 바위 틈 같이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싹이 나고 꽃을 피우는 패랭이 꽃은 한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작지만 힘찬 꽃이다. 옛날 민초들이 쓰고 다니던 패랭이 모자를 닮아 그런 이름을 붙였나보다. 글 속에서도 소시민을 말 할 때 패랭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패랭이꽃은 아름다운 꽃 옆에 피어 있는 꽃이 얼마나 쓸쓸해 하는지 알고 있나보다. 언제나 멀리 떨어진 산 속 외로운 곳이나 무덤가를 지키고 피어있다. 그러나 송이마다 고고하게 자신을 지킬 줄 안다.

이정아 선생이 귀한 그림 한 장을 선물로 주셨다. 나태주 선생의 그림을 여러장 가지고 계셨는데 그 중에서 패랭이 꽃 그림을 골라 가졌다. 나태주 선생은 훌륭한 시인이기도 하지만 섬세하고 정겨운 화가다. 어찌보면 화가로서의 재능이 더 뛰어난 것 같다. 주로 들판의 풀 꽃을 그렸는데, 연필로 스케치한 그림은 정교한 사진을 보는 듯 했다. 꽃잎과 꽃봉오리, 잎사귀들이 살아 있다. 그림 속의 패랭이 꽃은 하나의 거스러기도 없는 깔끔한 선과 섬세한 꽃 잎 하나 하나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잎새에서 부터 다섯 장의 꽃 잎의 작은 톱니까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디 마디에서 뻗어져 나온 줄기는 가늘고 날렵하다. 예리한 관찰력이 놀랍다. 실물을 보는듯 정확히 있을 곳에 매달려 있는 봉오리도 귀여웠다. 은은한 나무색깔의 액자에 넣어주신 패랭이꽃을 책상 앞 벽에 걸어놓고 아침마다 인사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김동리는 ' 파랑새 뒤쫒다가 들 끝까지 갔었네
                    흙 냄새 나무 빛깔 모두 낯선 황혼인데
                    패랭이꽃 무더기져 피어 있었네.' 라고 노래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 댁의 뒷산에는 간간히 패랭이꽃이 피어 있었다. 소나무 숲이 다정한 곳에서 큰 숨 한 번 쉬며 기지개를 켜고 나면  패랭이꽃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연보라빛, 핑크빛의 패랭이꽃은 아담하고 소탈해 보였다. 어린 내 마음에도 그 꽃은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다. 꽃 잎 둘레의 바퀴는 똘똘해 보여서 좋았다. 지금도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그 언덕에 예쁜 패랭이꽃이 피겠지. 패랭이꽃은 카네이션의 조상이라고도 한다. 카네이션은 엄마가 그리운 사람들의 상징꽃이 되었다.  매년 어머니날이면 가슴에 다는 카네이션은 할머니 댁 뒷산의 패랭이꽃을 생각하게 한다. 따뜻했던 할머니의 사랑이 그리운 엄마와 맞물려 안타까운 사랑의 기억으로 가슴에서 피고 있는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