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오늘:
0
어제:
1
전체:
320,235

이달의 작가

여름

2018.08.25 04:28

조형숙 조회 수:7929

   목청이 터져 피가 나나봐요                                          
   하루 종일 울음이 붉게 들려요
   그래, 여름이 다 가는 모양이다 
   매미 소리의 뒤를 돌아 보시며
   내게 할아버지는 말했더랬지요 

   이 시는 김 수복 시인의 8월이라는 제목의 시다.  

    매미는 11개월마다 허물을 벗고, 그렇게 4번의 허물을 벗는 5년동안 땅 속에서 살다가 땅 위로 올라와 4주를 살고 죽는다고 한다. 피 터지게 우는 울음소리는 상대를 부르는 소리라 한다. 밤에 매미 우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어서일까 매미도 밤에는 잠을 자다가 해가 뜨기를 기다려 울기시작하는 것 같다. 땅에서 올라오는 풋풋한 냄새와 꽃들이 내어주는 달콤한 냄새가 코를 간질이기 시작하면서 매미는 참았던 울음을 시작한다. 여치와 베짱이도 함께 노래를 시작하고 잠자리는 노래에 맞추어 헬리콥터의 시동을 건다. 위로 아래로 비행을 하며 미루나무를 맴돈다. 시골의 대낮은 한가롭고 편안하다. 나무그늘 아래 넓은 평상에는 우물물에 담구었다가 막 꺼내온 수박을 가르고 노란 참외는 그 옆을 나란히 지킨다. 초록의 수박 껍질과 붉은 수박살,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까아만  씨의 조화는 여름에 맞는 크리스마스를 생각하게 한다. 색깔의 조화뿐 아니라 아사삭 느껴지는 달콤한 그 맛을 즐기면서 늘 느끼는 것은 창조주의 더함 없는 오묘한 솜씨다.

    미루나무밑 시원한 평상에 앉으신 할아버지는 모시로 만든 헐렁한 바지와 적삼을 입고 있다. 모시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 갔다가 더운 바람을 가지고 나오면 부채로 멀리 보내신다. 매미가 아직도 악을 쓰며 울고 있다. 높은 나무를 올려다 보시는 할아버지의 눈이 선하다. "너도 많이 덥구나 울어 대는걸 보니" 어느새 돌아가 있는 머리속의 어린 날들. 어린 시절 냇가에서 송사리 잡을 때 부터 들어 왔던 매미소리는 할아버지의 익숙한 여름 노래였을터다. 파랑색 모기장으로 삼각형의 망을 만들어 대나무 끝에 매달았던 잠자리채를 들고 온 들판을 달리던 거침없던 시절이 있었다.  미루 나무밑에서 형의 무등타기에도 익숙했을 터이다. 점차 모든 익숙함이 희미해져가는 나이가 되신 할아버지는 쓸쓸하고 서글픔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다 꿰고 있으신 것이다. 곤충채집 한다고 참 많은 매미를 잡았었다. 게다가 썩지 말라고 알콜에 담구어서 핀까지 꽂아 상자안에 나란히 줄 세웠었다. 가끔은 풍뎅이도 옆에 함께 있었다. 조용하게 웃는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기울어가는 인생의 서글픔도 얼핏 보인다.

   김 수복의 시 창작 문학 강의를 들었다. 금년 4월에 출판된 따끈따끈한 시집 '슬픔이 환해지다'를 교재로 하여 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노동자가 하루 8시간을 근무하듯 하루 8시간을 시에 대한 생각만 했더니 시집이 한권 발간되었다고 그의 열정적인 시를 향한 사랑을 담담하게 말한다. 일상의 언어들로 부터 일탈하여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 문학의 기초라고 강조한다. 언어적 표현에서 부터 벗어나 일상을 새롭게 하려는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며 환경을 바꾸어 보고 내 존재의 의미를 다시 찾아 보는것이 창조의 힘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틀리는 경험이나 문학에서 다루지 않는 소재를 가지고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감각의 능력을 길러야 한다. 자기만의 어휘를 갖도록 노력하라. 있는 말의 이중적 혼란도 새로운 말로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시, 음악, 영화가 함께 융화되는 작금의 시대에 작가가 독특한 새로움을 가지고 있느냐가 문제이지 작품 자체를 좋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있는 곳이 문학이며 문학의 현장속에 주인공은 나다. 시는 일구어 경작하고 가꾸는 것이다. 단어를 보면 설레이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 말들은 그의 문학세계를 표현하는 내용들이다.

  은사시나무 숲속
  매미떼가 목이 터져라 운다.
  은사시나무에는
  목이 없다고
  한탄할 그 어느 목청도 없다고
  은사시나무 목청이 되어서
  목이 터져라 운다.
  사경을 헤매는 줄도 잊은 채

  강의를 마친후 전체톡을 열었다. 시인은 매일 한편의 편지를 보내 주신다. 김 수복 시인의 양재천 편지는 오늘 또 다른 매미를 노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