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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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비숍(Bishop)의 가을을 만나다

2018.08.28 05:44

조형숙 조회 수:8011

    늘 나무 숲이 그립다. 아파트에서 숲의 향수를 느끼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목마르다. 베란다 문을 열고 내다보면 담장 너머로 뻗은 고욤나무가지와 그 열매, 벤자민의 푸른 잎새가 조금의 해갈을 시켜줄 뿐이다. 시간을 만들어 우거진 나무들의 향연을 느끼고 싶었다. 날씨는 맑고 쾌청하다. 창조주가  만들어 주신 최고의 아름답고 귀한 것들을 돌아보고 올 수 있도록, 먼 길 여행의  안전을 기도하고 길을 떠난다.
   
    날씨는 쾌청하다. 14번 free way를 타고 북쪽을 향하여 계속 올라간다. 혼자만 있는듯한 탁 트인 도로를 지나간다. 거무스레한 산아래 평야의 바닥으로 회색더미들이 뒹굴어 다니고 있다. 영화 '황야의 무법자'에서 굴러다니던 그 나무 덩어리 들이다. 나중에 그 것을 텀블위드라고 부르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 북으로 가니 미국에서 가장 높다는 휘트니 산 자락이 멀리 왼 쪽으로 하얗게 만년설을 덮고 나타난다. 잠시 쉬며 샌드위치로 요기하고 자동차도 gas 가득 채워 먹이고 출발한다. 숙소로 가기에는 많이 이른 것 같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Mono Lake(소금기둥호수)까지 올라갔다가 숙소에 늦게 들어가기로 했다. 눈 앞에는 아무 차도 없는 나만의 세상이 끝없이 시야를 즐겁게 하고 스피커의 라틴 음악은 윗몸을 저절로 흔들리게 하고 있다. '기싸스 기싸스 기싸스'.
 
   스카프로 해를 가린 차안은 아늑하고 길 가 언덕은 흰색 가루를 뿌린듯 하얗다. 흰 밭은 염전일까?  사진으로 보았던 Mono Lake의 소금기둥은 근사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많이 더러웠다. Mono가 파리라는 뜻이 있어 더러운 것일까? 소금기가 있는 호수인데도 호수 가장자리는 더러더러 썩어 있고 지저분했다. 사진으로 보는 경치가 더 좋을 때도 있는  것 같다. 물가로 나있는 흙길을 트래킹했다. 비숍으로 내려 오는 길에 아담한 호수를 두 개 더 둘러보고 예약한 숙소에서 허기를 채우고  피곤을 던질 수 있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준비하고 비숍의 단풍을 만나러 다시 북으로 올랐다. 비숍 지역 사우스 레이크(South Lake)의 산자락은 안정되게 딱 붙어있다. 강력 접착제로 붙여 놓은 듯한 나무와 흙과 돌의 모습이다. 깨끗한 도로를 지나 조용한 산동네로 들어가니 듣기만 했던 사시나무의 아름다운 노란 단풍이 살랑거리고 있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다. 기온은  30도(화씨 30도는 섭씨 -1도이다.)로 떨어지고 두꺼운 옷을 다 꺼내 입었는데도 추웠다. 사시나무도 추운지 떨고 있다. 어쩜 그렇게 잎사귀들이 달달 떠는지 '사시나무 떨 듯 한다' 는 말이 바로 실감되었다. 영상을 찍으며 표 안 나게 떠는 남편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혼자 미소 짓는다. 이름이 은사시나무란다.
   
   노란 은사시나무 잎은 아주 얇아 해가 비치면 투명 하여져 더욱 반짝인다. 그 작고 동그란 잎을 보며 많이 닮은 것이 느껴지는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무엇일까?  다녀온 얼마후 정목일 수필가의 '가을 금관'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래 맞아! 맞아! 신라의 금관을 닮아 있었어." 그 동그란 것을 영락이라 하고 그걸 달기 위해 꼬부린 고리를 곡옥이라 부른다했다. 정목일 수필가는 같은 잎을 보며 어떻게 '가을 금관'이라는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놀라웠다. 하나님의 공교하신 솜씨를 다시 한번 감동으로 느끼며 큰숨을 쉬어본다.
 
   비숍의 단풍은 황국이다. 단풍든 나무들 사이로 흐르는 물은 맑고 깨끗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사시던 동네 불당골의 물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파랗고 말간 하늘엔 비행기 한 대가  흰 연기로 줄 그으며 지나간다. North Lake는 사우스에서 내려와 다시 북쪽으로 향하여 산을 돌아 돌아 올라간다. 좁은 외길이다. 길은 왼쪽 산자락에 붙어 있고 오른쪽은 깊은 골짜기 낭떠러지다. 와 너무 무섭다. 그래도 올라야한다. 내려오는 차를 만날때는 심장이 멎어 버린다.숨죽이고 비탈길을 끝까지 다 오르니 주차장이 있고 크고 환한 호수가 나타났다. 호숫가를 빙 둘러친 갈대들의 환영하는 손짓이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어 편안해 보인다.
 
   호수는 처음 볼 때와 한 바퀴 돌아 나올 때의 모습이 틀리다. 같은 호수인데도 보는 방향에 따라 많이 다르게 느껴진다. 어느 쪽에서 보면 진한 블루색이 마치 백두산 천지를 보는 느낌이고, 다른 쪽에서 보면 그린색의 물이 되고, 은빛 색깔도 된다. 호수는 그대로인데 보는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같은 사람을 두고도 보는 사람쪽에서 자기 기준으로 이렇게, 저렇게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아름답고 좋은 면만 보는 사람, 편견없는 사람이고 싶다. 호수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은 오르는 길보다 좀 수월해진다. 왜냐하면, 이 위험한 고비길이 끝나는 지점을 알고 있기때문이다. 사람이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조금은 편안한 삶이 될 것 같은데 인생은 미지의 세계로 가는 것이라 늘 조심 된다. 산길이 끝나면 아스팔트로 된 외길이지만 좀 편한 길이 나온다. 외길을 지나 넓은 주차장에 도착하니 마음이 안도로 내려앉는다. 빵빵하게 터질 듯 부풀었던 초코파이 봉지도 제 모양으로 돌아왔다. 
 
  이 글은 미주문학 2019년 봄호에 실린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