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숙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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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Itzhak Perlman의 연주

2019.01.22 04:05

조형숙 조회 수:39

    Itzhak Perlman의 바이올린 연주가 있는 날이다. 좋은 연주마다 딸이 미리 예매해 두어 함께 하는 행복을 갖는다. 오늘의 연주를 가슴 설레이며 오래 동안 기다렸다. 디즈니홀 안에는 빈 좌석이 없이 꽉 차 있었고  우리 좌석은 무대 뒷쪽 제일 꼭대기였는데 연주자의 무대는 한참 내려다 보이는 아래에 있었다. 그래도 같은 장소에서 바이올린을 감상할 수 있는 경이로움으로 행복했다. 집에서 이미 Perlman의 1973년 연주를 듣고 왔다.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  언제나 가슴이 기쁨으로 저려온다. 연주회장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는 음악 애호가들의 조심스러움으로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무대에는 오케스트라도 없고 합창도 없이 그랜드 피아노 한 대만 오롯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월트 디즈니 컨서트홀의 건축은 월트 디즈니를 기리기 위해 부인 릴리안 디즈니가 5천만불을 시에 기증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1년 후인 2003년 10월에 드디어 완성되었다.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설계로 은빛의 장미가 피는 형상을 하고 있는 외관은 남가주의 명물이다. 홀 내부는 일본의 음향학자인 야스히사 도요타가 설계하여 완벽한 음향을 자랑한다. 연주회 중 누군가 떨어트리는 종이 한장의 소리나 볼펜 구르는소리가 무대에까지 확실하게 들린다 한다. 2400개의 좌석은 붉은 황색 계통의 비로도 천으로 씌워졌고 같은 색의 바닥과 어우러져 무척 화려하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앞 좌석과의 거리가 좁아서 맨 끝 자리의 사람이 들어가려면 앉았던 사람들이 다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웰컴 하면서 다 일어나 길을 터준다. 좌석은 사방에서 무대를 볼 수 있는 원형경기장을 연상시킨다. 무대 뒷 쪽에 앉아도 다 내려다 보이며, 특히 합창연주에는 늘 뒷모습만 보게되는 지휘자를 앞 쪽에서 볼 수 있어 좋다. 디즈니 홀은 음악하는 모든 사람들이 서 보고 싶어 하는 무대이다. 나도 합창연주로 몇 번 서보기는 했다. 
 
    3시 1분 전 Perlman이 휠체어를 밀고 나오는 순간 우레같은 박수 소리가 홀을 가득 채운다. 박수 소리가 끝나고 다시 적막이 흐르자 청중들은 무대에 귀와 눈을 집중한다. 무대 중앙으로 오자 바로 시작하는 곡은 Schubert Sonata in D major op.137이다. 1악장의 경쾌한 듯 아름다운 멜로디는 베네치아의 배위에 타고 있는 듯 매끄럽게 흐른다. 2악장은 조금 느린 듯 흐느끼는 아름다움이 있다. 어느 곡이라도 슬픈 듯 느린 2악장을 나는 더 좋아한다. 슈벨트의 곡은 늘 푸르른 고향의 숲을 연상시키며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을 노래하는 소년처럼 반짝인다. 곡은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정서적이다. 무대를 내려다보니 백발의 Perlman의 머리만 보인다. 절친이라는 피아노 반주자의 뒷통수까지 벗어진 머리가 불빛에 반짝인다. 피아노 건반의 손놀림은 오히려 확연하게 볼 수 있다. 별도의 연주복을 입지않고 네이비 블루의 실크 셔츠가 연주를 더 자유롭게 한다. 검은 실크 셔츠를 입은 피아노 연주자와의 활기찬 연주가 편안함을 가져다 준다. 두 사람은 연습실에서 연주하듯 편안해 보였다. 다시 경쾌하고 빠른 3악장 악보 넘기는 사람도 실크 셔츠를 입고 살짝 일어나 악보를 넘기고는 조용히 앉는다. Perlman의 얼굴을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 전동체어에 놓인 다리가 아주 가늘다. 연주가 끝나고 전동을 운전하며 나가다가 윗 쪽을 쳐다보는데 와! 드디어 그의 얼굴을 보았다.
 
    잠시 쉬는 시간. 바이올린을 전공한 딸은 앞쪽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 연주자의 왼손 엄지손가락 놀림을 자세히 볼 수 있어 더 좋다고 한다. 뒷 모습만 보아도 그의 연주는 바이올린이 생활이고 숨쉬기인 것을 알 수 있다.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웅성웅성 들어와 자리를 채운다. 다음 곡은 Beethoven Violin Sonata No.9이다. 슈벨트의 것보다 조금 깊고 크게 움직이는 활을 따라 반주도 잔물결처럼 흥겨움으로 따라간다. 앙상하게 드러나는 그의 어깨뼈는 힘살에 강함을 주어 셔츠를 밀어내어 올렸다가 내리기를 반복한다. 연결된 두 어깨뼈는 날렵하다. 흔들리는 등뼈를 따라 음악의 고저가 갈린다. 몸짓 하나에도 음악은 묻어나고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하는 힘이있다. 다시 내가 좋아하는 2악장. 스위스의 한적한 마을의 들판과 양떼, 흐르는 시냇물, 한가로이 풀피리 부는 소년의 발길을 따라 맑은 하늘 아래 아름다운 들국화와 만난다. 피아노는 황홀하게 빠르고 부드럽다. Perlman의 다리는 힘없이 땅을 향하여 내려와 있지만 일생을 부지런히 움직인 그의 팔은 강인하고 힘차다. 피치카토가 힘이 있다. 현을 누르는 왼손은 깊고 유연하다. 피아노와 주고 받는 연주는 그 두 삶 뿐 아니라 청중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힘차게 내려 쏟아지는 이과수 폭포 물줄기 위로 작은 새 한마리가 재재거리며 나른다. 더 높은 곳에 독수리 한마리 비상하며 하늘로 치솟는다. 작은 새와 큰 새가 함께 날개짓하며 빙빙도는 하늘의 춤, 흐르는물, 흩어지는 물보라를 만난다. 약한 다리로 일어나지 못하고 두손으로 무릎을 잡아 올려 전동차로 올리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Sonatina in G major for Violin&Piano op.100. 동양적인 느낌을 주며 넓은 잔디위에 승무를 추듯 애절하게 흰 소매를 날리고 있다. 고깔모자 밑으로 살폿이 보이는 하얗고 뽀얀 턱이 부드럽다. 베트남의 어느 외로운 섬일까? 신세계 교향곡에서의 애절함도 있다. 망원경으로 내려다 본 그의 얼굴은 사진보다 더 나이들어 있다.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바이올린이 너무 작아 보인다. 넓은 어깨 넘어로 보이는 손은 크다. 앙콜은 무얼 할까? 고르고 고른다.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슬픔'은 낮은 곳에서 피어나는 뭉게구름을 높은 곳으로 옮겨다 주었다. 세 곡의 앙콜에도 객석의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계속 서 있었다. 다시 악보를 폈다. "무슨 곡이야?" "비니야프스키 바이올린 듀오곡이에요. 근데 피아노랑 하는거에요"  딸이 메모지에 살짝 적어주는 제목의 아름다운 곡으로 혼신을 다한 거장과 이별을 해야했다.
 
    자신감과 편안한 모습으로 현을 긋는 그의 어깨는 더욱 절절함을 느끼게 해 주었고 내려다 보이는 그의 흰머리카락에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슬픈곡에는 함께 울고 싶었고 즐거운 곡은 함께 춤추고 싶었다. 한 스테이지가 끝날 때마다 환호와 함께 기립박수로 노장을 격려해 주었다. 평생을 부단한 노력을 했을테고 인내로 견디는 지혜를 가졌을 것이다. 그의 평생의 연습과 값진 행보가 세상을 감동의 향기로 감싸고 숙연해지는 존경심으로 까지 이끌고 간다. 기립박수를 오래도록 받기에 마땅한 연주였다.
 
이글은 KALA문예지에 올린 글이다.